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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5:48 2002-08-22
온전 하라!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의 신앙의 간단한 점검은 상대의 부름에 나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따라 판명 될 수도 있을 것이다.(어느 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부르면 그 집 강아지가 먼저 뛰쳐나와서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것이 달갑지 않은 부름일 때, 나의 삶 속에서 누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서는가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육신적인 내 自我가 신경질 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라면 나의 육신적인 자아보다는 내 자신 속에 왕으로 좌정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육신적인 모든 것에 앞서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떻다고 생각되는가?

지난 시간 우리는 주님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신 말씀에 대해서 “1.사람이 완전할 수 있는가? 2.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3.온전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4.오늘 우리에게 완전 하라는 명령이 무엇인가?[①나의 삶의 모든 영역(100%)을 주님께서 지배하실 때 우리는 완전할 수 있다.; ②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때 자신이 완전해 진다.; ③하찮은 것들이 모여서 완전을 이룬다.]” 라는 4가지 항목을 생각했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두시는 이유조차도 온전을 위해서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2~13)

하나님은 온전하시기 때문에 온전히 드리는 것만을 받으신다. 구약의 온전한 제사, 신약에서는 온전한 예배, 하나님은 절대로 조각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에 굶주려 우리 사람들에게 부스러기라도 사랑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체로도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천국의 약속을 가졌다면 온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것이 최고이며 마지막의 목표일 것이다.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고 당부하는 것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도 여기에 있음을 확신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온전은 무엇인가?



Ⅰ.온전한 회개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두 말할 것 없이 회개한 삶이다. 즉,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든 삶을 돌이켜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두고 온 세상을 그리워하여 천안 삼거리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두고 온 죄악의 세상 삶을 동경하며 가등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고 경고하고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마3:8) 당부하신다.

세상과 하나님을 두고 저울질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라고 촉구하신다.

시편 45편에서 고라의 자손들은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10~11) 라고 뒤에 두고 온 과거의 일들을 온전히 잊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온전함이란 과거의 떠나온 세상을 온전히 결별하고 앞을 향하여 나아갈 것을 당부하고 계심을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두고 고백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세상을 등진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르기를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고 푯대를 확인 시켜주고 있다. “오늘 너는 온전히 회개한 삶을 살고 있는가?”고 주님께서 물으신다. 이 물으심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



Ⅱ.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제사보다 귀하게 보심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2~23f) 그러나 순종이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을 기뻐하신다. 부분적인 순종은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순종하고 저기서는 거역하는 그런 순종이 아니라 100%의 순종을 바라시는 것이다.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과 못 들어간 자들의 차이는 단순히 온전한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임을 생각할 때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도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이라는데 차이가 없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순종치 않아서 젖과 꿀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간 것뿐이다. 이렇게 볼 때 순종과 불순종은 운명을 결정 짖는 간격이 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②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민32:11~12)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신1:36)

온전한 순종이 안되면 먼저는 온전한 복종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5~6) [복종, hwypakoe; 경청, (하급자로써)아래에서 듣다, 즉 주의 깊게 듣다>, (결과적으로) 응락, 복종, 순종] 믿음의 사람들의 순종이 온전히 될 때 불순종의 사람들이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다.



Ⅲ.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그야 말로 아낌없이 주신 분이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다른 말로 온전히 주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새신’은 좋아 하는데 ‘헌신’은 좋아 하지 않는다.-joke]

사람들은 은혜는 좋아 하면서도 헌신은 좋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가 더욱 은혜 되기 위해서는 은혜 반은 자로서의 헌신이 필요하다. 온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가 국가에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사생활이 전혀 없는 국방의 의무를 행해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고 말씀하신다.

이번 수련회에 우리 모두가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가 계속 적으로 은혜 되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 몸의 헌신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말로 이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어떤 것보다도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다. 몸을 드림의 첫째는 무엇보다도 예배가 될 것이다. 구약에서 짐승을 태워 바치는 제사를 기뻐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한 제사를 받으신 후에는 그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고 사신 우리 각자의 헌신을 기뻐하신다. 둘째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직접 봉사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로 직접 자신의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나를 기뻐하신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 진다는 감격을 생각하는가? 셋째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의 삶과 물질의 헌신(행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까지도 온전한 것만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스러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다. 물질을 아무리 많이 드린다고 할지라도 마음 없는 의무에 의한 연보는 진정한 헌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분만 좋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셨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 문제다.

마음에 아무리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손과 발에 가져오지 않는 즉, 헌신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며 자신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Ⅳ.온전한 믿음의 삶을 요구하신다.

“네 ①마음을 다하고 ②목숨을 다하고 ③뜻을 다하고 ④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30)

우리의 주님께서는 마음만 받으시는 것도 생명만 받으시는 것도 듯만 두는 것도 힘만을 쓰는 것도 흡족해 하지 않으신다. 모두를 요구 하신다. 우리의 전체를 요구하신다. 知情意 뿐만 아니라 생명과 능력과 목표를 다 요구하신다. 찬송가 348장에 -나의 생명 드리니, 손과 발을 드리니, 나의 음성 드리니, 나의 보화 드리니, 나의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평생토록 주 위해 봉사하게 합소서 아멘-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으며 자신 모든 것을 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버리셨던 주님을 수시로 바라 볼 때 우리는 온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바울 사도는 온전치 못한 믿음의 사람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경계한다.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딛1:13)

하나님은 온전한 회개를 요구하신다. 세상과 하나님을 넘나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의 온전한 순종을 기대하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고 오늘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아니 오늘 우리의 삶 전체를 요구하신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매일은 온전하신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이 될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온전히 바쳐진 그러한 백성들에게 이 땅에서도 풍성한 영혼과 물질로서 천국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