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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벧전 1:3~7 2013-06-23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소망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현실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워도 소망이 확실하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편안해도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무기력한, 재미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분명하고 잃지 않을 분명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실들은 초대교회의 말할 수 없는 박해 속에서 형틀에 죽어가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에 많은 불신자들이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을 주님의 나라에 더하게 하는 실제적인 전도가 되기도 했고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사실을 그의 글에서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4~15)

“꿈이 있느냐?, 꿈이 무엇이냐?”는 곧 소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바울 역시 당시 박해 받는 로마의 성도들을 향하여 당부하기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 땅에서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갖지 못한다면 진정한 소망은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소망을 튼튼히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5:8) 라고 소망이 우리의 보호도구가 됨을 증거하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즉, 그리스도인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소망의 중심이다.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b)

우리의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온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속죄의 역사가 바로 우리를 어둠과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겼고 이 소망이 이제는 세상의 모든 유혹과 죄악에서 이기게 하는 이유가 된다.

오늘 제목은 바로 바울 시도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시작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전1:1)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6:19) 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참으로 이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점검하고,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든 이 소망의 줄을 놓지 않는 …



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소망의 능력이다.(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빛과 평화의 동산 에덴에서 영원과 영광의 소망 속에 있던 인류는 하나님의 단 하나의 금지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두워졌고 결국 쫓겨남을 받아 더 이상 소망을 갖지 못하는 가련한 인생들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라는 말씀은 결국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소망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망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소망을 빼앗아 버린 사탄을 향하여 잃어버린 것을 회복해 주시리라는 선언을 하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의 많은 긍휼이셨고 찬송의 이유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3f)

사실 솔로몬이 지적하는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류가 소망을 갖게 될 것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은 이제는 죽음도 절망이 아니라 생명이 됨을 결과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b) 아담의 범죄 후에 사탄에게 선언하신(창3:15)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고 사심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이것으로 산 소망, 생명의 소망, 영원의 소망이 가능하게 하셨다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이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소망의 창조자시요, 절망을 기대로 바꾸시는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Ⅱ. 이 소망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소망이다.(4~5)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소망,헬,elpis (elpo, 좋은 예감이 들다.) 기대, 바람, 신뢰, 확신, 희망]

세상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또 다른 소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라고 증거한다.

물론 이 소망은 구속의 역사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이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있었던 것이고, OT의 성도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욱 분명해지고 확대 되어지는 것이라는 데서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라고 확인한다. 우리가 에베소서 2장에서 보는 대로 우리 이방인들은 이 소망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결국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소망은 절대로 사라질 수도 없고 약해질 수도 없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증거하고 있다.(4f)

이렇게 땅에 있는 것들은 낡아지고 사라져 가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의 근거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b)하였고 바울도 같은 증거를 주고 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

또 더 감사한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소망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올 때에 더욱 분명해 진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망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기대조차도 가질 수가 없음에도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5f) 것이라고 증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소망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약속까지 주고 계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5b)

그럼에도 이 소망의 기업은 오늘 우리들에게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4~5) 라고 하여 믿음과 연단과 성령으로 지켜감을 우리 각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Ⅲ. 믿음의 확신만큼 소망도 확실한 것이다.(6~7)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서두에서 말했듯이 1세기에는 이러한 소망을 보다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렵고 시험과 핍박의 시련을 견뎌야만 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약속된 소망을 통해서 현실을 이길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6)

그리고 다음 서신에서는 이런 기회로 더욱 소망을 확실히 가질 것을 당부하였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2~4)

오늘 우리 시대는 시대적인 입장은 다르지만 소망을 가진 자들로서 자세는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보이는 세계가 너무나 육신의 편리와 만족을 주는 것들 때문에 장래의 영원한 소망에 대해 등한 해질 수 있는 경계는 그 때와 다르지 않다는 데서 그렇다.

이래서 우리에게 더욱 분명한 말씀은 주어진 것이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오히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가진 소망을 더욱 키워 갈 것을 당부하고 있음을 듣는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히6:11)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을 향하여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고 요한 사도가 당부하고 있고 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라는 경계를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라고 경계하고 있다.

우리의 소망은 소망 자체가 담대하게 하고 승리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죄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근거한다. 이 소망은 창조주요 구세주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것이다. 믿음과 소망은 정비례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만 소망으로 세상과 죄를 이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