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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1:6) 라는 믿음으로, 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근심을 할 수 있고 서로에게 갖는 신뢰감에 다른 사람을 참여시킬 수 있다면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나중에는 분명한 기쁨이 될 것이다.
Ⅰ.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10~11)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 각자의 영성이 변할 수만 있다면 …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이나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10f)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사망을 이루는 세상근심으로 더 자주 충만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10b) 이왕에 근심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의지를 따라 “어떻게 살아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고민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은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헬, 포소스(posos), 많은, 큰, 무엇]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헬. 알라(alla),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정말]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11f)를 반복한다.
그러한 최종적인 저들의 믿음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b) 모든 신앙인들과 교회가 결론이 이럴 수만 있다면 …
Ⅱ. 근심 뒤의 기쁨¨(12~13)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12)
바울 사도의 책망의 메시지는 자신의 진실함을 하나님 앞에서 저들에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기준에서 증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불의를 행한자들에 대한 공격보다도 거기에 휩쓸려 당하고 동조한 사람들이기 보다는 주님의 앞에서 진실과 사랑을 가지고 호소하는 것이다.
사실 거짓보다 진실이 더 잘 통하기 어려운 것이 이 세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주신 그대로를 전하면 사람들은 별로 들으려 하지 않지만 약간 변경시킨 거짓된 교훈에는 쉽게 귀를 기울이고 넘어가 버리는 예가 더 많다.
그러나 사실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원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거짓을 진리보다 더 쉽게 수긍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벳세다의 언덕에서 기적의 떡을 먹이면서까지 말씀을 가르쳤지만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7~68)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13) 하나님의 종은 말씀을 듣고 삶을 고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 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바울과 디도는 잘못된 교사들과 함께 오해하고 곡해하던 고린도 교회가 진리로 돌아선 것을 보고 감격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근심 뒤에 회복한 기쁨은 더운 타작마당에 냉수 한 그릇처럼 주님의 일꾼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보는 것이다.
Ⅲ. 믿음으로 온 기쁨¨(14~16)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디도에게 편지를 들려 보내면서 “참으로 고린도교회는 좋은 교회이기 때문에 내 편지를 읽는다면 진리로 돌이키게 될 정도로 훌륭한 성도들이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적으로 고린도 교회는 디도를 통한 바울의 안타까운 눈물의 편지를 받고 거짓에서 돌이키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14)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또는 교회를 믿고 자랑했는데 그 사람이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가 실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서면교회는 말씀대로 행하려고 애쓰는 교회다.” 했다면 정작 그 사람이 와서 봤을 때 사실이라면 서로에게 엄청난 기쁨과 감격이 될 것이지만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부끄러움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15) 고린도 교우들은 바울에 대한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디도 앞에 그대로 표현 하여 처음 바울을 대할 때처럼 디도를 영접하고 순종한 것 같다.
비록 한 때 거짓 스승들의 간교한 가르침으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을 대적하고 원망하는 편에 섰지만, 적어도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로 받아들인다면 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디도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디도가 바울을 대신해서 이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16)
사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귀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당연히 서로를 자랑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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