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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4:7~13 2011-04-17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한가지를 뽑는다면 연약한 인생을 스스로 감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꼭 같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긴 하지만 모든 인생의 위기와 고통을 담당해 주시는 절대적인 능력자가 함께 우리 각자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이점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진정한 그리스도 인이라면 절대로 인생의 패배자는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이다.



Ⅰ. 사람은 질그릇에 불과하다.(7~9)

사람을 부정적인 존재로 평하는 것은 비단 성경만이 아닐 것이다.[성경–草露, 안개, 풀(짧은 인생); 조지 오웰-동물농장] 연약한 인생의 주제는 철학의 과제였고 한탄의 시의 제목들이 된 것도 사실이다. 반드시 빚어진다.

1. 사람은 질그릇에 불과하다.(7f)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다른 그릇들은 낡거나 깨어지면 녹여서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질그릇은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그릇이다.(거친 초벌에 유약을 바른)

2. 그러나 이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다.(7f)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개울가의 한 줌의 흙]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우리 자신의 손해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손해이다.

3. 가치는 그릇에 있는 것에 있지 않고 담긴 것에 있다.(7m)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릇의 종류로 비유하는 내용도 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4. 삼수갑산에 있어도 갇힌 것이 아니다.(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사방이 다 막혀도 우리를 건지실 분은 열린 위에 계시기 때문이다.(왕하6:14~17) ‘아이고 답답해! 답답해 죽겠네!’는 그리스도인의 언어가 아니다.

5. 오뚝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 사도는 성도의 고난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자신에게 가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주님께서 세워주심으로¨



Ⅱ.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당하는 자에게 반드시 생명은 나타난다.(10~11)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십자가의 고난과 같은 환난이 반복될 수는 있지만 이것은 고난을 견디고 영광을 누리며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신비한 역사를 삶 속에 계속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1. 항상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과정이다.(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2. 믿음으로 살아있는 자만이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다.(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만약 그리스도인이 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음에 넘겨진다면 그것은 곧 그의 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증거이다.



Ⅲ. 변함없이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12~13)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12)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려한다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의 희생으로 인하여 생명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 사도의 희생으로 고린도 사람들에게 생명을 끼친 것처럼 같은 역사가 희생의 사람의 주변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패배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승리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3:13)는 바울과 같은 확신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13) 시편기자는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시116:10) 라고 고백하는 같은 믿음을 바울도 고백하고 있고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깨어지면 다시 복원될 수 없는 모양 없고 가치 없는 질그릇, 그러나 그 안에 이 세상에 어떤 귀한 보배보다 더 귀중한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졌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던 고통을 당하든 생명이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과 고백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