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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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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2: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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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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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의 나타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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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기적을 좋아한다. 어느 때나 장소에 관계없이 기적을 보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선택된 민족들 조차도 기적을 보기를 소원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구원을 위한 사랑의 역사를 위하여 육신으로 이 땅에 와 계실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언약을 따라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기적을 베푸셨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주님의 뜻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적을 보여 주실 것을 요청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오히려 이를 거절하셨다(마12:38~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역사 속에 다시 오심을 논하는 가운데 또 다른 과제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온 갓 기적들을 행하며 사람들을 자신들에게 관심을 끌게 하려고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하여 미혹하고 속이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인데 마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적을 나타내셨던 것처럼 사탄의 활동을 따라 옳지 못한 속임으로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기적이 어디로 부터냐 하는 것과 참이냐 거짓이냐가 모두 중요한 것은 그 출처에는 반드시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 외에는 기적을 요청해도 거절하셨던 것이다.
사실 모든 계시가 넘치고 완료된 이 시대는 그런 이유에서 표적이나 이적이 진리와 생명의 기준이 아니라 예언된 언약의 말씀이 생명과 진리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그 멸망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게 될 신비보다는 이미 풍성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진리에 더욱 확신하고 충실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진리의 사람들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별도의 결론이 없을 것이다.
Ⅰ. 모든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6~8)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일이나는 모든 사건이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보인다. 그럼에도 모든 역사의 시간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움직인다. 지난 시간에 나눴던 대로 미혹의 영이 나타나겠지만 오늘 먼저 생각하는 3절 속에 각각 다른 형태로 쓰이기는 했지만 모두 세번의 “때”가 언급되고 있다.
비록 우리는 길가에 내려 앉고 날아가는 참새의 수를 모르고 가치를 두지 않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말씀하신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대속제물로 복음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f) 한 것도 예정된 시간 속에 오셨음을 증거한다.
마찬가지로 이 역사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그 바로 직전에 거짓 메시아가 오겠지만 이것 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시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계획된 시간에 오시기 위한 주변의 상황조차도 예정된 시간표 대로 운행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6) 주님 다시 오심 이전에 거짓 메시아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제멋대로 활동하도록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적정한 때에 나타나게 하시려고 지금은 막고 있다는 조금은 이해가 쉽지 않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다음절에 연이어서 “막는 것”과 “막는 자”가 있다고 증거한다.
사실 이렇게 모든 영육의 세계에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고 운행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사실 자체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이고 안심의 근거가 된다.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하신 근거가 단순이 영원한 거처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모든 역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7) 하나님의 신비나 이 세상의 창조와 섭리를 비롯하여 구속의 역사까지도 우리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가 신비요 비밀이지만[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13:11)] 하나님의 반대편인 “불법의 비밀”은 마귀 사탄에 관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그러한 비밀은 오묘하고 놀라운 구원의 비밀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음흉하고 간교한 비밀일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한 것은 바로 앞절에서 확인한 바처럼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이미 바울이 그 사실을 가르쳐서 알고 있는 사실인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별로 행복하지 못한 표현인 “불법의 비밀”은 바로 다음 절에 나타나는 “불법한 자”와 동일시되고 이것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의 나타나기에 적절한 때까지 제어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신비를 흉내 내려고 마귀 사탄의 영적인 세계도 사탄이나 마귀 그리고 귀신의 체계로 활동하는 것도 진리를 모방하여 진리에 속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아래 굴복시키려는 마귀 사탄의 간악한 술책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 어두움의 세력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기간 동안만 활동을 하게 될 것이지만 마침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구원을 가지고 이 땅 위에 다시 오시게 될 때 그들을 죽이시고 영광과 위엄을 친히 드러내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8m) 다른 이가 아닌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τῷ πνεύματι τοῦ στόματος] 악한 세력을 죽이실 것이라 증거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OT에서 주로 악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묘사할 때에 사용되고 있다.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8)는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욥4:9)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도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11:4)라는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NT에서는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계19:15f)라거나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21m)라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들도 볼 수 있다.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b)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 위에 나타나심으로 이런 모든 거짓된 속임수를 끝나고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역사위에 다시 오시기 바로 전에도 거짓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들이 있게 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이 그러한 악한 일들을 끝내시는 것이 될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결국 사악한 존재들의 나타남의 때까지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진리의 일꾼으로 최선을 다하는 …
