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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막 2:23~28 2013-09-01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사도행전 속에서 복음이 전파되면서 문제되었던 것들이 유대 주의자들의 율법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따라 다녔던 것처럼 복음의 완성의 이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율법과 자신들의 정통과 함께 주님의 행동들이 마찰을 일으켰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2천 년이 지난 오늘의 시대에도 이해의 차이에 따라서 더러 나타나는 문제들이고 분명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과정에 없어서는 안될 역사였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본래적인 뜻이나 십자가의 희생을 보여주려 했던 의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여전히 패해진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문구에 얽매일 수도 있다.

주님께서 이런 부분을 마음에 두시고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이 말씀을 되새김질 해볼 필요가 있는데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러한 본래적인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면 성경을 부분부분으로 나눠 이해하고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보게 된다.

우리는 쉽게 “바리새주의” 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그 근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잘 못 사용할 수도 있는 용어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주님의 날 역시도 안식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이유에서 단순히 율법처럼 지켜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사실이다. 주님은 이 안식일에 대한 오해를 통해서 율법과 제사의 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하도록 가르치심을 본다.

그 이야기가 바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던 진설병을 예로 들어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 자체는 물론 글자의 내용으로는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런 이유에서 주님을 이단자로 몰아가고 죽이려 하는 간악한 사람들의 기록을 우리가 읽었다.

오늘 내(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과 함께 있었다면 ‘과연 어느 편에 있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성경을 글자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 글을 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입장에서 어느 글을 읽을 찌라도 그 글을 쓴 보다 근본적인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보다 바른 이해를 하게 하고 오해를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자세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이런 자세는 바로 성경을 사람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인도로 읽을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요한복음5:39의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됨의 귀중한 자세를 바로 행하고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여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



Ⅰ. 안식일을 부정적으로 이해한 안식일의 종들…(23~24)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 그리스도의 주위에는 적어도 몇 종류의 사람들이 늘 함께 하였다. 아직 성령을 받기 전의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바꿀 혁명자로 이해하는 제자들, 배고파서 기적의 떡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가난한 자들,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은 불치의 병을 치료 받으려는 병자들, 그런가 하면 진리의 갈증을 가진 사람들(니고데모) 등등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을 분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곁을 따라 다니면서 오로지 율법을 어기는 일이 없는지 감시하는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어느 때나 시비를 걸고 나왔다.

사실 이보다 불쌍한 인생들은 없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오로지 틈을 엿보기 위한 모습은 사실 사랑과 공의의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로도 합당치 않고 천국의 백성다움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인데도 식사를 거른 채로 어디를 분주히 가고 계셨고 배가 고픈 제자들은 길을 열면서 별로 어려운 생각 없이 밀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서 입에 털어 넣으면서 시장기를 면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여기까지는 주님께서 지적하시지 않는 것으로 별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함께 따라다니던 바리새인들이었다. 제자들의 밀이삭을 잘라 비벼먹는 행동이 모세의 율법에서 금하는 행동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사실 과거 율법 속의 항목들은 대부분이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주문이 많다.[10계명; ①다른 신들을 있게 말라. ②우상을 만들지 말라. ③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④안식일을 지키라. ⑤부모를 공경하라.(나중 ‘고르반’으로 바꾸었다.) ⑥살인하지 말라. ⑦간음하지 말라. ⑧도적질하지 말라. ⑨거짓증거 하지 말라. ⑩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그러나 결국 이 부정적인 계명조차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헬, kremannymi, 매달다, ~에 의존하다.]이니라”(마22:37~40) 하심으로써 완벽하게 긍정적인 두 가지로 설명해 주신다.

물론 이 말씀을 주님을 찾아온 청년에게 묻고 인정하신다.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눅10:27)

이러한 부정적인 율법의 “하지 말라!”에 익숙해 있던 바리새인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는 제자들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이런 투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Ⅱ. 율법 속에도 사람이 중심이다.(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어찌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또 주님은 우리가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진설병에 대한 이 귀한 교훈의 뜻을 배우게 되기도 하지만, 사실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잘 못 오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주님께서 예를 드셨던 다윗이 함께 한 자들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찾아서 배고픔을 해결한 이야기는 사무엘상21:1~6에 기록된 내용이다.

하나님 앞에 진설 되는 떡에 관한 규약을 가장 구체적으로 기록한 곳은 레위기24:5~9 으로 제사장만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고 이것은 영원한 규례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으로 다윗 일행이 이 떡을 먹은 것은 율법적으로는 분명히 합당하지 않지만 이러한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아비아달 제사장이 다윗 일행에게 이 떡을 먹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어겨도 된다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먼저이며 결국 율법도 사람을 영원히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에서 기록된 만큼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임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여기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같은 기록인 마태복음서에서 보면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12:5~7)

비슷한 교훈을 주님께서 십일조에 철저한 바리새인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을 옭아매서 꼼짝달싹 못하도록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이런 일로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는 일을 그렇게 쉽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기준이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고자 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디모데전서 2:4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Ⅲ. 모든 것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뜻을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나 사람을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늘도 이런 원리는 분명하다. 우리가 한 주간을 열심히 일하고 육신이 쉬면서 하나님의 지켜주셨음을 감사하고 찬양할 뿐만 아니라 희생의 떡과 잔을 통하여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성결을 점검하고 또 한 주간을 주님께 맡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예배의 귀중한 의미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 선언은 어쩌면 주님 만이 하실 수 귀중한 증거이다. 안식의 이치는 창세 이후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이해할 뿐 아니라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이고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임을 성경 전체 속에서 이해하면 그르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라 말씀하심으로써 안식일 뿐 아니라 모든 절기를 폐할 것임을 선언하셨고 물론 복음 속에서도 일요일 날 예배를 드리라는 직접적인 명령은 없지만 십자가의 인류 구속사역의 완성 후에 이 “안식 후 첫날”이 자연히 나타나고 있고 성경의 전례들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8) 이 말씀은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 되실 뿐만 아니라 모든 날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다는 선언이다. 사실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으로 사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에게 딸린 모든 것은 당연히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가능하다.

이런 고백 때문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7~8) 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