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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위기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라는 데 가장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본문은 그렇지 않아도 덤벙대고 성미 급한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상황도 주님께서 정말 절묘하게 선택하신 것 같고 어찌 생각하면 베드로가 아니라도 아니 베드로보다는 더 낳은 제자를 찾을 수도 있으셨음에도 베드로를 부르시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고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낳은 사람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에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사실을 이 말씀과 더불어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의 좌절과 부족됨을 믿음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Ⅰ. 사람의 모든 방법을 부정하는 것이다.(1~3)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무리들은 몰려와서 주님의 말씀이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온 갓 자신의 경험과 방법을 다 써 봤지만 허탈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의 성공이 영적으로는 헛 그물질일수도 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영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라면 헛 그물질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또 그 일을 위해서 시도하기 위해서 그물을 씻는 가치 없는 도전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천만 다행이인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 말씀을 전하셨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이렇게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사람의 방법과 수완을 다 동원하여 또 헛 그물질을 할 수 밖에 없는 베드로와 같은 우리를 찾아 오신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의 특별한 한 가지는 주님께 헌신 되었을 때 넘치는 은혜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3)
Ⅱ. 남은 것은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이다.(4~5)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①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신다면 세상적으로도 절대로 값없이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때로는 즉각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장 큰 대가는 영원의 영생과 영광이다.
②그러나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 볼 수 없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모든 것은 우리 생각과 판단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지만은 순종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사64:4)
③나의 모든 헛된 수단을 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④이제는 실패한 인간적인 수단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순종하는 것이 “말씀에 의지하여” 이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눅6:46~48)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2:5)
Ⅲ. 이렇게 하시려고 주께서 십자가를 지셨다.(6~7)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실패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실패가 오히려 복이 된 것이다. 적어도 베드로는 그랬다. 요즘 고기 잡는 어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 비해 고기가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 사건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고기를 많이 잡은 것이 핵심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것이 더 중요하다.
①베드로를 부르신 주님은 오늘 우리를 동일한 십자가의 구원으로 부르셨다.
베드로를 기적의 고기잡기로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면 오늘 우리는 그보다 훨씬 큰 기적인 그리스도의 삶으로 부르신 것이다.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죽었다.” 이것은 사실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하신 베드로에게 주신 기적과 비교할 수 없는 표적이다. “시므온이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눅2:34)
②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사람이 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6) 사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따르게 된 것 아닌가!
예전에서부터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것을 배우면서 자라고 또 그렇게 살아온 베드로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고기를 그것도 이런 아침에 잡아보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랬기 때문에 선 듯 그의 삶의 도구인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다.(요21장에 다시 한번)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낮에 두 배에 채울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자신의 평생의 고기 잡는 기술이 주님 앞에는 별 것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에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나섰을 것으로 이해가 된다.
③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언제나 풍성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참여시키게 된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7)
복음은 나를 변화시켜 만족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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