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골4:2~6 2026-01-01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올해의 푯대세움 말씀으로 선택된 한 해를 지향하며 신앙해야 할 귀한 말씀이다. 이 골로새서 3:1~는 하늘로부터 거듭 난 사람의 사실적인 삶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우리의 생활에 실제적인 교훈이다. 3:12~는 하늘로부터 거듭난 삶의 중심을 찬송의 생활까지 지도했다면 v18~는 거듭난 사람들의 가정과 직장생활의 모범을 제시했다. 여기는 피고용인은 물론 고용주에게 까지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말하면서 공과 의를 행하라는 당부를 준 바 있다.

이 4:2~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이다. 그 첫째가 기도의 생활인데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도생활은 기본이며 하나님과의 소통이면서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의 살아있는 가장 실제적인 모습이다. 육신의 삶이 호흡이 멎으면 삶이 끝난 것처럼 신앙의 삶에서 기도는 호흡을 계속하는 살아있는 모습이 기도인 것이다. 건강치 못하면 숨을 가쁘게 쉬거나 너무 천천히 호흡하게 되는 것도 삶의 위기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 v2만을 푯대세움으로 선택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 v~6의 시작이 v2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한 마당을 마음에 담고 올 한 해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이 복음 증거를 당부하고 있는 말씀들이기 때문에 역시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삶의 믿음생활의 자세가 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발전되는 과학이나 문화와 편리에 매료되어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신앙은 쉽지 않은 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 역사에 오시기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나사로가 죽어 있었고 다시 찾아온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누이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말씀 하시자 마르다는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b) 그러나 절망하고 끝나버렸다고 하는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죽었다고 해도 우리는 ‘끝났다’ 거나 ‘죽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죽고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사실적인 상황을 두고 진실하게 표현했지만 그것은 사람의 기준의 판단이요 생각일뿐이다.

또 아브라함은 어떤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아브라함이나 사라는 비웃듯이 인정하지 못했다. 바울은 이것을 표현하기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4:19)라고 하는데 왜, 죽었다고 하지 않고 죽은 것 같다고 표현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상황은 다 끝났지만 그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이성일 뿐이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후에 다시 회춘하여 사라가 죽은 후에도 다른 아내들을 두고 자식을 더 낳은 일들은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창25:1~4).

하박국에게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b) 말씀하신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당부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가르쳐 주신 상황도 말씀과는 다른 상황이었음을 사실적으로 지적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합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징조들이 너무나 빈번한 이때에 우리가 이런 말씀의 표어를 두게 된 것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Ⅰ. 기도와 복음 증거(2~4)

짧은 기도의 요청 같지만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닮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어지는 내용들로 볼 때 이 기도는 단순한 삶의 표현 이상의 구원의 요청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제사장적 인 중보의 기도임을 이해하게 된다. 기도의 개인의 호흡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를 구원으로 불러들이는 그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이 말씀에서 이해하게 된다. 성경과 말씀이 누구보다도 충만한 바울이 전도의 기회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면 기도로 협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유효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2) 항상 성경을 읽고 듣는 것을 영적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계속해야 할 영혼의 호흡을 지속하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결된 생명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친히 당부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바울은 같은 옥중서신 인 에베소서에서도 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권면을 주고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기도하는 자체가 영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고 깨어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당부는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요청이다. 기도에서 감사를 먼저 찾는 것은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고 또 같은 응답을 주시리라는 확신이다. 비록 자신이 받은 직접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그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보고 함께 누리는 것으로도 그런 것을 함께 갖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불신자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 중요한 또 하나의 표현이 “깨어 있으라[γρηγορεύω, 지켜보다, 망보다, 정신차리고 있다, 경계하다, 망보다]”는 표현이다. 이 말씀은 기도를 계속하고 라거나 기도에 감사함으로 라는 당부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이 “γρηγορεύω”라는 표현을 자신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표현에서 가장 무게 감 있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24:42~43; 막13:34; 눅12:37, 39) 바울도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16:13) 라거나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5:6)는 당부들 속에서 같은 경계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2b) 당부는 우리 주님의 재림에 소홀함이 없게 하라는 당부로 긴요한 믿음의 요청이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3) 앞의 당부가 개인의 신앙 자세에 관한 적극적인 요청이었다면 이제 그러한 자세가 개인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공통체 즉, 교회 속에 역할을 해야함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개개인이 재림을 앞 둔 시점에서 경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먼저 구원받음 사람들 못지 않게 아직도 생명의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이 역사의 마지막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구원받은 자로서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은 각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3f) 바울은 자신을 위한 기도의 요청을 여러 교회나 또 여러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내용은 그의 편지마다 나타나는 사실들이다(롬15:30; 고후1:11; 엡6:19; 살전5:25; 살후3:1). 그럼에도 복음 증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비슷한 내용을 살펴보면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 라는 말씀과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살후3:1)라는 증거들이다.

