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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0:12~22 2010-08-15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당시에 고린도의 교우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과신하기 위하여 우상의 제사 축제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앞에서도 말한바 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정도 올라섰다 싶으면 자신의 위에 계시는 주님조차도 의식 못하고 고개를 뻤뻤하게 세우는 교만한 자들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세워짐이 주님의 의로우신 피와 사랑 때문임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부류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압살롬)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선전하고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 날뛰는 것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리에서 끌어 내려 버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위인들이다.

그러나 또 어떤 준비된 사람들은 자신의 세워짐의 힘과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겸손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의 성령이나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자신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고백하고 “주님이여 말씀만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는 사람이 그들이다. 많지는 않지만 다행히도 이런 사람들로 주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본다.

오늘 나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십자가의 의를 의지하고 겸손히 주님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순종의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 주신 은혜 때문에 받은 것들로 인하여 교만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호령하고 명령하는, 마치 공산주의자의 완장 찬 머슴 같은 사람인지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러한 삶의 자세에 따라서 넘어질 줄 모르고 설쳐대는,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것으로 인하여 어떤 시련과 고통이 와도 묵묵히 주님 주시는 잔이라면 기꺼이 받아 마시겠다고 겸손해 하는 삶의 차이를 오늘 본문에서도 다루게 된다.

사람과 세상으로부터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위로와 상주심을 바라고 주어진 믿음의 여정이 비록 가시밭 길이라도 미래에 상주심을 바라고 주님의 얼굴을 살피고 말씀에 귀를 귀 기울이는 그래서 시험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결과하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사는 …



Ⅰ.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신다.(12~1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 시험이 무엇인가? [v 헬, 페이라조(peirazo), n헬, 페이라스모스(peirasmos) - temptation, test. ]

여기서도 경계되는 것은 교만이다.(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4)

그러나 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인간의 수준이 아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의 교훈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마6:13; 눅11:4); 시험을 피해갈 인생이 있는가!

2. 시험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마귀가 아니다. 얼마나 감사한가!) [욥1:11~12, 2:5~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1:12, 14)

3. 주님 편에 있는 한 어떤 시험이 됐든지 능력 있게 감당한다. 그것을 감당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 되게 할 때,

[능히, 헬,뒤나마이(dynamai); 뒤나미스(dynamis)]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Ⅱ.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들이다.(14~18)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여기에서의 권면은 좀더 적극적이다. 그것은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와 세상의 것들에 어울리고 교제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서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기억하게 한다.

바울은 좀더 진지하게 권면한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헬, 퓨고(feugo), 도망하다, 사라지다(창39:12~13요셉)] ”(14)

1. 우상의 축제와 주님의 만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는 때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이 옳고 그름도 의식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무감각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기억하라!(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우리가 예배 중에 나누는 그리스도의 떡과 잔은 구약의 화목제사와 연결된다. 화목제사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 후 그 제물에 모든 가족이 참여하는 것으로 제사가 완료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고←“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롬3:25f)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주의 피와 몸을 기념하는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면 어찌 또 다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3.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라!(17~18)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헬, 코이노니아(koinonia), 동료의식, 나눔, 상호교류, 분배]하는 자들이 아니냐”

어쩌면 자신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같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 볼 수도 있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스라엘의 제단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1:9) 믿음이 약한 사람이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건 그리스도와 더불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어떤 일에서든지 연약한 자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절제하고 조심하는 것은 그들을 한 몸에 참여하는 자로 확신할 때 가능한 것이다.



Ⅲ. 빛과 어두움은 절대로 사귀지 못한다.(19~22)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14절에서 이미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권면했던 바울은 우상숭배와 하나님과 사귐이 전혀 다름을 증거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이 아니면 귀신과 사귀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 귀신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鬼神觀 과는 사뭇 다르다.(눅16:27b~28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죽은 자가 이승에 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사하는 것은 악마를 섬기는 것이다.(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귀신 헬, 다이모니온(daimonion); 신적 존재, 악마; 마귀, 헬, 디아블로스(diabolos) 비방자, 악마, 중상자; 사탄, 헬, 사탄(Satan), 사타나스(Satanas) 사탄, 적, 대항자]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반대 세력인 어두움의 권세와 교제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당부하고 계신 것이다.

2. 사람은 하나님과 악령과 함께 교제해서는 안된다.(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이것은 전혀 우리를 위한 당부의 말씀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후6:14~16f)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22)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악마와 우리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렇게도 싫어하시는 것을 행한다면 결국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냐고 묻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건에서든지 이김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그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시험은 주님을 의뢰하기만 하면 반드시 감당할 수 있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를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으므로 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들로 어두움의 반대자인 우상과 교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은 절대로 사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든지 아니면 어둠의 세력인 마귀를 겸하여 섬기려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출20:5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