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체는 여러 가지 육체가 있고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늘에 속한 육체도 있고 땅에 속한 육체도 있을 뿐 아니라 각각의 별들의 빛이 다른 것처럼 미래에 하나님 나라에서 입을 믿음의 사람들의 영광 또한 다르다는 부활 때 입을 영광의 차이들을 생각했었다.
(그 때에 놀랄 일이 있을-자신의 믿음과 희생이 대단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허탈함과 …)
바울은 이 거룩하고 복된 부활의 논리를 마감하면서 미래에 입을 영광이 큰 만큼, 썩어질 것들에 매어 살아서는 안될 것을 증거하면서 여태껏 온 인류에 군림하면서 사람들을 마음대로 자신의 수하에 굴복시켰던 사망조차도 정복하고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 하는 그날을 기대할 것을 격려하면서, 이런 약속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오로지 영원에서 보상받을 수고를 격려하고 있다.[…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8]
우리 인생은 참으로 연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약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온전히 드려질 때 결코 약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이 역사의 마지막의 조종이 울릴 때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사라지지 않을 유업을 누리게 될 것임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바람이자 소원이다.
그 때야말로 하늘의 위로와 영광을 기대하면서 기쁘게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서 사라질 영광을 기꺼이 포기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될 것이다.
Ⅰ.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다.(50~51)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셨던 말씀과 다르지 않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5~7)
썩어 없어질 것을 고수하고 욕심 내고 있는 한 영광의 천국은 받을 수 없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헬, 사륵스(sarks), flesh, 고기덩어리; 헬, 하이마(haima), 피, 호흡하는 것들의 생명]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
동물들은 다음 순간을 위하여 고기를 감춰두는 것 까지는 알지만 본능에 의해서 살기 때문에 배고프면 미래를 생각지 않고 배를 채우려 든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것은, 특히 영적인 사람이 다른 것은 영원에 장애가 될 것은 아무리 좋아도 절제하는 것이다.
결국 육신의 유익을 위해 영원을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영원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 주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7~38)
이것은 아주 극단적인 비유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혈육의 관계인 것을 생각하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정도로 버려야 것을 강조하신 이유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사실 단호한 주님의 요구이지만 그것은 신앙하는 우리들을 위한 사랑의 권면이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51) 이것이야말로 공개된 비밀이다. 모든 인류에게 선언하셨지만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은 이해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비밀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우리 주님의 분명하고 귀중한 약속이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모두가 하늘로부터 마지막 나팔을 기대하며 우리 몸의 변화까지도 기대하고 바라는 하늘의 영광을 바꿔 입는 …
Ⅱ. 우리도 변화되리라는 기대.(52~54)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변화를 기대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받들어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이 세상과 변화된 삶을 사는 자라야 영원의 입구인 마지막 나팔의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의 초라한 몸을 영광의 몸과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을 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 계통인 사두개인들은 종교적 특권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누리면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코 자신들의 약속된 영광을 잃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고 대적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으므로 결국 주님으로부터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8:12)는 무서운 저주의 책망을 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3) 이 말씀은 50절의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는 말씀과 모순되게 들린다.
그러나 53절의 말씀은 이미 주님께 완벽하게 드려져서 주님의 것이 된 것에 대한 약속이라면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드려지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자연 그대로의 아담의 후예로서의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54) 이 말씀은 호13:14 말씀의 인용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사망에 종노릇하고 있다. 여전히 죽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마지막 나팔이 울리고 우리의 몸이 변화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망이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비로소 세력을 잃을 것이라는 귀중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의 대속의 희생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라고 증거한바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두려운 사망의 저주를 우리를 위해 맛보시고 이제는 적어도 죽음의 공포에서 그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이다. 믿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았음에도 죽음의 복종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에 공포를 갖고 있지만 우리의 육신이 변화하는 순간부터는 사망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히 성도들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Ⅲ.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56~58)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모든 인류 위에 승리자로 군림하고 있는 죽음, 사망의 독침은 이데 존재조차 없어질 것이다. 사망이 왕 노릇한 것은 죄의 원인이고 죄가 해결되면 당연히 사망은 자취를 감추게 되어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아래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발꿈치를 상하셨지만 결국 그것은 뱀의 머리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이 말씀은 마치 바울이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이 의롭게 살려는 자신을 계속 죄 아래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 탄식하다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다 …”(롬7:25f)는 고백과 같이 들린다.
율법의 저주에서 죄의 저주에서 자유 해 보려고 무던히도 발버둥쳐 보다가 승리를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탄성에 찬 고백인데 죽음에서의 자유에서도 마찬가지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8) ‘이렇게 약속이 분명하고 확실한 이상 더 무엇을 주저하고 방황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감사의 찬양인 동시에 ‘이제 상급이 확실한 이상 그 상급을 위한 수고를 아낄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격려이다.
세상에서 하는 일은 ‘내가 뼈빠지게 수고한들 누가 알아 주겠는가!’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까지 승리를 주신 그 주님의 약속에서 수고한 대로 갚으리라는 언약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적어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수고하고 애쓰는 일은 거기에 대한 상급은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두 사도의 권면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해 보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