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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5:8~15 2011-05-08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주님을 위한 것이요¨  
우리는 믿음으로 산 다고 하는 것을 단순히 관념적인 것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어떤 입장에 있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각자가 마지막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는 생각했던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한 삶에 대해서 대가를 받게 될 것임을 오늘 본문은 강조한다.

이 시대에, 이 역사에 진정으로 미쳐볼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마음을 주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뛰어들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나 대상이 있는가! 사실 이 역사 속에는 그러한 대상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한다. “내가 정성을 쏟은 것이 얼만데!” “내가 투자한 게 얼만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이렇게 우리의 삶을 바칠 대상이 분명해지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도 더욱 분명해 진다.



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각자의 담대하여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 사도의 간절한 기대는 오히려 이 육신을 벗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어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육신 안에 있으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을 떠나서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에 사는 것이 어찌 보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당부하는 것이다.

“육신에 있는 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육신에 살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육신을 벗은 후에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또, 우리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기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오히려 쉽다. 주님은 진실하고 겸손하기만 하면 언제나 기뻐하시고 그런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2:23b)



Ⅱ. 하나님께서는 모두의 삶을 아신다.(11~13)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바울 사도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아주 조심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주님의 두려우심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다른 말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을 순종하지 못한다면 두려운 분 이심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바탕위에서 사람을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속속히 다 아신다. 겉만 화려하게 차려 입은 거짓된 자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미쳐도 결코 손해 될 것이 없다. 하나님께 미친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온전할 수 있는 것이다.



Ⅲ.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모든 사람들은 사실 자신을 위해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 자신이 된다. 그러나 대신 죽고 살려주셔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과 함께 나를 영원히 살게 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 때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고 최종적으로도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꿰뚫어 보시고 낱낱이 아시는 그 주님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를 위하여 대신 죽음을 선택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때로 안다는 것 때문에 위기를 당할 때 강권한다. 그러나 사랑이 강권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나도 죽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저주받아 죽을 자리에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형을 당하셨다면 우리는 나를 나 되게 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을 수 있어야만 한다.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려는 이기심을 버리고 나를 살려주신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