이런 사실을 살피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라는 요청은 효력 있는 전도의 기회가 성도들의 기도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부산극동방송이나 World Christian Broadcasting 한국어방송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회도 기도로 열리게 되고 기도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귀중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모든 것을 기도록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해야 한 것처럼 기도로 받은 기회를 보다 효과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기도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냥 ‘이렇게 방송을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신 기회를 보다 효과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함께 기도해야 함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3m) 이것은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1:26) 라는 복음의 신비를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복음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기 대문이다. 또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자세에서도 세상에서 재미있고 구미 당기는 그런 에피소드나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만을 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함께 하여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3b)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로마의 감옥에 매여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단순히 감옥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넘어서 그 감옥속에서조차 정상적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위대안의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됨을 보면서 자신이 참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배당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검하고 있음을 보는 데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는 의미는 그런 뜻일 수도 있다.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이종배 역시 화원의 복음이 퇴색해가는 이 역사의 말미에 섞지 않은 환원복음을 위하여 매임을 받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 책임이 무겁다.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4) 이것은 바로 앞 구절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3) 부탁했던 기도의 결과를 말하고 있다. 골로새 교회의 기도의 역사로 바울이 때에 따라 또 사람들의 종류에 따라 복음의 비밀을 풀어 증거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영적인 일들은 기도 없이 가능한 것이 없는 것은 바울이 증거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갈1:1) 사도가 된 것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일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능한 것임을 바울은 자주자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교회도 말씀으로 돌아 가는 환원운동의 교회이지만 이종배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지체들의 기도와 동역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다운 교회의 성결과 복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날고 뛰는 신령한 능력의 종일지라도 혼자서는 영적인 일은 어떤 것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여러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Ⅱ. 외인들을 자세(5~6)

앞에서는 깨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했다면 여기에서는 그 깨어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것은 전도를 위해 기도한만큼 아직 신앙안에 있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실제적인 자세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시간을 복음적으로 사용하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언어생활에 주의하여 생명을 나타내라는 당부를 주고 있는 말씀이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5) 신앙의 사람들이 지체 간에도 관계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불신의 사람들과 관계인 것은 그들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이렇게 그리스도교가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가장 낮아져 있는 상황속에서 이런 당부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외인[ἔξω, 밖에, 외부에, 바깥 쪽에]”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교회밖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서로 간에 덕스럽고 은혜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신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저들이 하나님을 뵙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특히 그의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의 행동거지나 삶의 자세는 물론 언어 생활이 중요한 것이다.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5) 조심할 것은 여기 지혜로 행한다는 것이 꾀를 부린다 거나 일부러 처신을 그들 앞에서만 잘 하라는 그걸 지혜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탕이라면 불신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세로 행하는 것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지혜로 행하여 라는 당부는 그들을 멸망할 사람들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것을 그들을 구원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 불신자들 속에 흡수되어 같은 모습으로 행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경계하시는 삶의 자세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회 있는 대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효과 있게 전해서 어떻게 든 그들도 복음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절약이 아니라 그들을 생명으로 불러들이는 일에 시간을 쓰라는 이야기이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6) 앞에서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내용의 실제적인 부분으로 가장 쉽게 나타나는 언어 생활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내용에서도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는 교훈을 생각할 수 있다. 본문과 인용한 내용에서는 소금의 부패방지의 기능보다는 오히려 맛에 대한 역할을 말씀하고 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6f) 비슷한 교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는 기록을 본다. 외인들 즉,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다른 특징은 말을 함부로 하고 욕설을 함께 사용하는 것들을 요즘의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듣는다. 쉽게 들려오는 소리가 저속한 욕설을 쉽게 사용하는 것을 흔하게 듣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항상 은혜 가운데서” 언어생활을 하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라는 내용도 다르지 않다. 마치 한 영화에서 보는 장면처럼(목에 나무 십자가를 건 목사) 이중적 이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이다. 이런 준비된 자세가 된다면 불신자들도 자신들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교통사고 때 삿대질과 큰 소리).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라는 것은 개역 한글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했는데 소금으로 맛을 낸다고 할 때 골고루 섞이지 않으면 어느 부분은 짜고 어느 부분은 싱겁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패를 방지하거나 맛을 내는 소금 같은 복음의 진리를 고루고루 잘 섞어서 사용한다면 은혜를 끼치게 되 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 다는 아니겠지만 불신자들처럼 더러운 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는 경계와 같은 말이다. 말을 맛깔스럽게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이지만 역시 맨 앞에 말한대로 기도하면서 말해간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6b) 생명을 가진 자로서 교회 안팎에서 언어생활을 덕스럽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그리하면이라고 하였고 우리 상고해 가고 있는 베드로전서에서도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라고 불신자들의 구원에 대한 질문에 부드러우면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는 두려움으로 할 것을 당부하고 있음 같은 교훈이다.



Ⅲ. 마음 챙기기.

이 사회적으로는 혼란하고 그리스도교가 지탄을 받는 상황에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귀중한 신앙의 자세를 당부하시는 우리 주님의 당부를 듣는 듯하다. 육신의 호흡을 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의 영혼의 호흡을 쉴 수 없음을 의식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신앙의 자세는 단순히 개인의 경건에서 그치지 않고 전도할 기회를 얻고 대상에게 보다 호소력 있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세상 속에서도 실제적으로 불신의 사람들을 향하여 구원받은 구별된 백성의 경건한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시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 아버지를 의식하면서 성령과 함께 언어생활을 하려고 할 때 각 사람들에게 구원의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기 경건과 공동체를 위한 기도에서부터 모든 협력과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들이 임박한 말세지말을 당하여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언어생활조차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여 올 해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