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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빌 2:1~8 2002-06-24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과 감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 속에서 누리는 구원의 희열이며, 은혜에 대한 감격이라고 바울 사도가 강조하고 있는 장소는 자유스럽고 편안한 가정이나 휴양지가 아닌 로마의 감옥 속에서임을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인하여 가질 수 있는 행복은 분명히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고 환경과 시간을 초월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구원받은 은혜로 인하여 바울이 확신하는 기쁨의 일부분도 자신의 것으로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

바울이 빌립보 교우들에게 기뻐하는 첫 번째의 기쁨은 오히려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오명을 들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기 때문'이라는 한가지 이유에서임을 본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최근 우리 나라의 계속되는 월드컵 승리로 인하여 오는 모두의 열광과 환희는 아무리 길어도 4년을 넘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가 마음을 거기에 두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큰 차이를 느낀다.

두 번째의 바울이 고백하는 기쁨은 만약에 자신이 녹여져서 죽임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 기쁨임을 고백한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라고 말하면서 오늘 우리를 연이어 그 기쁨에 초대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18)

바울은 이러한 기쁨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연이어 소개하고 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남이 "기뻐하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솟아나야 하는 것임을 볼 때 바울은 분명히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초월하는 그 어떤 기쁨의 샘을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는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빌립보 교우들과 오늘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우리가 대속의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주님을 믿고 사죄를 누림으로 오는 것은 분명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라는 약속은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 바울이 역설하는 기쁨이 바울에게처럼 나타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우리 자신들에게 가질 필요가 있고 거기에 대한 조그만 답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일 수도 있다.

우리는 대개 오늘 말씀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겸손에 초점을 맞춰서 이해하곤 하는데 사실 그러한 신앙의 자세가 오늘 말씀하려고 하는 것들의 바탕이긴 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도 좀더 사실적인 부분을 앞부분의 말씀에서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Ⅰ.오늘 나와 우리에게 주는 도전들.(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오늘 읽은 말씀 1~2절을 더 최근의 번역본으로 읽어보면 "①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②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③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읍니까? ④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읍니까? ⑤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⑥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공동] 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허락되어 있다. 바울 사도는 같은 믿음의 사람들인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두 말 할 것 없이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삶의 자세를 확신시킨다.

(2)"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표준 새 번역] 여기에서 주시해 볼 수 있는 것은 ⓐ생각, ⓑ사랑←같은; 합하고→ⓒ뜻, ⓓ마음



Ⅱ.모든 일에 임하는 자세와 교제에 있어서 가지는 자세.(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안에서의 행동의 자세]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3f)

1.무슨 일을 하든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세로 하는 가는 더 중요하다.

일에 대한 이유나 목표의 경계에 대한 교훈을 말한다.

①'다툼(경쟁심)' ②'허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b)

2.교제의 자세 즉, 사귐에 있어서 주는 경계다.

①겸손한 마음-뒤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②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



Ⅲ.자신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표준 새번역 개정]

1.자기 일에 충실해야 한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4f)

자신의 삶이 비록 사랑의 관계이지만 남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 일이란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까지도 포함되고 있다. 목회 서신 속에서 바울은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 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딤전5:16) 이러한 당부 바로 앞에서는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5:13)

신앙에 건실한 사람은 자신의 일로 인하여 남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역시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마음을 열고 받아드리는 것도 사랑의 나눔이다. 자신의 힘으로 안 되는 데도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신앙적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옳은 자세가 못된다.

2.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4b)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그러나 어려운 형편의 다른 사람을 도왔을지라도 역시 과시하거나 선전해서는 안 된다.



Ⅳ.각각과 서로의 관계를 바르게 감당해야 한다.

각각이 세 번이나 쓰이면서 강조되고 있다.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b)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4f)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mb)

히브리서 같은 데서는 "피차, 서로"가 강조되고 있다. 신앙에는 이 각각과 서로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먼저는 '각각'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사실에 있어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4f)의 최근의 번역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먼저 남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라는 식으로 번역이 되고 있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4f-공동)

이것은 교회의 여러 모습에서 대단히 중요한 삶의 자세이고 조화와 기쁨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화평과 행복과 발전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달란트를 가지고 나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면서도 연약한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용하고 위로하는 삶의 자세는 그리스도의 교제에 있어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이 움직이기를 기대하여 욕심이 그것이다. 결국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남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가만히 있다면 사실은 움직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전도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엄청난 기만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젖 먹는 어린아이의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쉽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이지만 아기와 어머니의 차이를 여기서 생각할 수 있다.

어머니는 계속 주기만 하고 아기는 계속 받기만 한다. 우리 각자가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어머니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 아기로 만족하고 있는 한 교회의 성장이나 발전은 하나님께서 거져 해 주시지 않는다.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들은 먼저는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데 까지 갔을 때는 무서운 폭발력을 가지게 된다.



Ⅴ.결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일을 누가 시작할 것인가? 여기에 나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교회는 계속 자신의 역할을 알지 못하는 체로 남들로부터 사랑과 위로와 칭찬만을 기대하는 유치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많아도 생명을 낳을 수 없다. 영적인 성숙에 있어서 어머니처럼 계속 자신의 것을 주고자 하는 희생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그 수에 상관없이 계속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가 바로 우리가 늘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한 마음의 바탕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돌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자라 갈 때 교회는 힘있게 역사와 사명과 세상을 감당하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각자가 각각과 서로의 역할을 그리스도를 품고 충실히 감당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가 두루 흐르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