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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3:6~11 2011-03-20
영광  
[영광, 헬, 독사(doksa), 거룩, 위엄, 영예, 찬양, 경배]

우리의 다음 주 메시지까지의 배경이 되는 말씀을 읽어보면 :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34:29~35)

이것은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인하여 깨뜨려 버린 처음 받은 십계명의 돌판이 아니라 두 번째로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올 때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고 있었던 모세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반사가 되어 나타났고 여태껏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이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해서 모세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OT의 이것은 육신의 삶에서 주어졌지만 복음 속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은 불신의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산 제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예전에도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던 모세의 얼굴에 영광이 나타났다면 오늘의 복음 시대에는 세상과 구별된 성결이 영광이 될 것이고 이 영광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지고 갈 영광이요 영원 속에서도 지속되는 영광이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역사의 종말이 되어 질수록 이 영광은 흐려질 것이고 그러한 영적인 어두움과 세상의 죄로 어두워진 말미에 주님께서 반드시 오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경성해야 함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Ⅰ.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은 분명히 하나님께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조상들을 가지고 있었다.[Abr. Is. Ja.] 그리고 그들과는 직접적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5~6)

그러나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2:12)였던 우리들을 새언약에 불러들일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일꾼 삼아주신 것을 생각하면 바울의 표현대로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은혜이다.[할렐루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라는 표현은 분명히 바울 자신만을 두고 하는 표현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를 비롯해서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모두를 아우르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1. 누가? 우리를 새언약의 일꾼을 삼아 주셨다는 이야기 인가? 바로 온 우주와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이 죄악의 땅에 자신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 주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

만약에 이스라엘 중의 어떤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면 확신이 적을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거룩한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놀라운 확신이다.

2. 누구를?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닌 우상 섬기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리(나)를 새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 한번 해 볼 태면 해봐가 아니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그의 아들의 피로 씻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점재해 주셨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 죽이는 일과 살리는 일. “율법 조문[헬, 그람마(gramma)]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정죄해서 죽이는 직분이 아니라 살리는 직분으로 부르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므로 일 자체가 행복한 일이다. 그의 명령을 따라 전하고 순종만하면 틀림없는 생명을 얻게 하는 놀라운 영생의 의사들을 삼아 주셨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를? (우리 모두를!)

우리가 율법 속에서 이스라엘의 한 부분이기 보다 새언약 즉, 즉 살리기만 하는 은혜의 일꾼들로 선물의 전달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께서 만족히 여기시고 일꾼 삼아주셨다면 이 귀중한 역할에 한 사람도 하나님의 이 믿음에 실망시켜드려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를 만족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주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는 …



Ⅱ. 의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다.(7~9)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OT의 일꾼들은 결국 죽게 하는 정죄의 일꾼들로 쓰임 받았을 분이다. 물론 완전히 지키기만 하면 구원 얻을 율법이지만 한가지라도 범하면 모두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약2:10)에 죄에 더 익숙한 인간이 그 율법의 판단 앞에 살아 남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확인을 하게 했던 것이 바로 OT의 율법이요 그 일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OT의 가장 마지막 선지자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세례요한 조차도 마태복음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눅7:28)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신 복음 속에 가장 하찮은 사람이라도 주님의 피를 힘입고 물과 피로 거듭 났다면 구약의 율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바로 받고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비쳤던 모세보다도 훨씬 복된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믿습니까!]

1.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도 백성들이 볼 수 없었다.“…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7b)

사실 짐승의 피와 번제로 제사를 드리고 사죄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두려워서 모세의 얼굴에 잠시 나타난 영광도 볼 수 없었었지만 복음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증거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하였고  “…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벧전2:9b)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벧전5:10f)

2. 그러므로 모세보다 비교될 수 없는 영광의 직분이다.“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8) 절대로 완전한 비유는 될 수 없겠지만, 죽은 사람을 장례 하는 장의사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장례를 잘 치러준 사람은 곧 잊어버리지만 죽을 목숨을 살려주면 평생을 감사하는 세상의 차이와도 같은 것이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9)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법원 판사도 위엄 있어 보이고 영광스럽게 보이지만, 어떤 입장에서든지 사람을 살려주는 사람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도 귀하게 여긴다. 하물며 영원한 영광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일이야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우리 모두에게는 이 놀라운 권세와 역할이 주어졌다.

때로는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하려 할 때 이 세상에서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빛과 생명에 속한 의의 직분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이것은 결코 우리가 썩힐 수 없는 귀중한 직책이다. 이 같은 놀라운 일꾼으로 부름 받은 영광의 직책을 잘 활용하여 영광에서 더욱 영광으로 빛나는 …



Ⅲ. 새 언약 속의 영광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10~11)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여기서는 옛언약에 대한 새언약의 우월함을 최고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르면 달빛이 쓸모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직접 받았던 모세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아래 가치를 잃고 말았다.

이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기능이 소멸되었다고 율법에 대한 이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물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은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더 이상 빛을 잃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 아래 있게 되었다는 선언이다.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8:7~13 말씀인데 첫 절과 마지막 절만 인용해 보면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 와(7); 새 언약이라 말씀 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13)

1. 죽이는 직분도 아무나 가질 수 없었고 영광스러웠다.(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오로지 이 인류가운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였던 모세와 특별한 몇 사람만이 가능했고 그 영광도 그리스도의 빛 아래 사라지고 말았다.

2. 복음 속의 영광은 그 주신 분의 영광 속에 들어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빛의 영광 생명의 영광은 이 세상의 육신의 삶을 벗어나서도 지속될 뿐 아니라 오히려 이 제한된 육체를 벗게 될 때 더욱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류 모두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서 지불해 주신 대가는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었다면 우리 각자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우리 각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남아있다. 그것은 영원한 영광 앞에 설 때까지 이 영광된 직분을 잘 감당하고 생명의 직분 의의직분을 썩혀 버리지 않고 잘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영광된 의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마지막 주님 앞에 더 큰 영광을 입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