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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거듭난 우리의 신분에 대해 선언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였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우리의 본받아야 할 대상조차도 바뀌었음을 당부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2f) 베드로 사도 역시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벧전1:14) 라고 같은 당부를 주고 있다.
결국 우리의 새로운 신분의 삶 자체가 승리할 수 있는 근거가 됨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사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영적인 것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주님은 증거하신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b)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모범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그리고 다시 24절에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하여 죄에 대해 죽었음을 증거하고 바울 역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 라고 과거의 신분으로 살 수 없음을 증거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패배하는 원인은 주어진 새로운 신분이 아닌 과거의 신분에 돌아가 살기 때문에 역시 패배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우리의 의식 자체가 영적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헬, logizomai, 짐작하다, 헤아리다, 추리하다, 계산하다, 상징하다, 생각하다]”(롬6:11)
오늘 본문에 보는 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음에도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며 비록 지금은 완벽하지 못하지만 우리 속에 와계신 성령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데 이러한 귀중한 자녀의식을 잃는다면 우리의 깨끗함 조차도 지켜갈 수 없을 것을 경계한다.
오늘 요한 사도의 증거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삶으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며 살 필요가 있다.(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이 말을 더 쉽게 표현한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뜻이다. 합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주어진 이 말씀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4b) NT성경에도 여러 군데 인용되고 있다.(롬1:17; 갈3:11; 히10:38) 요한 사도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1f) 라고 격려하지만 이 귀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믿음으로 하지 않고는 너무나 먼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요한 사도를 통해서도 주님께서 같은 사상을 증거하는 말씀이 기록되고 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바울이 믿음으로 하는 고백은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증거하는데 이것은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증거한 다음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했는데
믿음의 삶이란 신앙의 지도자가 있건 없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항상 우리 안에 함께 행한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신분을 실제적으로 삶에 나타내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모습으로 사는 사람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지만 영적인 존재인 마귀 사탄은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새로운 하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 속에 함께 역사하시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거듭난 사람들에게 소망을 두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하신다.
과거 우리의 삶 속에는 어두움의 영이 주도하는 삶이었다고 바울은 증거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이런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능력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주도되는 새 신분은 놀라운 변화요 능력인 것이다.
Ⅱ. 장래를 확신하며 살아야 한다.(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현재의 상황 속에 차이가 없을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비록 육신에 살며 상황이 어떻든지 또 장래가 어떻게 될지 보다는 지금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신앙적 자세가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지만 세상 현실에만 충성한다면 장래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장래가 없는 사람들은 늘 다급하고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얻으려 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이 아직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미래와 영원을 기약하고 오늘을 기쁘게 희생하는 사람들이 신앙의 사람들이다. 유월절을 지내고 애굽을 영원히 떠나게 되는 이스라엘의 운명은 사실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두려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아직도 자신들을 종으로 부리는 나라요 아홉 번이나 하나님의 이적을 베풀었음에도 비웃고 완악한 바로 왕 앞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부유함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문인방과 문설주에 양피를 바랐다.
함께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던 그들에게 영 열리지 않을 자물통 같은 애굽의 장벽은 마침내 열리게 되고 죽음의 천사는 그러한 믿음으로 그 어둠을 지내는 자신의 백성들 대신에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던 바로의 권력아래의 장자들을 죽여서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였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현재는 우리가 이런 제한된 육체 속에서 힘겹게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장래에 주님의 위엄과 영광으로 변화되어 주님의 부활의 영광을 그대로 입을 것을 확신하고 오늘의 고통도 안타까움도 주님의 성령과 더불어 이기고, 또 이기려고 믿음의 싸움을 계속한다.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35) 장래의 영광의 확신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온 갓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기는 …
Ⅲ.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이다.(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사실 성결한 삶 자체가 그대로 승리하는 삶이다. 우리를 위하여 기쁘게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바라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 없이 두 번째 오시리라는 것이 변할 수 없는 주님의 약속이다.
사람의 신실함을 잘 알기 위해서는 주인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어쩌면 주님께서 하늘에 승천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 자체가 우리의 신실성을 시험하시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사실들을 주님께서는 므나나 달라트를 맡기고 외국에 간 주인(눅19:11~27; 마25:14~30)의 비유 속에서 말씀하신다.
베드로 사도는 이 세상의 마지막을 예언하면서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1~13)라고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으로 삼고 사는가! 이세상이 너무 좋고 편리해서 주님 오시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영적인 소망이 있을 리가 없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일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죄와 상관없이 깨끗한 사람, 자신의 십자가의 피로 씻김을 받고 자신을 기다리며 그 성결을 지킨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두 번째 오실 것이다. 또 장차 들어갈 새 예루살렘은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들을 비롯해서 더러운 것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계21:27f; 22:15)
그런 이유에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자들, 새로운 하늘의 신분의 성결은 어떻게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여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주님의 창조물들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질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적 성결의 지속적인 삶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듭난 백성들의 안에는 성령께서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럽힐 수 있음도 증거하신다.(고전3:16~17)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며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생활이 될 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보다는 장래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할 때 성결과 승리는 가능할 것이다. 위엄과 영광의 새 예루살렘의 백성 됨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깨끗한 하늘의 백성 됨을 말씀과 기도로 지켜갈 때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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