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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딤후 3:15~17 2002-08-27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당연히 온전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온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온전하라고 하실 때는 반드시 온전의 방법을 주시면서 온전케 하시고 온전을 기대하신다는 확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연약한 인간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으시는 무례함을 즐기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게 시험을 허락하실 때까지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얼마나 감사한가?



바울은 고백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2~16)고, 바울 같은 이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야 얼마나 온전을 향해 정진해야 되겠는가 하는 도전을 받는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라 했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권면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온전이란 우리의 육신 안에 있으면서 완성된 것이 아리라 완전을 향하여 달리는 것 자체가 온전이라는 신앙적 모습임을 배우게 된다. 바울 사도는 다시 권면하기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후13:11f)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온전을 향하여 달음질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솔로몬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2:7)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1:20)



Ⅰ.십자가를 의함으로 …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반대 방향을 향하여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나님 없이 무엇을 해 보겠다고, 모든 면에서 스스로 성공해 보겠다고... 이를 가리켜 성경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의 불완전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회복될 수 없다. 여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을 바라는 사람들이요, 자신을 신뢰치 않고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들인 줄로 믿는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결코 온전해 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죄악과 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는 것은 온전을 위한 출발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의지 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나를 부정할 때 오히려 온전해 진다는 교훈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향하여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고 고백하고 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9)고 당부한다.

184: 1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2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3 나의 죄속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4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5 영원토록 내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복음은 십자가이다. 죽고 사는 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왜에는 없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바라봐야 하는 것도 십자가요, 영원히 자랑할 것도 나 자신의 공력이 아니라 십자가 인 것이다.



Ⅱ.말씀을 따라 살 때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가장 확실한 약속이다. 이 땅에서 거짓과 진리를 판별할 수 있는 보단 분명한 척도는 바로 우리 손에 들려주신 진리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6~17)



Ⅲ.성령을 쫓아 행할 때 …

우리의 의지나 생각으로는 절대로 온전해 질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일체가 되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약속대로 성령과 더불어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달픈 삶은 더 이상 나 혼자 짊어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고 예언 하셨다.

①세상 사람들과 다를 수 있는 능력의 삶의 비결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라고 약속하심으로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실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능력이 어디서 올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②우리는 우린 안에 와 계시는 성령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지나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 하면 꼭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행한 기적적인 능력만이 성령의 역사 일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고 우리 삶 속에 와 계시는 성령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살 때가 많다. 특히 진리를 따라 신앙한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일깨워 주고 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이 말씀의 첫째 의미는 우리의 삶이 성결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비로소 성결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요한 사도는 증거 하시기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③꼭 신비한 체험만이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지탱해 가게 하는 것과 온전을 이루어 가게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④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읽고 순종해야 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이 약속은 우리가 온전해 질 수 있는 비결이다. 오늘 성령을 좇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말씀의 진리는 없고 가슴의 뜨거움만 강조하다 보니 꼭 어떤 신비한 환상이나 소리를 들어야 하고 기적적인 것들만을 추구하는데 있다. 물론 성령의 역사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가운데 신비한 체험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마귀가 성령을 빙자하여 이상환 체험을 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일들을 더러 보게 된다.

성령을 좇아 산다는 사람들이 인격적이지도 못하고 도덕적이지도 못한 것들은 그러한 체험이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가졌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과 인도를 더욱 확실히 하여 온전을 향한 신앙을 경주할 수 있는 확신이 누구보다도 더 강하다.



Ⅳ.하늘의 소망으로 온전히 채워 질 때 …

우리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소망으로 충만해 진다면 이 세상에서 의연하게 온전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울 사도의 소망에 관한 고백들을 들어보면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5: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5)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

베드로도 같은 고백을 드리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세상을 초월한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요(히11: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19:21)라 하신 말씀이 호소력 있게 들릴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만이 비로소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역경조차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는 말씀이 진정한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