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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4:14~18 2011-04-24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오늘 나(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서 보고 있는가![x눈에는 x만 보인다, 고물, 수집가, 예술가] ‘무엇을 주목해서 보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말해주는 것이다. 무엇을 하던 최종적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그 사람의 소망이며 바램이라는 데서 무엇을 눈여겨보느냐! 하는 것은 각 사람의 인생을 말해준다고 하는 데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초등학생들의 화장, 겉을 치장하고 꾸미는 오늘의 시대.]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눈 여겨 보는 것은 사라지는 이 지나가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 너며 영원한 것에 집착하게 되어 있다. 이미 거듭난 사람의 눈은 천국을 보고 있기 때문에 흘러가는 냇물 같은 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벗 꽃에만 눈을 두고 산다면 꽃이 저버릴 때 얼마나 허무하고 서글플까!) 오늘 이 말씀과 더불어 나의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를 확인하는¨



Ⅰ. 구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했다.(14~15)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삶과 기대는 언제나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되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했다. 자신과 고린도 교회가 이때까지 있게 된 원인이 주님의 십자가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금 상황과 형편에 관계없이 그 너머에 있게 될 주님의 영원한 약속에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바울은 이미 이 고백을 앞에서도 한 바 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1:6)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Ⅱ. 낡아짐을 감격하고 고난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16~17)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한마디로 늙어짐을 기뻐한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세상적 가치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로 비교되는 것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앞의 2절에 나타난다. ①거역하던 자신이 긍휼로 인하여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심(1). ②미래의 영광된 부활의 승리에 함께 참여하리라는 소망(14). ③고린도 교우들의 영혼을 굳세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기 때문(15). 여기의 ‘속사람’은 복음을 통하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영적인 존재를 말한다.(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복음을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거듭난 영혼이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워지므로 마지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엡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골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오늘 나는 이런 약속에 확신이 있는가!



Ⅲ. 눈 여겨 보는 것이 영원함에 있기 때문이다.(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은 세상에 나면서 누구나 가지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거듭남의 판단기준) 나중 예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6]”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을 필요 없다거나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원한 영광을 이뤄가는 것이 이 육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육신의 삶의 가치가 없다면 영원한 영광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가치가 점점 육신의 삶에서 영원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래야만 한다.

바울 사도의 애쓰는 목표와 이유는 이 세상에 사라질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가 같은 믿음을 가졌다면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이것을 가능케 하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오늘의 삶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약속을 확신하기 때문에 육신은 낡아지고 쇠해가도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확신이 되었고 사라질 세상의 영화보다는 영원한 주님의 영광에 마음과 생각을 더욱 든든히 고정할 수 있었다. 결국 미래가 확실한 사람은 오늘의 환난에 절망하지 않는다. “이 고비만 지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