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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전 16:10~18 2011-01-16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 사도는 편지의 문안을 시작하기 전에 특히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힘쓰는 자들에 대한 예우를 당부하는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읽게 된다. 그것도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교우들의 자세와 섬기고 희생하는 자들을 순종하고 알아주라고 격려한다.

이단이 가만히 들어와 진리를 흔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거짓스승들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을 겪으며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4종파 중에 손꼽히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에게 고린도로 가서 가르치는 역할을 다시 할 것을 부탁했지만 갈 뜻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대신에 디모데를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아볼로보다는 어리고 연약하지만 바울을 따라 다니며 훈련을 받은 디모데는 문제가 있는 교회마다 바울 사도의 파견을 받아 충실히 맡은 임무를 감당한 것들을 성경의 바울의 서신들에서 더러 보는 바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이런 위기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삽입하고 있다.(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어쩌면 이 교훈은 오늘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같이 들린다.

고리도 교회의 오래된 성도로 바울과 교회를 오가며 헌신하는 스데바나 같은 사람들과 여기 거론되는 이름의 주인공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실 교회는 힘을 얻고 소성하게 되며 격려를 받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을 순종하고 알아 주라는 부탁까지 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Ⅰ. 사역자들에 대한 자세(10~12)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면서 누구보다도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로 칭송 받고 있는 일꾼이었음을 바울의 편지마다 읽게 된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롬16:21)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빌2:19~20)

디모데는 경건한 사역자였지만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조금은 유약한 약골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5:23)

이런 디모데를 자신이 고린도에 가기에 앞서 먼저 보내놓고 이 편지를 쓴 것으로 여겨진다. 디모데는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아가야로 갔고 이 편지는 곧장 고린도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다소의 간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당부하는 권면이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10m) 사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이미 2:3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고백한 것처럼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두려워할 수가 있었고 또 그렇다.

같은 믿음으로 행한다면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성령과 말씀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실 어떤 일을 행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해주는 속까지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진실하고 충실한 영적인 교제를 같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고린도 교회에 어린 디모데를 보내는 것 자체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이래서 “너희는 조심하여” 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게바, 아볼로, 바울과 같은 분파로 나눠져 있는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보내진 사람을 어떻게 취급할지 보증이 되지 않은 가운데 바울은 여러 문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내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을 느낀다.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10b)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에 대한 태도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당부를 하고 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11)

“멸시하지 말고[헬, 엑수데네오(eksoutheneo), 멸시하다, 하찮게 여기다, 무시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대하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삼다] 때로 진실한 하나님의 종을 ‘없인 여기고, 무시하고, 멸시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가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머물든지; 떠나든지 평안한 가운데 일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진실치 못하면서 협박하고 큰소리 치는 이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지신의 쓰시는 진실한 종을 무시하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12)

V12아볼로에 대하여는(7:1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25처녀에 대하여는; 8: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12:1신령한 것에 대하여; 16:1연보에 관하여는) 이런 내용으로 볼 때 적어도 고린도 교회가 정식으로 바울에게 아볼로를 보내 줄 것을 요청했던 것 같다.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12m) 아마 아볼로도 자신이 고린도에 갔을 때 있을 수 있는 분파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거절 했을 것이고 바울은 강제로 그를 가게 하거나 머무르게 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사실 오고 가는 것은 강제이거나 억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이 역시 바울 사도는 아볼로의 선택에 맡김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오고 감의 문제가 덕스러워야 하고 인간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Ⅱ. 존경하고 순종해야 할 사람들(13~16)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바울 사도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강한 신앙적 당부를 주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4가지 정도로 진행형이다. “①깨어[헬, 그레고류오(gregoreuo), 정신차리다, 경계하다, 주의하다] ②믿음에 굳게 서서[헬, 스테코(steko), 참다, 견디다] ③남자답게[헬, 아네르(aner), 남편, 대장부]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④사랑으로 행하라”(13~14)

“스데바나의 집은 곧 ①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②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③너희가 아는지라”(15) 대개 오래된 신앙인이 섬기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가 알 정도로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다.

여기에 따르는 당부는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16)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2~13)



Ⅲ.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여 알아줄 사람들(17~18)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위에서 말한 같은 사람이다. “온 것을 기뻐하노니” 오는 것 자체가 기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바울에게 와서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했는데 [부족한 것, 헬, 휘테레마(hysterema), 재산의, 믿음의 교훈, 사랑의 나눔의- 빈곤, 궁핍, 결핍]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적어도 고린도 교우들을 향한 바울의 충고와 사랑을 대신 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도 그를 향한 고린도 교우들의 애정을 전해줘서 바울에게 큰 기쁨을 전해 주었다. 지금은 고린도 교우들과 떨어져 걱정하고 있는 바울에게 이 세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 바울의 걱정으로 텅 빈 마음을 채워준 것이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18f) 사람 사이를 시원케 해 주는 중보자 마치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귀한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사람 사이를 이간시켜서 서로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경우가 세상에서는 더 많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참으로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화평의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안타깝게도 서로에게 상대를 좋지 않게 말함으로써 더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고 거기에 대한 보응도 반드시 하나님께 받을 것임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18~20)

이것이 가능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바로 앞절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18b) 교회에서 알아줘야 할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시원케 해주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과 희생으로 화평의 도구의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이 아시고 교회가 알아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