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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8:7~13 2010-07-11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안타깝게도 그 때나 이 시대에도 아직 우상에 대한 지식을 완벽하게 가지지 못한 신앙인들이 태반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 대한 신앙도 다른 우상을 섬기는 종교와 다르지 않게 기복(祈福)을 가져다 주는 정도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보다는 땅에서 사라질 것을 구하는 것으로 고난을 피하고 평안과 안전만을 기대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대부분임을 본다.

그런 유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 때문에 믿음으로 오는 고난이나 불이익을 죄의 결과로만 이해하고 오로지 위안이 되고 육신의 기쁨이 되는 말씀만을 골라서 under-line을 긋고 암송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말씀을 한 예로 들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0)는 말씀을 가까이에 잘라 붙이고 액자에 넣어 걸어둔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전제되는 하나님의 언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말씀이다.

이것이 유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는 것이다. 이 주님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 사람에게 뒤에 주어지는 약속이 지켜질 리가 만무하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독선은 자신의 믿음이 강하고 모든 것을 섭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약한 자들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진정으로 믿음에 장성한 사람은 오히려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손해를 보는 희생적인 삶이 됨을 주님의 십자가와 바울의 자세에서 배우게 되는데 오늘 여기에서도 바울은 이런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원망하는 대신에 자신의 삶의 자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 권면을 이어간다.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신앙인의 [양심]과 [자유]가 거론되면서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자유는 약한 사람들의 양심을 힘겹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됨을 경계한다.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7b)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12b)는 표현들이 특이하다.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 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 자신이 신앙적 자세를 바로 하지 못하여 후배 신앙인들을 죄짓는데 담력을 얻게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역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자세이다.

우리 먼저 믿는 사람이거나 믿음의 앞선 자들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 보다는 나를 보면서 믿음을 배우는 약한 자들을 더 배려하는 자세를 가지지 못하면 그 신앙의 지식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신앙의 지식과 자유는 사랑과 희생을 가질 때 비로소 가치를 발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음을 증거한다.



Ⅰ.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7~8)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즉, 진리(眞理)와 비진리(非眞理)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1절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라고 당시에나 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많은 신앙하는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적으로 교회를 들락거리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신이라고 이름을 붙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믿음 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 대한 민국의 조상을 섬기는 일도 분명히 안다면 혼란이 없을 것이지만 의외로 이런 부분에 분명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교회 다니면 하지 말아야 된다거나 ‘추도예배’ 라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조상이 과연 어떤 상태에 있으며 그들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섬기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안다면 이런데 혼란이 없을 것이다.

일세기 당시에는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을 숭배하며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구 소련이었던 발칸반도 라고도 하는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의 희랍정교를 보면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그들이 섬겼던 신들의 이름이 성인으로 추대되어 여전히 섬기고 있는 일들이 흔하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타협으로 인간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은 결코 아니다.

당시의 고린도 교인 중에서나 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상숭배의 마법적인 효력을 교회에서 기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고, 오늘 대한민국에도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신적인 형태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서, 영원한 영광의 구원보다는 육신의 복을 구하는 경우들이 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우리의 삶의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음을 잊지 않는 …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8) 먹는 것 자체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중요하게 연결하는 것은 우상의 제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주의 만찬뿐이다.

그 외에 우리의 믿음은 어떤 음식을 먹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 지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어떤 음식이 정력에 좋다.’는 것보다도 더 불확실하다) 또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행위가 신앙인들의 자유를 위한 필수적 요소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먹고 사는 문제는 필수적이지만, 우리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못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부자가 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는 결국 유익하지 않은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실족시킬 위험성까지 있는데 먹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Ⅱ. 믿음의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라!(9~10)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5:13)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석학 에버렛 퍼거슨(Everett Ferguson) 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그것은 “from~ (~으로부터의 자유)”와 “toward~ (~쪽으로, ~로 향하여, ~의 쪽을 향하는 자유)”라고. “~으로 부터의 자유(from~)”는 죄로부터, 욕정으로부터, 탐심으로부터,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이상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말하고 “~을(를) 향하는 자유(toward~)”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어떤 자리에서도 그 어떤 것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함을 갖는 존재라는 것이다.

[거치는 것, 헬, 프로스콤마(proskomma), 길에 떨어져 있는 돌, 그루터기, 배신의 기회, 범죄, 실수, 거침돌]은 신앙이 약한 형제의 양심에 상처를 준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상과 타협함으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적 행위가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도덕적인 행동일지라도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에 의심이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면 자제해야 하고 덕을 위해서 절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세이다. 이것은 말에서도 마찬가지이다.[와인 한잔에서도]

예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 것을 읽는다.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고 성경의 진정한 자유를 이해하는 사람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고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먹고 행동해야 하는 가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지식을 온전히 갖지 못한 사람이 만약에 믿음생활을 하는 선배가 우상의 집에 앉아 그들과 더불어 식물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그리스도를 섬기면서도 우상과 교제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의 자유로움이 결국 약한 자들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그래도 된다.’는 막연한 잘못된 판단과 함께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도 앞선 자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이 자랐다는 잘못된 삶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경계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신앙적 자유는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 보다는 주위의 형제와 자매를 위해 또는 구원을 위해 무엇보다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 같은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모두가 이런 성숙한 신앙의 삶을 삶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데 자신의 자유를 사용할 수 있는 …



Ⅲ.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사주신 사람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11~13)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은 증거이지만 그것이 잘못 사용될 때는 오히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운 경계를 주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 구원해 주신 형제를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망하게 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12b)는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로마서에서도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롬14:15)고 증거하고 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고 이것을 자르는 무서운 행위야말로 책망 받아 당연한 것으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말씀하고 계심에서 도 분명하다.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바울 사도 자신의 의지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보잘것없는 형제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그를 통해 주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여기에 대한 결론은 로마서에서 가르친 교훈으로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14:7~9)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20~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거짓된 것에서 놓임을 받고 하늘의 백성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빠져 나온 죄의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사주신 믿음의 자유를 남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 자유 하였지만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의 자세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가졌다고 하는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시킨다면 그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으로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먹는 일이나 말에 모두 자제하여 구원을 위한 도구로 역할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