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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공관복음에서 이런 표현을 쓰시기 전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를 비롯해서 OT에 이스라엘을 향하여 수없이 이러한 당부를 주셨다. 사실 이방 나라들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당부를 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멀리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3:2) 하셨고 이러한 주님의 고백은 인류를 위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후에 주님께 속한 백성들도 다르지 않으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31:3) 하셨고 그 끝없는 사랑을 쏟으신 우리를 향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이런 이유에서 주님은 자신을 절대로 2번째 사랑의 대상으로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들을 향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30) 당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것을 다 주신,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사랑하신 자들에게 “다하고, 다하고, 다하고, 다해서 사랑하라”시는 것은 결코 지나침이 없으시다.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로 드려야 되는 예배조차도 세상의 다른 것에 드림으로 조금이라도 주님을 서운하게 해 드렸다면 올해는 철저하게 하나님께로 돌이켜 섬기고 사랑하는데 “다하고, 다하고, 다하고, 다해서 사랑하는 하나님과 사랑의 보조를 맞추어가는 …
Ⅰ. 우리가 섬겨야 될 분은 한 분뿐이다.(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우리가 한 분도 잘 못 섬기는데 여러분이셨으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당시에는 주라고 칭하는 것들이 더러 있었다. 시져나 우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고전8:5) 거기에 상대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아이러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사실에 있어서는 그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7~38)시는 주님의 말씀이 민주화의 시대에 너무 독선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은 영적으로 확실히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됨도 제대로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무조건 포용하시는 사랑은 아니다. 우리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죄였기 때문에 자신이 갚기까지 긍휼로 해결해 주셨을 뿐이다.
행여 우리 중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더 위하는 것이 있어서 그분을 예배하고 경배해야 할 시간에 다른 것을 위하지는 않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볼 때는 마치 아내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의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배조차도 면죄부를 받는 것처럼 하는 경우들도 더러 보이는데 진리에 산다고 하는 사람들로서는 대단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모든 이에게는 감격과 찬양이 충만한…
Ⅱ. 다하고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독선적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당부의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셨듯이 가진 모든 것을 기쁘게 들릴 수 있어야만 한다.[마음, 목숨, 뜻, 힘]
사실 OT에서도 이렇게 4가지를 지적해서 사랑하라는 당부는 없는데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한 주님 앞에 사실 우리는 우리 것을 드리는데 너무나 아까워할 때가 많지 않은가! 물질로 시간을 대신하려 하고 드림에도 계산을 해 볼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모드 드리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기꺼이 받지 않으신다.
그런데 사실 여기 4가지 모두가 우리의 겉으로 가진 것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마음, 목숨, 뜻, 힘] 그럼에도 외형적인 모든 것을 쓰는 데는 이 네 가지가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님께 아끼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더욱 아끼지 않으시고 주실 것이다. 믿으시기를 …
Ⅲ.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33; 마22:37~40, 마음, 목숨, 뜻,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지만 그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형제 사랑으로 나아가야만 그 하나님 사랑은 검증이 된다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0~21)
성경에서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절대로 아니다. 상대를 나 딴에는 최대로 사랑했다고 하지만 진정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했는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에 오셔서 우리의 필요와 방법을 따라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리고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①사랑과 충성. 사랑은 신실과 충성으로 지속된다. 부부관계가 그러하듯 영적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와 성도간의 관계가 그렇다.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헬, pistos- 믿을 만한, 믿는, 신뢰하는, 확신하는, 진실한]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사랑하라 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라,
②사랑과 생명. 사랑과 생명의 관계, 사랑은 결과로 생명을 낳게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랑의 결정체들이다. 특히 영적인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결정체들이라는 데서 하나님은 더욱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인류가 경배하며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이다. 죄로 말미암아 오로지 절망과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 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결정체들인 만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뿐이다.
그러한 사랑은 당연히 이웃과 형제를 사랑 받은 것과 같이 사랑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그러므로 주님께서 희생에 대한 기쁨과 영광을 받으시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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