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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8~9장에 걸쳐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에 대해 자세히 가르침을 준 바울은 이 10장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증언을 하는데 바울은 그의 서신들마다 보는 대로 절대로 자신의 학문이나 위치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은 보기 힘든다.
그럼에도 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자격을 길게 증거하느냐 하면 자신이 세운 교회인 고린도에 들어와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 바울에 대해 비판적으로 모함하는 거짓 사도들 때문에 자신의 사역에 대한 근거가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사실을 분명히 함으로서 마찬가지로 자신으로부터 들은 복음이나 신앙적 교훈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다.
타락한 사람들의 죄의 성격은 자신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에게 흠집을 냄으로 그런 사람보다는 자신이 났다는 옳지 못한 자세를 1세기뿐만 아니라 2천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르지 않음을 오늘의 정치 세계에서 자주 보아오는 모습들이다.
사실 사람을 비교하여 평가하고 그것도 옳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비열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것이 합당치 못한 것이 자세이다. 오죽하면 바울 같이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이렇게 까지 나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당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의 간교한 자세를 짐작 할만 하다.
오늘도 개인의 인격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일이 참 쉽지 않음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거짓이 더 진리 같고 진리를 지키는 것이 더 바보스럽게 여겨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종말의 끝에 와 있다는 사실의 증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Ⅰ. 같이 있든 멀리 있든지 한결같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다.(1~2)
(1)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세상 사람들은 사람 따라 처신하는 것이 다르고(약대 강, 강대약) 대상에 따라 자신을 맞춰서 좋은 평가와 결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1f) 이 말은 사실은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 바울을 모함하려는 적대자들의 표현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있어 편지를 쓸 때는 담대하고 강한 어조로 말하지만 막상 얼굴을 대하고 만났을 때는 비굴하고 우유부단한 것이 바울이다.’ 라는 악의적인 표현은 사실에 있어서는 절대로 바울의 모습이 아니다.
바울이 이미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는 사람이었다.
또 하나의 참기 힘든 적대자들의 모함은 “바울도 어쩔 수 없이 세상적인 가치 기준과 동기에 따라 행동하며 이기적인 욕망과 육체에 따라 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앞의 1~2절 모두는 바울의 영향력을 고린도 교회에서 몰아 내려고 하는 대적자들의 모함이지만 바울은 이들을 대하듯이 고린도 교우들을 대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적어도 거짓 일꾼들까지 부드럽게 대할 수 없는 진리의 사도였었다.
우리 역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권면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몰아 부치는 인간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진리나 종을 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Ⅱ. 우리의 싸움은 육신에 있지 않다.(3~6)
(3)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도나 직분자가 아닐지라도 육신의 기준에서 사람을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①육신의 기준에서 싸우지 않는다. ②복음은 육신의 싸움에는 불리하다. ③하나님을 대적하여 복음을 헛되게 만들려는 허황된 세상의 이론을 무너드리는 생명과 진리의 변호인 들이다. ④거짓스승들에게 속아 그리스도와 바울을 대적하는 저들을 벌할 것이다.
Ⅲ. 주님께서 주신 권세는 세우기 위한 것이다.(7~8)
(7)너희는 외모만 보는 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은 겉모양을 중요하게 여긴다.[사람의 외모를 꾸미는 요소는 많다. 태생, 집안, 학벌, 학연, 지연 등등] 바울이 천막을 만들면서 헌신적으로 고린도교회를 세울 때는 그의 초라함을 오히려 존경하고 귀하게 대하던 고린도 교우들은 그럴싸하게 꾸미고 나타나 자신들을 거짓되게 가르치는 그들에게 속아 바울의 외모를 비웃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던 것 같다.
적대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적 가치를 바울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내세운다면 바울과 디도는 더욱 그러하다는 선언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7)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8) 하나님께서 직분이나 권세를 주셨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믿음을 헛된 것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조차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이런 입장에서 한 사람을 실족시키는 무서운 형벌이 있는 줄을 알라고 하는 주님의 경고를 함께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고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타인을 실족 시키는 것에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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