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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6:1~9 2011-01-09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  
바울 사도는 고린도의 첫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는 마당에 문안과 인사에 앞서서 진정한 교회의 하나됨과 협력을 강조하는 실제적인 일로서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부탁하면서 연보의 드림과 관리를 제시하고, 고린도교회와 글이 아닌 얼굴과 만남으로 교제하기를 사랑의 요한 사도처럼 고대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이1:12)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요삼1:14)

연보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어려움을 당한 교회를 돕기 위한 자발적인 헌납이다. [연보]는 ①대가 없이 주는 ‘선물’(헬, 카리아(charia), ‘은혜’)이며(3절; 고후8:4ff.), ②서로 나누는 ‘교제’(헬,, 코이노니아(koinonia), ‘동정’)의 방편이며(롬15:26), ③‘섬김’(헬,, 디아코니아(diakonia), ‘섬기는 일’)의 진정한 표현이고(롬15:31; 고후8:4; 9:1), ④다른 사람에게 복을 기원해 주는 것(헬,, 율로기아(eulogia), 율로기아, ‘축복’)을 합당하게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고후9:5), ⑤“향기로운 제물”(빌4:18)[헬, 유오디아 뒤시안(euodias thysian), 좋은 냄새 나는 제물]이라는 극찬까지 했다.

이것과 함께 연보는 교회의 단일성과 통일성을 고취시켜 유대와 이방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연합을 도모하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드림은 분명한 감격이고 확신이다. 나의 것을 빼앗긴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발상이 아니라 다윅의 고백처럼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라는 것처럼 받은 은혜와 감격으로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감격을 충만이 맛보는…



Ⅰ. 연보와 관리(1~4)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신앙에 있어서 가장 시험에 들기 쉽고 그러면서도 신앙의 가장 실제적인 표현인 연보는 어려운 과제인 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처음 갔다가 연보를 걷는 것을 보면서 ‘교회는 돈을 거두는 곳이구나!’ 생각하고 복음을 듣기도 전에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아직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배려해야만 한다.-매주 내라고만 강조한다면…]

그러나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하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믿음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 물질을 드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까지 한다.

사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분명 감격의 이유이다. 마치 다음에 상속을 줄 아버지께 아들이 자신의 수고로 어떤 것을 드리는 서로의 감격이 연보라는 내용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물질의 드림의 방법과 그 드려진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하는 가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교훈을 오늘 본문은 제시하고 있다는 데서 대단히 중요하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1) 하였지만, 실제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명한 내용은 우리가 가진 성경에는 기록되고 있지 않지만 그러한 교훈을 짐작하게 하는 말씀을 갈라디아서2:10의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는 내용으로 생각한다.

완성된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7~30)는 기록도 이런 내용을 가늠하게 하는 말씀이다.

특이하게도 연보는 성경에서 “성도 섬기는 일”(롬12:13, 롬15:25~26; 고후8:4, 고후9:12~13)로 주로 표현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분명 하나님께 드려서 사용됨에도 신약의 물질을 드림에 있어서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부분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2) 연보의 때와 양에 대한 가르침이면서 또 이것은 지극히 신앙적인 가르침이다. ①매주 첫날에(하나님을 의식하여 드려야 한다.-날이 이를 가르친다.) ②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수고하는 가운데 ③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드려야 하고 ④즉흥적인 것은 금한다.

없어서 못 드릴 것도 없고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는 경고를 따라 드리되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라는 영적인 드림에 감사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3~4) 이 내용은 연보를 관리할 사람 즉, 본문의 내용에서는 고린도교회가 수집한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기준이다.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3) 적어도 연보의 관리는 온 교회가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어야만 한다. 신앙이 깊지 못한 사람은 연보를 관리하다가 시험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창립자요 스승이지만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만일’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합당하면’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의견을 내놓는다. 어떤 경우 교회가 주는 연보가 사람이 주는 것으로 착각될 소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즉, 덕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연보는 주님의 피로 갑주고 사신 성도의 당연한 의무요 사랑의 표현으로 온 우주적인 교회의 통일성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으로 사실적인 교제의 부분으로 감사와 찬양의 실제적인 내용이요 피조물이 조물주께 드리는 감격과 함께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는 복된 영적 가치이다.



Ⅱ. 고린도 교회를 향한 교제의 소원(5~7)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비록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의 신앙적 질문들을 편지로 답하고 있지만 바울은 땅끝으로 복음을 들고 가는 일을 지속하고 싶었고, 이 일들에 고리도 교회가 직접 참여하기를 기대하면서 그들과 겨울을 지내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교회의 보내줌을 기대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와 함께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고 그러나 떠나온 지금에는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신앙에 혼돈을 일으키고 세상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들조차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면서 심히 안타까워했던 모습들을 앞에서 읽은 바 있다.

바울은 글로 쓰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적어도 여행이 어려운 한 겨울을 지나면서 저들의 신앙적 문제도 바로 잡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여행의 준비를 교회가 해 줄 것에 대한 기대까지 소원하고 있는 것을 읽는다.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6b)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에게도 언제나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을 다른 곳에서도 더러 본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롬15:24)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 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고후1:15~16) 교회의 보내줌은 바로 그런 내용이고 교회의 보내줌을 기대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머무름과 보내줌의 소원에도 단서를 붙이는 것은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7b) 위대한 사도의 고백이요 오늘도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적 자세이다.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기도했어도 최종적으로 남는 조건은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단서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넘어서다가 주님께 책망을 듣고 좌절을 겪게 된다.

여러분들의 모든 일상에도 “만일 주께서 허락 하시면…”이라는 같은 자세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순종하는 자들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Ⅲ. 바울의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8~9)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바울은 할 수만 있으면 고리도에 가서 겨울을 지내기까지 했으면 한다고 고백하면서도 그것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을 오늘 본문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8) 이것은 결코 바울 사도의 소원이라기 보다는 사도다운 그의 신앙적 결단이었다.

그 이유를 연이어 기록하고 있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9)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질 수 없다는 고백이다.

바울 사도는 언제나 이 일을 위하여 매진하고 기도를 요청하는 내용들을 그의 서신들에서 더러 더러 읽게 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4:3)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살후3:1)

그러나 여기에도 일사천리(一瀉千里)는 허락되지 않았다. 유효하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진 반면에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는 것이었다. 어둠의 세력은 하나님의 일이 평탄하게 진행되도록 절대로 버려두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가 끝날 때까지 있게 될 복음을 거역하는 세력들의 방해 공작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장애를 만나도 그러려니 하고 대처해야만 한다. 아무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와도 역시 대적들은 언제나 많음을 기억하고 일에 임해야 하는 것도 하늘의 군사 된 진리의 사람들이 겪어야 할 영적 전쟁이다.

연보는 주님께 감사로 드려지는 것이요 실제적인 지체의식의 출발로서의 나눔이다.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드려야 하는데 적은 수입에는 드리는 것이 쉽지만 많은 수입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다. 즉흥적인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 물질은 교회가 인정할만한 사람이 관리하고 전달해야 한다.

실제적인 교제로 가르치고 머물기를 원했고 교회의 준비와 동참을 원하지만 최종적인 결재 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전하는 가장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었지만 언제나 방해하는 대적하는 세력은 어느 때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장하고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