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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자신이나 동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유익을 위한 장사거리로 취급하거나 다른 것들을 뒤섞어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순수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한다고 지난 시간에 읽은 말씀에서 증거를 하였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진정한 종됨은 사람으로 나지 않으며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런 진실된 증거가 바로 바울의 헌신으로 열매 맺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라고 증거한다.
이 고린도 후서가 바울의 변호의 성격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거짓 그리스도의 일군들이 고린도에 와서 바울을 대적하고 그의 전한 복음을 깎아 내리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유대주의자들부터 추천서를 받아 왔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은바 없는 거짓 종이고 근본도 없는 돌연변이로서 율법을 어기도록 부추기며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는 사이비라고 매도를 했던 것 같다.
거기에 변호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의 시작부분이고 사람으로부터 난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가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편지로 복음과 생명을 아름답게 잘 나타내는 …
Ⅰ. 진정한 복음의 일꾼은 사람들의 추천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지난 2:17의 마지막 말씀이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공동] 했기 때문에 어찌 들으면 이 말씀이 자기만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던 같다.
그래서 오늘 첫 절을 역시 공동번역으로 다시 보면 “우리의 이 말이 또 자화자찬처럼 들립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소개장을 가지고서야 여러분을 찾아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또 다른 데로 갈 때에도 여러분의 소개장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한 것인데 이 말씀 속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논지가 들어 있다.
①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치켜 올리는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가? 바울처럼 겸손을 권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런 이유에서 이름까지 [사울]에서 [바울]로 바꾼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복음에 대해서는 어느 사도보다도 큰 확신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2) 이런 모든 고백은 자신을 추켜올리는 교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는 겸손이다.
②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소개장을 가지고서야 여러분을 찾아 갈 수 있단 말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아무래도 고린도 교회에 가서 바울을 모함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실 바울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공문을 청했던 것을 볼 수 있고(행9:2)
같은 사도행전18:27f에는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라는 기록을 볼 수 있고 롬16:1~2f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라는 내용들도 다 추천서를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에 일반적인 관행으로 통용되던 소개장으로 보내는 사람의 신분과 권한에 대한 인정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 자신이 다른 데로 갈 때도 고린도교회의 소개장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라는 사뭇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이라면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과 위임보다 주님으로부터의 인정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f)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 자신은 이런 천거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앞에서 본 것처럼 자신도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적인 서로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고, 그것이 육적인 사람의 입장보다는 영적인 부분에서 더욱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영적인 검증보다 육신적인 검증이 먼저인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사람의 추천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의 세태]
깊은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환신 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신앙하고 일하는…
Ⅱ.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편지이다.(2~3)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요즘은 J모 여인과 관련한 가짜 편지가 연일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어서 안타깝지만 편지는 진실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그런 이치에서 우리 신앙의 사람들이 세상에 보내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치이다.[panpal]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9:2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 증거한 바 있다.
첫째는 고린도 교우들이 바울 사도 자신의 편지라고 한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중요한 과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을 보낸다면 … 특히 그 사람이 보낸 사람의 제자라면 그 온 사람은 보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낼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만 한다.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종이가 아닌 무형의 편지, 마치 오늘 우리 시대에 e-mail 같은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 바울의 마음에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새겨져 있고 고린도 교우들에게 역시 바울이 쓰여있을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 교회의 교우들의 삶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서면그리스도의교회를 이해하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책임감이 느껴지는가!]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3)
바울과 하나님의 종들 때문에 고린도 교우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은 태워 없어지는 종이에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 판에 쓰여지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오래 전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3)
OT 성경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겼었고 모세가 들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져 음란한 축제를 즐기고 있을 것을 보고 던져 깨뜨리고 말았고(출32:1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속에서 자주자주 깨뜨려졌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2)고 말씀하신 후에 이제는 언약을 보이는 돌에 새기지 않고 마음에 새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디서든지 함부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그리스를 비치는 거울들이다.
맑고 깨끗한 심령의 거울에는 흐리지 않은 십자가와 인류를 위해 희생하시는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칠 수 있겠지만, 찌그러지고 더러운 거울에서는 세상사람들이 왜곡된 그리스도를 읽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매 순간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4:5~6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했는데 우리 마음에 비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받은 우리가 그 빛을 반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항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항상 움직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Ⅲ. 인정과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한다.(4~5)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가진 확신이 결코 사람으로부터나 사람을 대상한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자신의 헌신과 수고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있지만 이것의 근거를 자신의 재능이나 경건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고전15:10이 거기에 대한 가장 좋은 고백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신앙의 사람들이 만족을 자기 자신이나 사람들 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사람을 근거할 때 그것은 참으로 하잘것없는 것일 뿐이다. 고전3:21에서도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 하였고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는데 이 말씀은 뒤집어 말하면 ‘주님께서 능력 주시지 않으시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는 고백이 된다.
어디서든지 사람들의 인정을 기대해서는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면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으로부터 위로와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럴 때 환경이나 처지가 어떻던지 실망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의 확신이다. 믿습니까!
만족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나를 칭찬하던 사람이 내일은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변화무쌍하다는 말이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더불어 복음을 전할 때 복음에 순종하는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만족했겠는가!
그러나 지금 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매도하고 모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역시 수없이 경험했던 바울이기 때문에 만족을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찾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만족은 바닥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나 세상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면 쉽게 말라 버리고 만다.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격려와 위로를 넘치도록 받으므로 세상에 좌우됨이 없는 기쁨과 만족을 받아 누리는 …
CONCLUSSION세상의 추천서와 인정이 필요한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의식하라! 만족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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