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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하나님께서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도구를 그의 백성들에게 주셨지만 이번보다 분명하고 완벽한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바로 앞에 9절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 기록되고 있다.
바울은 육신의 절망적인 삶을 탄식하는 7장을 넘어 8장에 들어오면서 육신의 한계는 인간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한 후 영의 사람의 완벽한 승리를 찬양하면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고 감격하고 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OT의 율법과 선지자를 뛰어 넘는 법인데 OT에서는 이과 같은 약속이 주어지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아도나이 야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노력만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다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약속을 자키는 것 자체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감당하는 것임으로 비로소 주님의 약속처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하신 약속이 진실이다.
그럼으로 오늘도 이 엄청난 약속을 받았음에도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애씀으로 신앙을 이어가는 것은 승리하지 못할 뿐더러 참으로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삶이다. 거친 땅을 고르기 위해 굴삭기를 대기해 뒀음에도 오로지 삽으로만 하려고 고집부리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자신의 고행과 노력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 안에서만 성령의 임재는 약속되고 있다.[불교의 가피력이 있기는 하지만 성령처럼 분명하지 못하다.-좋은 느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수없이 언급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성령이시다. 물론 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신 후부터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계시면서 우리의 삶을 지도하시고 위로하시고 책망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귀한 하나님의 인격이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성령님을 하나님은 영이신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요15:26, 16:13) 등등 수많은 별명을 가지신 분 이시라는 사실이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은 죄의 사람들 속에는 절대로 함께 하실 수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를 받고 거듭난 사람들 속에 오셔서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함께 신앙의 삶을 친히 이끌어 주실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는 구속의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성령을 말씀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6~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7~8)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3~14)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바울 사도께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는 권면은 우리가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분명한 약속을 주고 있다. 이왕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로 와 계신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 속에 계시는 인격이시다.(14~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오늘 읽은 첫 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거꾸로 이해하면 ‘육신의 삶의 원리를 따라서 사는 사람 역시 그리스도인이 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이 된다.
사람은 어떤 생각과 의지로 사는가가 그 사람의 사실된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고통스럽고 힘겹게 죄와 겨우 싸우도록 버려두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온 인류의 구속을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려는 행로에서 제자들에게 위로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주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도 제자들 특히 수제다라고 하는 베드로만 봐도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때로는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기까지 했던 것을 본다. 그럼에도 오순절날 성령의 춤만을 받은 베드로에게서 적어도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베드로의 모습이 이 제목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육신으로 함께 움직이면서도 언제나 육신적이고 인건적인 사람 베드로가 성령을 받지 못한 교인이라고 보면 오순절날 이후에 베드로는 꼭 같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차이를 보게 되는 데서 그렇다.
성령은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앞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죄인 되어 세속에 뭍인 우리의 썩고 상한 심령과 의지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삶이 되도록 역사하시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의지요 능력이시다.
이런 입장에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거듭난 자신의 백성들 속에 임재 해 계시는 인격 이시라는 것이다. 인격이시기 때문에 거절 당하실 수도 있고 외면 당하실 수도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는 말씀이 실감날 수 있다.
1.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들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성령께서는 죄의 사람 속에 함께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여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들 속에만 거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은 받아들일 수 없는 권능이다.
2. 물과 성령으로 난다고 하는 것은 동시적이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3:3) 하시고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 말씀하셨다.
오순절날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고 하여 이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3. 어떤 신비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인격의 변화이다. 성령에 대한 왜곡된 가르침들은 성령의 오심은 반드시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성령의 열매들이 육신의 소욕과 비교되고 있는 것들은 어떤 신비가 아니라 덕스러운 결과들이라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다시 연결되는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령으로 사는 삶의 결과를 연이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5~26) 즉, 과거의 육신의 삶의 모습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을 그의 백성들 속에 두고 가신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육신적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의지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씀이다.
Ⅱ. 믿음은 성령의 의지를 따라 사는 것이다.(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단순한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죄의 사람이 아니라 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러한 성령의 일깨우심에 늘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뜻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롬12:2)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성령께서 인격이시기 때문에 거역할 수도 있다. 언제? 우리 자신이 육적일 때 그럴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f) 하였고 “성령을 소멸치[헬, sbennymi, 끄다, 억누르다, 저지하다, 방해하다, 훼방놓다 등등] 말며”(살전5:19)
그러므로 성령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이며 성령을 거역하거나 소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복음서들과 요한 사도의 증거에서 두려운 말씀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막3:28~29; 눅12:10; 요일5:16)
믿음 생활을 잘 하는 것은 성령의 의지를 따라 사는 것임을 명심하자.
Ⅲ. 각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승리케 하실 것이다.(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상속은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 상속을 위해 고난을 견뎌야 하는 경우도 믿음의 삶에 반드시 있는데 이것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고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그러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신 약속은 바로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 분명하고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의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까지의 약속이 분명하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각자의 일생(평생)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보장하셨다는 약속이다. 다만 각자의 자세에 따라 누리고 잃을 수도 있다.
이왕에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면 늘 우리의 인생을 의논하고 위기를 상담해 주시기 위해서 와 계신 성령을 좋아 행함으로 늘 성령의 능력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승리하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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