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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창 13:8~13 2002-10-16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우리는 대개의 경우 이 말씀을 아브람과 롯의 선택의 차이를 다루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선택 우선권이나 유리한 조건에 관한 것보다는 선택의 조건의 영적인 면과 그 이후의 과정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삶의 경계를 삼았으면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는 모험의 길에 친척이면서 따라 나선 롯의 용기는 아브람 지지 않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 아브람의 신앙을 계속 따르지 못하고 죄악의 소굴인 소돔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까지 롯은 갈등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창세기 14장에서는 소돔에 들어가 살던 롯이 전쟁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아브람에 의해서 다시 회복 받았을 때에 깨달았어야 했지만 이미 소돔에 익숙해진 롯의 일가는 소돔성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속 거기 머무르다가 아브람이 찾아준 모든 것을 불벼락으로 다 잃고 만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므로 불타 없어진 소돔성은 오늘도 동일하게 불사르기 위하여 예비 된 이 세상[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을 상징하고, 그 속에서 소신 있는 신앙의 삶을 살지 못하고 가족을 죄악의 제물로 잃어버린 롯은 오늘도 세상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계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 되었고 예수께서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17:32)는 경계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고 계신 것이다.



Ⅰ.믿음의 사람의 선택 기준.(8~9)

1.물질보다는 관계를 더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과 인간 관계의 문제에 놓이게 되면 대부분 물질을 택한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신앙의 사람은 사람과 사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이 물질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계(關係)를 귀중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라고 가르치셨다.

또 물질은 잃었다 찾을 수 있어도 사람의 관계는 망치면 회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악한 죄악의 사람들의 인간 관계다.

때로는 물질을 지키려다 하나님을 잃고 사람을 잃는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 바울은 경계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라고 가르친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과 관계를 바르게 가지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물질인데 이것이 거꾸로 되면 안 된다. 아브람은 일찍이 이것을 알았다.

2.당연한 우선권조차 다 포기한 사람이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귀한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하지 못해서 생기는 믿음의 어려움이 사실 많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위로 하셨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하신 말씀처럼 대대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을 본다.



Ⅱ.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택기준.(10~13)

세상사람들의 기준은 믿음의 사람들의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롯이 조금이라도 신앙적으로 판단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1.보이는 것에 가치를 둔다.(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2:15~1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3:6)

2.점점 죄악으로 옮겨갔다.(11~13)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 지라"(11)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12b~13)

롯은 삼촌 아브람을 따라 우상숭배의 땅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나 마침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죄악의 땅에 다시 들어가고 말았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이 단번에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예는 드물다. 늘 사탄이 요구하는 것은 “다음에는 그러지 마, 이번만, 오늘만 하는거야!” 라고 유혹한다. 우리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그러기 쉽다. “이번 이 시험까지만 그렇게 해, 그러나 시험 끝나면 안 해야 되…” 그러나 신앙에 등한해진 아이들이 다시 바람직한 자리로 돌아오기란 어렵다. 고 윤화섭 모친께서 살아 계실 때 늘 되 뇌이던 말씀이 바로 그런 실 수였노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수없이 들었다.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는 모습은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아브람을 떠나 “요단 온 들”에서 점점 소돔성을 향하여 장막을 옮겨 치는 롯의 일가를 보는 듯 하다.

소돔의 맛에 길들여진 롯의 달들은 좀처럼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아마도 롯은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드리러진 물이었다. 롯은 가족을 믿음으로 이끌지 못한 전형적인 신앙의 실패자이다.

이 말씀이 왜 기록되었는가 하면 믿음의 사람들에게 롯과 같은 실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세상을 향하여 점점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면 용감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와야 한다. 순간의 인생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영원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행여 라도 세상일이 먼저이고 믿음의 일이 다음으로 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씀을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의 14장의 풍랑 속에 빠져가든 베드로의 위대한 점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마14:30) 라고 주님께 구원을 외친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모든 것을 생각지 않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Ⅲ.두 가족의 삶의 차이.(12~13, 18)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람은 비록 눈에 보이기에는 척박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자자손손 살도록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에 그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하나님과 만나는 제단인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장막을 점점 옮겨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는 말씀과 12절의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는 말씀은 신기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물론 나중에 소돔 성의 멸망을 일러주는 하나님의 천사들도 이 제단 곁에서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창18:1)

믿음의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향하여 다가가고 연약한 사람은 죄악을 향하여 다가가는 극명한 차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Ⅳ.믿음으로 사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14~17)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롯이 눈에 보기에 좋은 쪽을 택하고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귀하게 여겨서 눈에 보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한 쪽을 선택한 아브람을 찾아와 위로하신다.

"고개를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라, 네 눈에 비치는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나는 네 자손을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게 하리라. 땅의 티끌을 셀 수 없듯이 네 자손도 셀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서 이 땅을 두루 돌아보아라.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공동]

①보이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물론 지금 롯이 차지하고 있는 소돔 땅을 포함해서 [10절 중간에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이것은 영적인 안목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볼 수 있는 것만큼 누리므로 영적인 눈이 밝아야 될 것이다.

②셀 수 없을 정도의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수천 대에 이르게 하겠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③네가 밟는 땅은 다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수14: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1:19)

오늘도 모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아브람에게 주신 동일한 약속을 주실 것이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Ⅴ.오늘 우리의 삶도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선택에 따라 안타까워하시고 칭찬하신다. “나는 너의 영원을 보장하기 위해서 피를 흘렸다. 그런데도 너의 기준은 아직도 세속적인 사람들과 차이가 없구나, 나를 의지한다면 내가 너를 붙들어 줄텐데 너는 아직 세상의 줄을 놓지 못하는구나!” 안타까워하실 수 있고 마음으로부터 이런 탄식을 듣는 것 같은 우리의 마음도 괴롭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기보다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죄의 희생물로 지불하시므로 이미 모든 것을 약속하셨다. 시들지 않을 영광과 쇠하지 않는 기업, 그 모든 것이 지금 나의 선택에 의해서 나의 것이 영원히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부러워하고 두려워 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약속을 위해서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는 우리 각자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

주님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를 의지하는 모든 자의 보장이 되신다.

우리가 주님을 즐겨 순종하면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91:11)는 약속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다.

믿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