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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람들이 “비가 올 것이다” 또는 “태풍이 올 것이다”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흔들고 두려워하고 장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편히 가지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조차도 불확실한 현실에만 눈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함께 한숨을 쉬고 오히려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만 탄식하는 경우가 있는 것들을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을 잃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잃을 수 있는 것들은 두고 가야 할 것들이요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영원한 것들은 그대로 일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잃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고백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그러므로 없어질 것들을 잃었다고 낙담하고 절망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어둡기 때문이다거나 어린 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시편 112편의 말씀은 서두에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형통과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면서 7~8절에서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걱정되는 소문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을 깊이 신뢰고 경외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가운데서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Ⅰ.이 땅의 모든 사람은 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은 죄진 인간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절망을 가져온다. 특히 어떤 법에 걸려 있는 문제라도 있으면 전화만 와도 놀라고 우체부가 찾아도 깜짝 깜짝 놀란다. 자다가 꿈 자라리만 이상해도 단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사람들 가운데 두려움의 소식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정신 장애자이든지 아니면 인생을 포기한 막가는 인생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에서 두 가지 세 가지 등등의 공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테러에 두려움, 자연 재해에 대한 두려움, 전쟁의 두려움, 실업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공포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두려움의 종류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질병에 대한 종류만 해도 엄청나다.)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경건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미 개인의 운명이 끝나버린 사람들이다. 왜냐 하면 우리는 이미 개인으로서는 이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어떠한 두려움도 능히 뒤집을 수 있는 복된 소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두려움들이 있는가?
1.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
아무리 큰 소리 치던 사람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 “목숨만 살려 줍쇼!” 죽음 앞에서는 연약해지고 초라해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를 깨닫게 된다.
2.소문에 두려워한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24:6)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눅8:50)
3.실패를 두려워한다.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들보다 못하면 어쩌나?” 이 경쟁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어린 아이에서부터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타고난 외모에 까지도 두려움을 갖는 나머지 수술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고 한다.
4.이런 모든 두려움의 중심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죄는 모든 것을 망친다. 죄는 사랑의 대상도 두려움으로 본다. 범죄하고 숨은 아담의 행동에서 이를 본다.
Ⅱ.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수없이 말씀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공치사가 아니라 보장이 있는 안심이다.
하나님은 막연한 약속으로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신다. 반드시 약속을 주시며 안심시키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격려 하셨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보이는 것들에서 위축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20:1)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
“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28:2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도 같은 격려를 주고 계심을 들어야 한다. “OOO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폭풍 속에 공포로 떠는 제자들을 향하여 “… 내니 두려워 말라”(요6:20)
가장 완벽한 두려움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Ⅲ.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1.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두려워 할 고난과 환난이 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벧전3:14)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7:5)
2.믿음의 사람들이 두려움이 오려고 할 때 행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
시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눅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
이 땅의 어떤 고통도 형벌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경계하신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신앙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두려움이다.”(W. E. 글래이드스톤, 1868~1894년 영국 수상)
3.두려움의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조상들의 모습들.
욥1:13~19을 보면 그가 들은 소문은 하나 같이 절망이요 두려움뿐이었다.
(13)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 (16)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7)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8)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19)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종들의 보고는 한결 같이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15, 16, 17, 19) 그 소식은 욥은 그 많던 재산과 자녀를 한 순간에 다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반응하는 욥을 보면서 비로소 오늘 본문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7)라는 말씀이 증명되고 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20)
우리는 흉한 소식에 반응하는 또 한 사람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보는데 그것은 바벨론에 있는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이것은 분명히 사형 선고 였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이것이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의 불길한 소식에 반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믿음의 음성으로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11)
4.십자가는 모든 인생들의 두려움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장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십자가에 다 달아 죽이셨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두려움에서 자유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복음으로 해방시켜야 한다.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위로자들이다. (9)“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Ⅳ.결론.
두려움은 외부에서 아무리 “두려워 말라!”고 외쳐도 가시지 않는다. 두려움 자체가 내부에서 생성되는 것이기 대문이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도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셨지만 주님께서 구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에 제자들은 하나 같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모여서 떨고 있었던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저들의 중심으로부터 두려움을 깨드려 버리자 제자들은 비로소 세력이나 죽음 앞에서도 담대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선언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으로 입고 사는 사람들이다.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님이 낯선 분으로 느껴질 때이다.
복음은 모든 인생들에게 최고의 용기를 준다.
십자가는 우리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절망의 문제인 죄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죄에서 오는 모든 근본적인 것들을 다 해결 하신 능력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이 놀라운 은혜는 바로 이 십자가의 은혜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우리 각자의 것이다. 믿으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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