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종배 전도자
고전 13:1~13 2002-08-04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 안에 행하는 것이며 나의 삶이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안에 행할 때 가능해 진다. 해서 경건의 목적도 같은 의미로 당부되고 있는 것이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1:5)

믿음 안에서 아무리 강조하고 주지해도 넘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신앙의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랑이며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이며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8, 16)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행위도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사랑은 은혜의 여왕이다. 하나님은 소망의 근원이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의 기본이시다. 사랑만이 갈보리를 가늠할 수 있고 사역의 믿음이다. 사랑은 또한 순종의 시금석이다. 사랑만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하나님을 모른다.(요일4:7~8)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Ⅰ.사랑은 실제적이다.

십자가의 고난에 앞서서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멀찍이 에서 베드로는 주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는데 이것을 회복시키시는 모습이 요한복음 21장에 나타나는데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써 베드로를 산산히 부서지게 만든다. 예수는 베드로를 책망하지도 위협하지도 벌하지도 않으셨다. 아주 단순하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셨을 뿐이다.

놀랍게도 사랑은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모습을 밖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가? 베드로에게처럼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찾아오셔서 같은 질문을 던지신다면 오늘 그 질문에 나는 자신이 있는가?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라가고 있는가?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하셨다.

주님께서 선언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됨의 뺏지(Badge)가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사랑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그러한 감격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4~8)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여 말 한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주를 따르는 우리 자신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이 나를 설명하는 것에 합당한가?

바울은 엡5:25~33에 결혼의 상대를 사랑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위한 사랑으로 비유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가정에서의 사랑의 실패를 본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성경에서 수없이 말씀하는 것을 본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9~10) 살전4:9; 히13:1; 벧전1:22, 2:17 요일4:7, 3:11, 4:11; 요이5 등등. 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도 수없이 듣는다. 마22:34~40; 롬13:8~10.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요한은 가르친다.(요일4:19~21)

우리의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가장 중대한 원리는 매일 매일의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힘은 미움이 지배하는 힘을 이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인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바울은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5~8)하였고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1~13) 바울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고 선언한다.

사랑이 있고 없음의 시험은 단순한 순종으로 시험되어질 수 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v23)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고 육신으로 항상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사랑으로 사는 삶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의 가르침은 십자가를 지심에서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성경은 끈질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다.

사랑은 결코 실패가 없다. 다만 우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할 뿐이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Ⅱ.사랑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사랑에 갈급하여 미쳐가고 있다. 사랑, 사랑, 사랑, 노래 가사에 "세계가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달콤한 사랑"

세계의 온 갓 비극적인 현상들.... 그것들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사랑은 모든 것의 해답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이 뭐냐?" 절대적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다. 그러나 위험 한 것은 '사랑은 곧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곧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상이며 마귀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사랑을 정의 할 수 있으시지만 사랑으로 하나님을 정의하지는 못한다.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로 "사랑(아가페)"는 "의지, 선택, 방향, 위탁"에서 온 말이다. 성경은 사랑을 명령한다. 감상적인 것을 거부한다. 무었 때문에, 누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성경 적인 사랑은 감상적인 착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사랑으로 위장 된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랑을 위장한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계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사랑은 사실적이며 자기 희생적이다. 십자가만이 사랑의 절정이다.

Ⅲ.사랑은 언제나 내가 먼저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기 위해서 상대적인 사랑을 절대적 사랑의 다음으로 미뤄 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선재 한 사랑을 오늘 내가 본 받는 것이 중요하다.

Ⅳ.무조건 적인 사랑이 사랑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