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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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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1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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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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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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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갈 자리를 대신하실 성령을 소개하신다. 이 다락방강화의 끝인 16장까지 계속해서 주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실 성령을 소개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오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눴지만 계속해서 제목과 같은 말씀을 주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연거푸 주고 계신다.
오늘 본문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21f)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23)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반대로 표현하시기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24f)라고 역시 같은 말씀을 역으로 표현하신다.
이런 성령의 오심을 다루면서 계명을 지킴을 말씀하시는 뜻도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을 바로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성령의 충만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사실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은 물론 오늘의 약속처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교훈이나 말씀은 이해가 어려워서도 그렇겠지만 별로 흥미롭지 못하고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바로 하지 못하면 신앙의 바른 궤도를 지키지 못하고 건전하지 못한 신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는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상고하고자 한다.
Ⅰ. 또 다른 보혜사 성령(15~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시고 장차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실 성령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슨 역할을 하실 것인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제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15~16장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는 말씀이 앞의 말씀에 연결된 것인지 뒤에 이어지는 말씀과 연관되는지에 대한 이론이 더러 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이 v21, 23, 24뿐만 아니라 15장과 요한 서신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받을 자격이 없지만 사랑받는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믿고 이것을 마지막 3번째 부분에서 나누고자 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 성령께서 오심에 대한 예언이자 가르침이다. 그러면서도 성령의 오심에 대한 이유와 언제까지 함께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심과 함께 어디로부터 오시는가도 증거하시는 중요한 말씀이다.
성령께서 오시게 되는 경위는 먼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요청에 의해서 오시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실 것을 증거하신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혜사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도 중요하고 바른 이해가 필요한 말씀이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은 이미 “보혜사”께서 계심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그러면 그 보혜사가 누구인가 하는 과제가 남는데 이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 중보자, 위로자, 권면자]”에 대해서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수없이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에는 당연히 이 “보혜사”이셨다.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책망하시고 잘 못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변호하시고 지키시는 “보혜사”셨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하신 때가 차서 인류의 죄의 해결을 위하여 그 제자들 곁을 떠나셔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가심으로 제자들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자기 대신에 같은 역할을 할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요청하고 하나님께서는 보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 다음 자신은 비록 3년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떠나가시지만 다시 오실 “보혜사”는 떠나는 일이 없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는 말씀처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런 다음에 그 “보혜사”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하심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성령”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세상의 인정을 받는 분이 아니라 세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실 수 없다고 증거하신다.
먼저는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17f)하신 것인데 이에 대해 보충되는 말씀을 같은 이 요한복음에서 인용하면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 말씀하셨다.
다시 16:13에서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말씀하신다.
그 오실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진리에 속하지 않은 세상은 그를 받아드릴 능력을 갖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라는 말은 ‘세상은 능히 그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대한 보충은 같은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6)는 기록이 이 v17의 내용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왜 받지도 못하고 용납이 되지 않는가 하면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는 이유에서 그렇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2:12~14에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반대로 제자들에게는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하여 앞의 세상 즉, 불신자들과 정 반대인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이 일 역시 그 당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실 미래에 있어질 약속으로 당시 제자들은 이 말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Ⅱ. 제자들과 함께 하실 성령(18~21)
여기에서는 오실 그 “또 다른 보혜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 바로 가시면 오실 성령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여기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라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지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19)는 말씀 역시 이 가르침 후에 구속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은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예수님을 순종하고 따르는 제자들은 영원히 함께 하실 성령으로 오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임마누엘을 약속하신다.
이 놀라운 사실을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비록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이 일이 이루어진 후에는 알게 되리라는 것을 증거하시면서 성령으로 함께 하는 그 연합은 이제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됨을 말씀하신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2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안에 계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성령의 오심을 말씀하시면서 증거하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히 성령으로의 하나됨을 증언하시는 것이다.
이런 신비하고 귀중한 약속을 말씀하시면서 다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주시는 언약이 아니라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힘입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임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이 말씀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을 것이며 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 리라는 믿음의 상관관계를 말씀하신다.
장차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하나되게 하시는 신비한 이치로 제자들을 결코 부모 없는 자식처럼 두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더 완벽한 함께 함을 위한 것이라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 약속은 당시 사도들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니라 우리 모두이게 한결 같은 약속이다.
Ⅲ. 하나님 사랑과 임마누엘(22~24)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물으면 성경적인 답변보다는 과거 신앙 지도자들로부터 가르침 받은 내용이거나 자신이 감정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도마와 빌립에 이어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눅6:16-야고보의 아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2) 라고 묻는데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과 성령과 하나이신 위엄과 영광을 자신들에게 뿐 아니라 세상에도 들어내어 알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세상은 이러한 이치를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고 이미 앞에서도 말씀하신 바 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사실 이런 투의 말은 이미 장막절이 되려고 할 때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이 하던 말들과 어쩌면 꼭 같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7:3~4)
분명히 주님을 영적으로 이해하는 자세들이 아니라 요즘 말하는 세상에서의 출세를 부추기는 것은 예수께서 그렇게 되시면 자신들 역시 함께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계산 때문에 하고 있는 말들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들의 생각을 이미 판단하시고 세상에 그렇게 영광을 알리고 나타내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비결임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은근히 그러한 생각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런 주제로 말씀을 나눈 것으로 생각되는데 오늘은 순서에 따라 다시 한번 이 귀중한 교훈을 나눠보자 한다.
이미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 말씀하셨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하셨지만 이어지는 v23, 24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23) OT의 시편 중에서도 귀중한 시편인 119:56에는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고백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킨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요한복음을 상고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두가지의 충만을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본다는 증거를 나누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진리”는 말씀과 계명과 교훈이라고 이해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에게서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 중심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계명을, 진리를,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치가 여기에 연결된다고 이해된다.
오늘날 어떤 측면의 사람들은 계명이나 진리나 말씀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이유에서 은혜를 강조하게 되고 그것이 지나치다 보면 진리의 쪽에는 등한히 여기게 되는 경향도 더러 나타난다(어떤 사람은 은혜는 팽개치고 진리만 주장하다 보니 사랑을 볼 수 없이 너무 차갑고 냉정해진 예도 있다.)
요한 사도는 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당히 여러 번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본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1:6) 증거했다.
또 오늘 마지막 절의 말씀에서는 이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하심을 듣는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계명 즉,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면 말씀을 지키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언제나 육신은 한계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 속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육신을 가지고는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없고 특히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도 없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자들을 두고 가실 수밖에 없으시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육체를 가지지 않은 성령으로 오셔서 저들이 육체에 있건 육체를 떠나건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자리를 바꾸시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렇게 제자들을 버리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볼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처럼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안에 함께 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당시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과 말씀을 지킴으로 이러한 현재로서는 이해되지 못하는 약속들을 누리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면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명령인 말씀을 지키는 것이며 성령께서 그런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귀한 약속을 이론이 아니라 사실로 누리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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