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눅 5:12~16 2013-08-18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 내용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된 내용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귀중한 은혜의 음성이다. 누구나 평생을 가족들을 떠나 같은 불치의 환자들과 만 살며,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상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비극적이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난 나병환자가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주님을 찾아 오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병환자라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당장에 돌을 맞아 죽을 수고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은 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우리가 상고했던 데살로니가전서4:3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라는 말씀을 생각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기대는 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하고 부족하지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치 나병환자가 늘 진물이 흐르고 난육이 튀어 나오는 것처럼 흉측한 모습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의 죄로 일그러진 모습이고 이런 흉측한 모습에서 늘 깨끗함을 받으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오늘도 이 말씀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나병으로 추한 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서 수시로 튀어 나오는 죄의 속성을 매 순간 치료받아 항상 깨끗게 되기를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고 계심을 오늘 나의 말씀으로 듣자.



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했다.(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여기에 가족들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려진 한 인생이 있다. 그는 평생을 어쩌면 이렇게 외면당하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비극의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것이 비극이 전부가 아님을 확신했던 것 같다.

그는 어느 동네에 살고 있다든가 어디로부터 왔다는 기록이 없는 이유는 그의 처지 그대로 버려진 인생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그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온 몸에 나병 들린”이란 표현뿐이었고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닌 절대로 부정적인 환경과 입장뿐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가 그런 형편과 처지임에도 그 비극 그대로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①그는 예수께 나아왔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마8:2f) 사실 이것 자체가 믿음이고 확신이다. 만약에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나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확실한 분이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만나야’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가 주님께 나아오는 데는 죽음도 각오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에서 죽기살기이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든지 가지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분이시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믿음이다. 사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러지 못해서 해결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문제를 안고 무조건 주님을 찾은 이 나병환자와 다르게 주님과 나와 환경과 문제를 두고 저울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머리 굴림보다는 주님을 확신하고 무조건 나아가는 자세가 이 나병환자처럼 중요하다.

②엎드려 구했다.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마1:40) 기도했다는 말이다. 이런 처지의 사람이 우리 주님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도 스스로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나병환자와 같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모든 것 즉 목숨까지도 이미 포기한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앞에 최고의 겸손으로 자신의 처지를 아뢰는 것밖에 다른 것은 없었다.

우리는 때로 여유가 있는 것처럼 ‘줄 태면 퍼뜩 주고 그렇지 않으면 차 삐이소!’ 하는 뻣뻣한 자세로 엎드리는 것 보다는 큰소리 치는데 아직 여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꿇어 엎드려 절하며…” 이것은 그만큼 절박함을 나타내고 있는 모습니다.

③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완전히 맡기는 자세요 믿음의 고백이다. 자신의 원함보다도 주님의 원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비극을 원하시지 않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이치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에 온전히 의지하는 자세이다. 우리의 힘겨워함을 주님은 절대로 원치 않으심을 우리가 확신하고 그 선하신 주님의 뜻에 우리의 문제를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나병환자는 다름아닌 바로 오늘 우리 자신들임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큰소리치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우리의 처지가 아니다. 주님 없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격리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의 사람이었고 지금도 주님의 선하심이 아니라면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 있는 사람이 없다.



Ⅱ. 주님은 우리가 깨끗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이 나병환자는 당시의 율법을 어기고 나왔고 -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율법을 어겼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의 모든 관습과 운명과 습관을 벗어 던지고 나오는 모습이다. 이러한 가련한 나병환자에게 주님께서도 율법을 어기시면서 사랑을 표현하셨다.

율법에 의하면 접촉만해도 부정해지는 조항을 넘어서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나병환자의 환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당시로서는 제사장도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구실이 더 분명한 것이 ‘백성을 위해서는 자신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병환자와 같은 우리의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심을 본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그리고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신다. 죄인들을 향하여 침묵하시는 주님은 그를 찾고 구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무슨 말씀인가 격려의 말씀이다.

제자들끼리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밤중에 풍랑을 만난 가운데 자신을 찾아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향하여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6:50)

이 나병환자에게 말씀하실 때 이 사람은 이미 놀라운 평화를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보면 도망치기 바쁜 많은 사람과는 다르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아마 펑펑 울지 않았을까 생각 된다. 그 동안 자신이 겪었던 온 갓 외면과 고독의 설움이 눈물 되어 펑펑 흘러내렸을 것이다.

주님의 위로와 치료는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우리는 어쩌면 주님은 나를 너무나 몰라준다고 투정하고 원망하며, 같은 처지이면서도 나를 몰라주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얼마나 많은 원망을 했을까!

그런 우리들에게도 주님은 우리가 깨끗함을 받은 대로 주님 오실 때까지 살기를 원하신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원하노니 편안함을 받으라!, 내가 원하노니 위로를 받으라!” 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이 음성을 여러분 모두가 듣기를 원한다.

주님의 위로와 치료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Ⅲ. 주님은 완벽한 삶을 회복시켜 주셨다.(14~15)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주님의 치유는 완전한 치료라는 사실을 자주 말하지만 오늘 말씀에서는 이 사람의 육체적인 치료만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나병으로 잃어버렸던 사회적 지위까지도 완전히 회복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의 역사를 확인하게 한다.

비록 이 사람이 문둥병이 완전히 낳았다고 사람들을 붙들고 말해봐야 아직은 돌 맞아 죽기십상인 것이 이스라엘의 율법에서의 치료된 나병환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완벽하게 치료하신 다음 전혀 이 사람을 위해 경고하신다.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14f)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막1:43f)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14b) 주님께서는 율법아래 오셔서 우리와 한결 같은 분이시면서도 그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이 역사 속에 오신 유일한 분이시다.

이 주님의 명령은 물론 이 사람에게는 돈이 들어야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좁은 범주에서 볼 때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서 사회적으로도 완벽한 직위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이같이 당부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당부를 주시는 것으로 들린다. 우리가 성경적으로 완벽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이 확보되고 하나님 아버지께 아들, 딸로 인정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인정받는 삶이 되기를 바라신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같은 당부를 주고 계신다. “너의 죄에서 깨끗게 됨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라!” 그것이 돈이 들어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 라는 고백이고 나의 깨끗게 됨과 같이 복음을 듣는 모두가 또한 깨끗게 되기를 진실로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이러한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의 기대를 가져오고 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15) 우리 모두가 사죄의 은총을 누리고 변화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이 소문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사죄를 받기 위해서 몰려오는 은혜의 역사가 있어지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의 놀라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16)고 오늘의 말씀은 마무리 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변화산 위에서 내려 오신 후 제자들과 씨름하고 있는 간질 하는 아이를 고치신 후에도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하신 것처럼 언제나 큰 역사를 이루신 후에도 아버지께 의논하고 뜻을 물으시는 모습을 자주 보이시고 계신다.

오늘도 변함없는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깨끗함을 받기 위해 나아오기를 원하시고 엎드려 고백하기를 위하시며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다고 고배하기를 기뻐하신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에 우리를 맡겨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고백하기를 원하시고 깨끗함을 받았다면, 우리가 깨끗함을 받은 대로 주님 오실 때까지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할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주님 때문에 깨끗한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내어 증거하기를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