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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 나름대로 애쓴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 많이 왜곡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에 신학교를 갔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많이 다르다.
적어도 앞에서 말하는 일은 全擔使役 이라는 표현이 바를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신학교를 가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주님의 분명한 가르침은 꼭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는 것 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직장은 세상일이라는 이원화된 구분을 함으로서 믿음의 삶이 아닌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다. 우리는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사회 속에서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 신앙하는 사람들조차 사실은 聖과 俗을 분리해 놓고 생각하고 일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만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분리하셨을 뿐이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聖, 俗을 분리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부터가 하나님의 일을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자주 말하는 사실이지만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증거하고 지도하고 전도하는 일들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일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 시대에는 사실 이런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한 사람이 귀중한 시대이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당부를 주고 계신다.
먹을 것이나 구하는 것 때문에 맹목적으로 주님을 쫓아 다니며 찾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계의 교훈을 먼저 생각하고, 오늘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
Ⅰ. 육신을 위해서만 주님을 찾는 것을 경계하신다.(25~26)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께서 기적의 떡으로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경험한 군중들은 아무래도 예수께서 움직이시는 데만을 찾아갔고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책망하시는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첫 번째 부분이다.
우리가 이 부분을 읽었지만 이 말씀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6장 앞부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앞에서도 기적의 떡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지만 주님께서 혼자 산으로 피하여 기도하신 것(v15)을 봐서도 이들의 육신적인 동기를 이미 아셨기 때문이셨다.
분명히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넜는데 건너편에 이미 제자들과 함께 계신 주님께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25) 물었고 주님은 이들이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게 저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미 들여다 보시고 저들이 별로 기뻐하지 못할 답변을 주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상대의 말보다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를 더 귀중히 여기셨기 때문에 이런 육신적인 이유만으로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낌없이 책망을 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26f)
이 말씀 자체가 저들이 그대로 받으면 회개할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되고 생명이 될 수 있는 교훈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고 만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b) 이 주님의 답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생명의 진리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신 그리스도라는 구속의 감격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사실 믿음의 사람들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야 세상에 고달픈 인생을 해결 받아보려고 주님을 찾아 오겠지만 주님의 귀중한 십자가의 희생을 깨닫고 거듭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려서 섬기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단3:18,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라고 한다. 주님의 분명한 약속은 영혼이 잘되면 우리 육신의 삶도 잘되고 강건하리라(요삼1:2)고 말씀하시지만 주객이 전도된 오로지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주님을 찾는 사람들을 경계하신다. 즉,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그리스도로 나의 죄와 저주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나를 영원한 영광으로 이끄실 구주시기 때문에 주님을 찾는 모두가 되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육신의 필요한 모든 것들조차 주님으로부터 받는 …
Ⅱ. 영생을 위해 일하라고 당부하신다.(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우리 시대에 모두가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생활은 많이 편리해지고 나아졌지만 학교 들어가는 일이나 직장에 들어 가는 일이 참으로 힘들고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힘 드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실까!’ 할 정도로 힘겨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주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f) 말씀하시는 것이 어쩌면 좀 야속하게 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모르실 리가 없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 말씀에도 “아멘” 하고 순종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주시는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나 결과가 아님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지만 거저 받은 구원을 완성해 가는 데는 우리 각자의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 한다.(빌2:12) 인생의 한평생을 어려움 없이 살려고 애쓰고 싸우듯이 노력하는데 영원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 말씀과 함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구원을 우리 사람의 노력 없이 거저 받았다는 것 때문에 그 구원을 이루어감에도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나 노력 없이 값없이 주셨기 때문에 더욱 귀중히 여기고 이루어 가는 믿음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b) 영원의 양식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으로 오직 하늘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내려 오신 우리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귀한 것이다. 이 영혼의 양식, 영원의 양식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을 살면서도 영원을 사는 하늘의 백성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
결국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영혼의 건강이 유지되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새 예루살렘의 언약에 들어가는 힘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정하여 이 땅에 보내셨으므로 그에게 순종하고 그에게 바라는 것이 영생을 누려가는데 풍성함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
육신의 삶을 위한 수고를 감당하면서 영생의 삶을 위해서도 게으르지 않는 그래서 늘 주님을 찾는 …
Ⅲ.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주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신 말씀까지는 저들의 귀에 들렸던지 되묻는 이야기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 한다.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이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고 대략이 아니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사실 이들 각자가 아닌 ‘우리가’ 라는 표현으로 부담을 최소화 하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여기서도 본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함에도 간악한 죄의 사람의 본성이 공로는 남의 것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모아 나타내려 하고 실수나 죄는 옆의 사람을 걸고 넘어지려고 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 쓰여진 [일]이 여러 가지를 나타내는 복수가 아니라 다수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일, 헬, to ergon, The work, 그 일] 그 의미대로 라면 ‘하나님의 보내신 이를 믿는 것 만이 하나님의 일’ 이라는 의미가 되다.
우리는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중요하고 특별한 사역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앞에서 말씀하신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b)고 하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말씀이고 사실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라 하였다.(5:39)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라의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들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라고 되물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사실 모든 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죄의 해결책으로 인류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이 요한복음에서도 더러 말씀하셨다. 대표적인 예가 3:16절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3) 하였고 바울 사도는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라고 증거한다.
계명은 ‘지켜야만 할 과제’ 라는 데서 중요한 일이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긴다.’는 말씀 역시 대가(代價)와 같으므로 일과 다르지 않다. 또 믿음이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믿음에 주어지는 모든 약속들은 사람의 일의 결과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이 사실이다.
또 믿음은 동사이다. 서두에서 얘기 한 것처럼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서 예배당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식하며 사는 것 자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영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담당된 과제를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해할 때 비로소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b)는 말씀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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