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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참으로 평생에 씻기 어려운 실수를 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인간 관계에서도 사랑을 원수로 갚는 실수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데 하물며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죽음과 절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참으로 배은망덕을 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께서 불신의 세계를 향하여 책망하신 사실이 어쩌면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경계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영광과 위엄을 가지고 이 땅에 재림 하셔서 "적어도 나에게만은 커다란 상급과 위안을 가지고 오시지 않을까?" 하고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며 살고 있는데 주님의 피에 의지하여 구원받았다고 하는 우리들이 만약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역할을 하면서 살았다면 영광의 기대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8)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을 향하여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2:20~21)고 하여 서로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도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하면서 다시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12:15~1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딤후1:7) 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면에서의 성경은 역시 경계를 주고 있는 것이다.
Ⅰ.사실 우리만큼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19~21f)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참으로 많은 미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속화된 교리들 때문이고 나타날 미래의 영광보다는 현실의 祈福的인 것이 더 중시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교리 적으로는 얼마나 성경에 가까이 서 있는지 모른다.
막연한 자연을 통한 하나님을 느끼는 세상 사람들 보다 그리고 진리를 바로 알 고 신앙하는 우리들은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나음이 무엇인가? 진리를 분별하고 지키려는 시도에서 언제나 있어지는 위험성은 실천의 허약성과 사랑의 상실이라는 것이다.(계2:4~5) 이왕에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알고 또 삶 속에서 수시로 그것을 깨닫는 우리들의 배은 망덕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참으로 가증한 것일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갈4:9)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하기 위하여 내어 주셨는데 우리는 참으로 그 은혜를 쉽게 망각해 버리고 살기 쉽다. 하나님을 위해서 보다는 언제나 나를 위하여 쓰고 계획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고 책망한다.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시고 채워주시는데 정작 우리는 자신의 복이 팔자가 좋아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께서 필요로 할 때는 외면해 버리는 배은 망덕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절대로 길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율법과 계명을 논하기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8~9)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은 그 많은 율법 조항을 외우다가 날이 새어 버렸다. 장구한 계명을 외우고 늘리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취지가 아니셨다. 계명을 머리로 외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단순한 사랑을 깨닫고 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Ⅱ.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나 점검해야 한다.(21~22)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우리는 곧잘 인간의 존재 이유를 신앙적으로 물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쉽게 답변한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그런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머뭇거리게 되고 예배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부탁을 들으면 부끄러워진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빌4:20)라는 바울 사도를 통한 당부를 듣는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거나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는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삶 속에 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Ⅲ.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의 썩어질 것들로 바꿔 버리지 않는가?(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많은 종교인들이 사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들이 오늘의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래서는 안된다. 저들은 많은 무지 가운데 있어서 그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나 진리를 깊이 알고 있는가? 아는 것에 책임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주님께서 선언하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7~48)
아는 것은 분명히 특권이고 감사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안다는 것에 책임도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든가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15:22)는 말씀들을 참으로 두렵게 들어야 한다.
알면서도 나 자신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짐승이나 벌레만도 못한 것으로 실추시킨다면 참으로 두려워해야만 한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3~24)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죽어져야 하고 주님만이 나를 통해서 사셔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는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영원한 영광을 기약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삶 속에서 회복하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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