Ⅱ. 악한 자도 온갖 기적을 보인다(9~10)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마지막 시대의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어두움의 세력이 자신이 앞의 v4에서 봤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숭배받기 위하여 마치 하나님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다만 속임으로 흉내를 낼 뿐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9) 먼저는 사람들이 보기에 신비한 이 능력들이 어디서부터 오는가를 시작으로 우리 하나님과 같은 역사를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이미 예언하셨던 사실이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이런 기적들의 출처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9f) 이러한 증거는 악한 세력도 사탄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버금가는 역사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이집트에서 바로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보이기 위해 기적을 행했던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출7:11, 22)하였지만 마침내는 셋째 재앙부터는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출8:18f) 한 것으로 봐서 역시 어둠의 세력의 한계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내려 한다는 것이다.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9b) 마지막 기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 하나님과 주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실 때 보이셨던 것들이다. “능력[δύναμις, 힘, 세력, 역량]”, “표적[σημεῖον, 이적, 표시, 표적]”, “기적[τέρας, 놀라운 일, 기적, 기사]” 다만 여기 기적에 “거짓[ψεῦδος, 거짓말, 거짓, 진리의 반대]”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이것은 그 신기한 능력이 속임수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런 능력이나 표적을 나타내는 이유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처럼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거짓 때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능력이나 표적은 하나님이 아닌 마귀 사탄도 거짓으로 라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나 생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없는 영적 존재가 마귀 사탄이다. 그런 이유에서 ‘마귀 사탄은 죽일 수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주님께서 저들을 잘 표현하셨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b) 그러므로 마귀 사탄이 능력이나 표적을 나타내며 유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대적하고 대항한다면 속지 않을 수 있으므로 대적할 수 없는 능력은 아니니 감사한 일이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10) 이런 속임 수가 어떤 대상에게 통하는 가도 증거되고 있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10f) 거짓 기적으로 속이는 것이 통하는 대상은 절대로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가 아니다. 불의의 모든 속임이라 했고 그 대상은 감사하게도 진리를 사랑하여 구원을 사모하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자들이 아니라 멸망하는 자들에게이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10m) “진리의 사랑[τὴν ἀγάπην τῆς ἀληθείας]” 이것은 복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항상 복음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b) 이미 들은 말씀이 복음의 진리라 하였고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갈2:5b)는 당부를 주기도 하였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10m) 속임의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의 거짓 기적과는 반대되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이지만 이를 거절하는 안타까운 대상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οὐκ ἐδέξαντο]”는 환영하지 않았다, 영접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사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인 십자가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아무 소망도 남아 있지 못한다. 그런 이유에서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10)는 안타까움은 그대로 수순이 될 수밖에 없다.
기적은 생명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 사탄도 흉내 낼 수 있고 유명하다는 마술사들도 비록 눈속임이지만 나타낼 수 있다. 영원을 위한 생명의 값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치뤄 주셨다. 그 진리의 사랑을 받아 들려서 순종하며 사는 것이 기적을 의지하는 것보다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안전하다.
Ⅲ. 결국 불의를 형벌하기 위해서이다(11~12)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그럼에도 바로 앞의 v10에서부터 악한 자들의 멸망으로 가는 단계를 세가지의 과정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악하게 거절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한 구체적인 자세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 결국 진리의 사랑을 거절하고 자신의 삶 속에는 사랑의 진리를 두기를 거절하는 완악함이 생명의 기준인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는 것으로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안타까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결과로 가는 것이 오늘의 메시지의 마무리이다.
하나님 사랑의 약속은 견고하지만 그 절대적인 사랑을 거절하는 자들은 거기에 합당한 비극적인 수순을 따라 어두운 영원의 세계를 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믿음은 있지만 다만 그 믿음이 무엇을 믿는 가에 따라 영원의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도 진리의 사랑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비극의 수순을 밟게 하는 것을 여기서 보이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11) 이 말씀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편견이 아니라면 당연히 구원받을 백성을 유혹하여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있어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의 성향과 삶의 방향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히려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성향에 맞게 더 적극적이다. 결국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자신의 선택과 성향대로 인생과 영원을 가는 것이다.
사실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ἐνέργειαν (ἐνέργεια, 활동, 능력, 효능) πλάνης (πλάνη, 방황, 이탈, 미혹, 잘못)] 라는 표현은 ‘강력한 미혹의 에너지를 보내셨다.’는 의미로 좀 더 초자연적으로 강한 의미를 가지는 뜻이다. 이어지는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역시 좀더 적극적으로 거짓을 선택하게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OT의 선택된 백성의 불신에 따른 하나님의 부정적인 역할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표현이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6:10)
이제 거기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 역시 앞의 v10b의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는 내용의 반복이면서 확인으로 불의한 자들의 형벌을 위해서임을 간략하게 선언하고 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므로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진리의 사랑을 거절한 자리에는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을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의 유혹에 버려지고 결과는 자신이 선택한 대로 가게 되어 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12f) 결국 같은 모습의 반복이며 확인이다. 사람은 어디에 건 속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적 천성대로 진리를 믿고 순종하든지 아니면 하나님 아닌 어둠에서 기쁨을 구하려 하든 양쪽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진리를 사랑하는 선한 자들과 악을 좇아 죄를 짓기를 즐기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현재의 세상처럼 영원히 공존하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결국 분리를 계획하셨고 진리의 사랑을 의지하는 거룩한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에 그리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은 역시 그런 성품을 가지고 날뛰는 마귀, 사탄만을 무저갱에 두도록 철저한 분리를 예정하신 것이다.
지난 주간에도 Microsoft Start 포털사이트에 어떤 목사가 “지옥은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성경이해이다.” 라고 하는 것을 봤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그런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히 좋아할 것이지만 성경의 어떤 부분에는 무지하거나 너무나 편협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지옥의 용도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따르고 순종한다면 그들과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쉬운 이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구속은 사실 옳지 못하면서 항상 항의하는 마귀 사탄에게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신 것을 확인하여 어둠의 악한 자들의 참소하는 입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희생되신 것이다.
사실 오늘 전체적인 주제는 마귀 사탄의 참소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적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의 다시 오시는 재림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이 땅에 다시 오심에도 이런 여러가지 문제가 따름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재림의 직전에 이 모든 비극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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