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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5:1~7 2011-05-01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아니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이 구원이 영원하다던가 영광스러움을 실감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진실로 하늘로부터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사는 사람들은 육신의 형편에 관계없이 영원한 영광을 입게 될 것을 확인하고 있다.



Ⅰ. 육신의 장막집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1~3)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바울 사도는 한번 벗게 될 이 육체의 집보다는 오로지 연원에 속한 사람이 세우거나 허무를 수 없는 집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이 고백을 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제건 한번 죽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치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죄 사함을 받은 육체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우리가 현재로 살고 있는 집은 아무리 편하고 호화로워도 임시 거처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육신을 벗은 후라야 영원한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이 집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거처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2)

하늘로부터 거듭나고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이면 세상에서 오로지 영원한 처소를 사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2)

그러나 벗은 자로 하나님 앞에 서서는 안된다.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3) 우리는 거듭남으로 입게 된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옷, 예수 그리스도를 벗은 상태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이 육신을 벗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는 깨끗한 세마포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서야만 한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8)



Ⅱ. 생명의 권능은 성령을 주신 것으로 보증된다.(4~5)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때로 육신에 갇혀있다는 안타까움으로 탄식할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을 해 놓고도 영적이지 못함을 탄식하며 바울처럼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 조차도 이러한 것들을 탄식하는 것을 로마서 7장에서 보게 된다. “참으로 이 장막[헬, 스케노스(skenos),천막, 임시 거주지,]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4f)

그러나 삶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육신에 사는 것을 탄식할 필요는 없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4b)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8)

그러나 믿음으로 갖는 확신은 이미 우리의 죽을 몸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들어가 있다.

이것을 이루고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께서 거듭난 사람들 속에 와 계시는 것이다.(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



Ⅲ.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라면 육신의 기준으로 살지 않는다.(6~7))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의 미래가 분명한 이상 우리는 벗어야 될 이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이나 형편을 이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주의 말씀과 같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4:18)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주님과 온전히 하나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6) 언제나 우리의 육신은 주님과의 관계에 간격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넘어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1:23)

다만 육신을 입고 살면서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육신을 입고 있지만 벌써 기준은 그 입고 있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천국의 기준에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