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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교회를 통하여 전승된 것 중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계승한 것도 중요하지만 귀중한 전례는 바로 주님의 희생의 기념이다. 그래서 이 은혜는 눈에 보이는 말씀이라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중요한 만큼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고 있다.(마26:26~29; 막14:22~25; 눅22:17~20) 또 요한 복음에서는 기적의 떡을 먹은 후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먹어야 할 떡인 예수 그리도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한다.(요6:48~57) 그러나 본문의 내용은 단어의 사용상 누가복음과 가장 가깝다. ‘축사하시고, 기념하라’(24; 눅22:19) - ‘축복하시고, 감사기도 하시고’
사실 특별한 떡이나 포도주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귀중히 여기는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주님의 희생으로 더 이상 유월절이 기념되는 것 보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약속하신 새언약을 제정하심을 보게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출12:14)고 명령하셨지만 새로 맺어진 언약 속의 새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죽음을 박차고 승리하신 부활의 날에 이 새언약의 증표를 들어 희생의 은총을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상기시켜 기억하라)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예식은 새언약의 백성들의 예배의 중심이며 고백이고 감격이고 찬양이다. 다만 고린도 교회처럼 오늘도 합당치 않게 행한다면 그 때와 같이 거기에 따라 오는 결과들도 역시 경계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 주에 나누도록 하자.
Ⅰ. 주께 받은 것이다.(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이것은 바울 사도의 믿음이고 고백이다.
①내가 이미 너희에게 전한 것이다. 이미 전했음에도 귀중하게 여기지 못했다.
②내가 주께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헬, 가ㄹ(gar-왜냐하면)
③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유월절의 완성. ⓑ구속의 예언.
Ⅱ.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며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24~25)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①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떡을 떼는 행위는 유월절 식사의 경우 애굽에서의 고통을 상징하는 데서부터 주의 만찬의 규례에서는 고난을 당해서 찢길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상징한다.
우리 성경에는 고대 사본에는 있는 “찢겨진[헬, 클로메논(klomenon), 헬, 클라오(klao-가지, 새싹, 부숨, 꺾어내다, 자르다, 나누다, 찢다)의 주격, 단수, 중성, 분사, 현재, 수동]”이 빠져있다.
②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눅22:20)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막14:24)고 되어 있다.
‘새 언약’(렘31: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4)은 ‘모세의 언약’(출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과 대조
③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Ⅲ.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라.(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①승리의 날에 기념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없었다면 결코 기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5:17)
②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바로 주님의 희생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③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기념하는 행위’는 주가 재림할 때까지 지속된다. 이처럼 본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함에 있어서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실물 교육으로 동일한 믿음을 가진 역사 속의 모든 거듭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주의 만찬의 귀중성과 행해야 하는 것은 이미 주님께 받은 계명이라고 하는 데서 중요하고 거룩한 의식이다.
그러나 거룩하기 때문에 회피하거나 기념을 명령대로 행하지 않는 것도 죄를 짓는 것이고 주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책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의식이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의 그날을 기대하면서 그 다시 오실 주님의 날까지 나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과 몸을 제물 삼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전하고 기념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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