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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구한다. 오늘 나(우리)는 누구에게 구하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나(우리)는 필요를 수시로 아버지께 구하는가!
이러한 원칙에서 실천한 사람이 다니엘이었다. 그는 자신의 절대적인 필요는 느부갓네살 왕이 줄 수 없고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금지된 법령이 선포 되었는데도 아버지께 구하다가 체포되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만 구하는 다니엘에게 그 구함으로 당면한 위기까지도 해결해 주신다.
그리스도인의 필요는 하늘로부터 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구함이 없다면 받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3)
Ⅰ. 이제는 아버지께 구하라!(23~24)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①엄청난 특권이다.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고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
②과거의 가지지 못한 특권까지 사용하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③받는 것에 대한 감격을 충만이 누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Ⅱ. 이제는 비유의 때가 완성되었다.(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하시면서도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고도 하셨다.
①복음의 완성을 이르심이다. 광야의 요한의 외침으로부터 주님께서 진리를 전하실 때도 있었던 한계는 인간적인 이해가 늘 진리를 가로막았고 땅에서 난 것으로 하늘의 것들을 이해하려는 것 때문에 땅의 비유를 가지고 말씀하셔도 소화되지 않았다.
②성령의 때를 이르심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어 풀리지 않던 하늘의 신비를 이해하게 되는 역사를 사도행전에서 읽게 된다.
③다시 오심의 때까지를 이르심이다. 진리에 대한 순종의 자세는 하나님의 지혜의 무한한 영적 지식을 누리게 되고 이것은 약속대로 영원한 영광의 약속에 들어갈 때까지 약속 되어지고 있다.
Ⅲ. 이제는 구하는 통로가 분명해졌다.(26~27)
(26)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①중보의 사역은 완성되었다. 물론 이 지상에서 더 이상 대제사장은 의미가 없다. 모두가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23:45)
②다만 하나의 통로가 준비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효력 있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공급을 받아들일 수 있는 hot-line 이다.
③주를 사랑하고 믿으므로 받는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27)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16:22)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응답 받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 판단해 볼 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대상에게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럼에도 그들이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과 교제의 왜곡된 모습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 귀중한 약속은 당연히 오늘 우리에게 더 확실한 약속으로 이러한 언약은 주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말씀해 주시고 아버지께 구하셨던 부분이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10:16) 하신 말씀에서 그렇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서도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 라고 구하신 내용에서도 확인이 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어느 특별한 사람도 자신의 권위나 이름으로는 받을 수 없다.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모든 필요의 공급원이실 뿐만 아니라 돌려드리는 영광조차도 유효한 영광이 되게 하는 이 우주 안에 오직 하나의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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