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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히 5:11~14 2011-04-10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히브리서는 믿음뿐만 아니라 성경(OT)을 알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는 신앙의 권면이라는 데서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다.[멜기세덱-예수 그리스도]



Ⅰ. 때가 오래면 당연히 자라야 한다.(12f)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시간만 가면 무조건 자라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음식을 섭취하고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부활 후 갈릴리에 고기 잡으러 가서 밤새 헛수고 하고 힘을 잃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요21:12f)

①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②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③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매주 먹어야 하는 말씀은 우리 영혼의 주식이다. 그것은 가끔 부담 없이 가볍게 먹는 사이드 메뉴가 아니라 꼭 먹어야 할 식사로 ‘저것마저 못 먹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먹어야 한다.(이미숙 자매의 경험)

자녀들이 밥을 먹지 않으면 얼마나 애를 태우는가!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이 1주의 말씀을 놓지만 2주를 굶는 것이 된다.

우리는 몇 십 년을 영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을 지키고 있으니 부끄러운 모습이다. 가르칠 만큼 성숙해야 함에도 여전히 초보적인 것을 찾고 있고 그러면서 사실은 초보자들 때문이라고 핑계하고 있지 않은가!



Ⅱ. 부드러운 식물은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하다.(12b~13)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헬, 네피오스(nepios), 제대로 말을 못하는, 듣는 것에 이해가 부족한]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헬,아페이로스( apeiros), 서투른, 익숙치 못한]” 육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언어의 수준에서도 의사전달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육체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주변에는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의 풍부한 비유와 은혜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본다. 요6:60~69에는 벳세다의 언덕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베푸신 후 영과 육의 양식을 말씀하시자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

사실 비유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65)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기적으로 만든 음식이 특별한 것이 아닌 그들의 일상적인 음식인 떡과 생선이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Ⅲ. 자라서 성숙한 사람은 단단한 식물을 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로 한다.(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①단단한 식물을 소화하는 것은 어린아이는 감당치 못한다.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②거친음식을 먹지 못하고 부드러운 음식만 섭취하다 보면 배변에까지 문제가 생긴다.

③말씀의 지각을 사용하지 못한다. ④선과 익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19:9~10) 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할 바를 하지 못하면서 투정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는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결국 하나님께서 속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이다.

믿음이 자라지 못하면 지체 부자유자가 된다. 자라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스스로 종노릇 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평안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도 부모를 떠나서 가능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스스로 종되려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종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친구로 부르셨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절대적은 권력 밑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카다피 밑에서도 40년이 넘도록 종노릇 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그들도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6:1~2)

히10:38~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