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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1:17~22 2010-09-05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당시 유럽 속에서 사람관계의 질서와 교회 속에서의 역할을 정의한 바울 사도는 이제 바탕이나 문화가 다르고 인간관계 속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예배라는 전혀 새로운 과제 속에서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한 희생을 기념하는 예배 속에서의 질서와 사랑을 당부하는 내용이 오늘의 말씀이다.

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거듭나고 그러한 사랑의 역사를 가장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구약 제사의 완성이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언약 속에서 예배의 중심이 되는 만찬예식이다.

한번으로 드려진 완전한 제사의 제물을 함께 나누는 귀중한 가치와 참여를 주님께서 당부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죄성의 사람들이 이러한 거룩한 행위 속에서조차 편당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본문의 내용은 예배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표현이 없다. 시작에서 끝까지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칭찬하지 않노라” 했고; “분쟁이 있다, 시장하고, 취함이라, 업신여기고, 부끄럽게”

좋은 표현들 조차도 모두 부정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모임이 유익이 못되,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이런 이유가 중간에 숨어 있는데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이다. 모임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분리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귀중한 행사가 감격과 기쁨보다는 또 다른 책망 받을 이유로 나타남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나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이 되어야 함을 권면한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이 되지 못하고 참여하는 서로에게 오히려 분쟁과 간격을 만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모이지 않음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바울의 당부는 오늘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감격으로 모이는 예배, 하나님의 자녀로 가족으로 나(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신하는 예배, 그 희생의 역사 때문에 오늘 내(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어 있음을 감사하고 그 나눔 속에서 서로 같은 피로 영원 속에 맺어진 형제 자매 됨의 확신은 주님의 희생으로 드려진 완전한 제사를 기념하면서 확신 되어지는 분명한 근거이다.

주님께나 교회에게 우리에게 모두 영광이 되고 유익이 되는 예배와 모임이 되라고 당부하신다. 바리새인들처럼 주님 앞에서 나 혼자의 독선이 아니라 나눔이 공동 운명의 사실을 더욱 확신하고 교회를 세상과 다른 하늘의 기관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가치를 높여가는 …



Ⅰ. 유익이 못 되는 모임을 경계 한다.(17~19)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①영광된 모임이 못되고 있다.(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②하나가 되어야 할 모임이 분쟁이 있다.(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10:17) 예배에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방해하거나 망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몰지각한 행동이다.

③결과는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성경에서 유일하게 파당의 긍정적인 평가다. 결국 어디에든지 질서를 거스르고 주님 편인 것처럼 하면서도 반대편을 모으는 어두움의 세력은 있을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밝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서도 당파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19-새번역)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진실한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공동)



Ⅱ.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는 상태.(20~21)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① 함께 만찬을 나눌 수 없다.(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준비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광을 나누는 예식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27)

② 각각 자기 것만 챙기기 때문.(21f)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③결과는 시장을 느끼고 술 취함만 남는다.(21b)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거룩한 예식이 아니라 세상의 길거리와 술집의 모습일 뿐이다.



Ⅲ. 교회를 없인 여겨서는 안 된다.

(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①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가 아니다.(22f)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②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22m)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교회에서는 오로지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성결에 대한 부족함을 송구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만 한다. 야고보서2:5~6은 교회에서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있다. 결코 교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이 수치로 느껴지게 해서는 안된다.

③ 칭찬 듣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22b)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영적인 유익은 사라질 것들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유익을 구할 것을 부탁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것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 권면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유익이기 때문에 그렇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10:24)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3) 특히 예배에서야 더욱 그렇다.

교회에서도 세상처럼 자신의 것만을 찾는다면 거룩한 예식에 함께 할 수 없고 교회를 마치 시장바닥처럼 만들고 말 것이다.

모두가 자기 집도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애쓰는데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힘을 못쓰는 사람들이 교회 속에서 외면 당해도 안되고 성도간의 차별이 있다면 그런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절대로 칭찬 받을 수 없다.

예배드림이 분명한 특권이고 감격이다. 그것이 더욱 하나님 앞에서 영광이 되고 칭송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사신 기관이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