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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고후 7:2~9 2011-06-19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위나 섬김, 권면에 있어서 인간적인 이유가 개제되어서는 안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의 관계이지만 그 관계의 이유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근거를 하나님으로부터 찾아야 하고 관계를 지속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유지하지 않는다.

말씀을 권면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이런 근거를 분명히 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고린도 교회처럼 자신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걱정하고 기도하는 바울을 오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서 만나고 살아간다면 영원 속에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데서 늘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군대에서 선배라고 대개 몰아 붙였는데 사회에 나와서 외 나무 다리와 같은 상황에서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하지만 역시 영원을 향해 함께 가는 운명은 아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영원을 향한 운명공동체 라는 사실에서 생전에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Ⅰ. 운명을 같이 한 사람들¨ (2~4)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하여 쓴 소리를 한 것은 모두가 함께 가는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고린도 교우들은 잘못된 교사들의 사주를 받아서 바울의 가르침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①마음속에 우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라!(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6:13) 앞에서도 같은 당부를 이미 들은바 있지만 다른 대상을 행해서는 여유가 있으면서 바울을 향해서는 마음을 전혀 열지 않는 안타까움을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②함께 살게 하려고 이런 권면을 한다.(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지적 받거나 고칠 것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고 자신을 대적하려 든다는 오해를 갖는 경우가 많다. 모든 신앙의 부분에서 사실 원수를 삼으려고 지적을 하는 예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를 비롯해서 바른 지적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③진실이 통할 수 있었으면 한다.(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권면은 주님의 바른 종이라면 상대를 해롭게 하려는 것은 없고 속일 수도 없다. 만약에 상대를 속이거나 해롭게 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한다면 그 전하는 당사자가 하나님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Ⅱ. 작은 것이 큰 위로가 되는 관계¨(5~7)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나 일꾼들도 때로는 어떤 상황에서는 육체가 편지 못하고 마음의 안타까움을 견뎌야 할 때가 있음을 바울은 고백한다. 바울이 이렇다면 우리야 더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처지는 이미 1:9에서 고백한 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①주님의 일꾼이나 백성들도 답답할 경우가 있다.(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②그런 상황을 믿음으로 견딜 때 위로가 더 크다.(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③어떤 상황이든지 믿음은 언제나 기쁨으로 결과한다.(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Ⅲ. 서로를 상하지 않는 근심(8~9)

진심에서 주는 권면은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기뻐하게 만드는 근심

①주님의 매질은 언제나 짧다는 사실을 안다.(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②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사람을 상하게 만들지 않는다.(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음주에 선한 그심에 대한 여러 가지 결과들을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10f)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1:6)

하나님의 백성들은 공동 운명을 가진 관계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원 속에 함께 있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백성들과 일꾼들도 때로는 육체와 마음의 고통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길거나 크지 않으며 영은 변함없이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완벽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때로 아픈 권면도 믿음으로 감당하면 상함보다는 회개에 이름으로 더불어 감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