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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 드림에 대한 모범을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을 통해서 증거했던 바울은 좀더 신앙적으로 자신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드림에 관한 문제는 마음이 중요함을 증거한다. 오늘의 뒷부분에서는 광야 40년의 삶 속에서 이스라엘이 먹고 살았던 만나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남거나 모자람이 없으신 하나님의 채우심의 삶과 함께 드림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과하지 않게 주고 받는 것임을 가르친다.
Ⅰ.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7)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12, 16)
가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나시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 눅9:58)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19:23; 마27:35) 우리의 죄를 지시고 죽으실 때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이 실감이 나는가! 이렇게 철저하게 가난하게 나시고 사시다가 죽으신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나)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Ⅱ. 마음의 원하던 대로 하라!(10~12)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시76:11)
①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이 구제사업에 대해서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공동]”
②연보를 드리는 것은 사실 드리는 당사자에게 유익하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③사실 자발적인 일이었었음을 기억시킨다.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10b)
④신앙은 마음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11)
⑤있는 것을 드리라.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11b~12) 연보는 세상에 쓰여지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먼저 마음을 받으신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마음이 있다면 드릴 수 있고 주님은 억지로 요구하지 않으시며 이것은 이미 마케도니아 교회들을 통해서 보여 준 바다. 오늘도 중요한 것은 마음과 결단이다. 거리도~ 돈도~ 마음의 문제이다.
Ⅲ. 남는 것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인생,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삶이 되라!(13~14)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고린도 교우들 가운데는 자신들에게서 물질을 빼앗아 예루살렘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려 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교회가 나눔을 실천했던 것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2:44~4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언제든지 삶의 상황을 뒤바뀔 수 있기 때문에 있을 때 베푸는 것은 저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이제 마지막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실제 역사를 통해서 교훈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출16:16~18)
아무리 많이 가진 자도 갈 때는 두고 가고 주님을 의지하여 사는 사람은 모자람이 없이 감사하게 살다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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