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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히 11:13~16 2002-10-20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번역본으로 읽으면 [13)지금 내가 열거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얻은 뒤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4)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아 하늘에 있는 참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만일 그들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16)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만들어 두셨습니다.-현대어]

히브리서 11장의 서두에서는 믿음의 위대한 선배 다섯 사람의 신앙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 그런 다음에 이 사람들의 믿음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내용이다.



Ⅰ.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 고 증거 한다.(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결과로서는 서글프기까지 하게 들린다. 왜 이 땅에서 믿음의 용맹스런 거장으로 산 사람들이 이것 밖에 안될까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 땅에서 받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영원한 영광의 때를 기약하고 생을 마감하는 진정한 믿음의 모범은 바로 이런 것이다.

1.죽기까지의 충성을 본다. 믿음은 순간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았다는 말씀이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b) 는 말씀의 완전한 모델들이다. 이러한 죽음은 분명히 저주가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 라고 말씀하시며 믿음의 사람들의 최후의 영광을 말하는 계시록에서도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고 약속하고 있다.

사람은 한번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무엇 위하여 살다가 세상을 떠 났는 가는 그 죽음의 가치를 결정한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어떻게 갈 것인가를 믿음의 조상들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2.멀리서 막연히 보고도 기뻐했다. 세상사람들은 기대하던 것들을 얻지 못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하나로도 만족하고 감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대에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주님의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감격이 있을 때 그것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고 예수께서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그 일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오늘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신앙에서의 우리의 삶도 그렇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충실히 살았다면 열망하고 기대하던 큰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음에 영광을 인계할 수 있는 신앙 자세가 아쉬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약속하신 영광이 우리를 지나갈지라도 은혜의 대열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삶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Ⅱ.그들은 고달픈 순례의 길에서도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되돌아가지 않았다.(14~15)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우리는 어떤 이상을 가지고 도전을 하다가도 너무 그 일이 힘겨우면 시작하기 이전으로 뒷걸음질치기 쉽다. 그러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런 면에서 참으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다. 많은 신앙하는 자매들이 처음 젊은 나이 때는 믿음 좋은 신랑을 찾아 바람직한 신앙의 가정을 이루어 보려고 애 쓰다가 혼기를 놓지는 가 싶으면 서서히 이런 신앙적 결심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곤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믿음 생활에서 경계되는 것은 신앙의 위기가 오게되면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되돌아본다고 하는 것이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고 수많은 실패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다. 한번 빠져 나온 곳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곳일지라도 하늘의 영광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될 것이다.

올바른 믿음의 사람들은 순례의 길이 힘겨울수록 하늘을 향한 눈을 더욱 밝히 떠서 약속된 미래의 영광을 믿음으로 오늘의 상황에 당겨서 그 영광으로 오늘의 고통을 덮는 삶을 산다. 스데반이 돌무더기 가운데서 주님을 뵈었던 것처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하였다.

세상이 점점 믿음의 이상에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두고 나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돌아보는 대신 더욱 돌아갈 영광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찬송과 290장이 바로 이러한 고백을 노래한다.

2.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너머 눈보라 재우쳐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3.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1.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Ⅲ.하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흐리지 않고 나아갔다.(16f)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이 사람들이 모두 완벽하지는 않았다. 아벨과 에녹은 비교적 흠 없는 삶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지만 노아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허물이 없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확실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이들과 같은 하늘을 향해서 흐리지 않는 믿음의 눈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을까? 예수께서 복음서에서 말씀하시기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4~35; 마6:22)고 말씀하시는데 아주 중요한 교훈으로 결코 육신의 눈을 두고 하시는 말씀만이 아니다. 우리 세상에서의 삶이 천국을 밝게 볼 수만 있다면 몸의 움직임 모두가 행복한 즉, 밝은 모습일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삶이 죄의 어두움과 절망으로 어두울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비록 육신의 눈은 좀 어둡더라도 영혼의 눈은 밝아서 이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영원한 천국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을 믿음의 조상들처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눈 시력을 측정할 필요가 있는데 영적인 것이 바로 보이는지 세상 적인 것이 크게 보이는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요한 사도를 통해 라오디게아 교회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b)고 권면하고 계신다. 우리가 세상 적인 눈은 좀 어두워 가더라도 참으로 밝게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져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또는 우리가 주님 오시기 전에 믿음의 조상들처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광의 약속을 밝히 바라보는 나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Ⅳ.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늘 나라는 예비 되어 있는 것이다.(16b)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너무 공의와 진리를 따라 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세상에서 어떻게 통하든지 곧이곧대로 순종하려는 이런 사람은 어떤 경우 세상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법은 강한 사람들의 과시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이 지상에서 더 많은 것 같다. 분명히 객관적으로 볼 때도 약한 사람이 더 옳은데도 그 것이 법정에서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기는 것들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수없이 볼 수 있다. 믿음으로 순수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법의 보호를 온전히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구약의 도피성은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하여 예비 되었으며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수치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보호를 벗어버리고 의의 보호를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는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4)고 순진 무구한 자들의 소유가 천국이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듯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우리가 소신 있게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Ⅴ.그러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셨다.(16m)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런 사람들이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주님께서는 “내가 저들을 위하여 피를 흘렸노라!”고 변호해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나의 영광이라고 고백하며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부르심에 대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예배를 위해 살고, 하나님과 함께 임마누엘을 살고, 약속을 붙잡고 사는, 이 땅에서의 생애가 짧던 굵던 초라하던 영광스럽던 그것에 좌우됨이 없이 주어진 생애를 오직 믿음으로 일관하는 그런 사람을 주님은 기뻐하시면서 “내가 저들을 위하여 피를 흘렸노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과연 오늘 나(각 자의 이름)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실까?”

그러나 때로는 흔들리고 휘청거리던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지금 그렇게 산다면 감사하고 지금도 부족하다면 새롭게 주님과 약속하고 결심해서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림이 없이 믿음의 조상들의 뒤를 잇겠다고 결심하고 각오한다면 주님은 그러한 각자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실 줄을 확신한다.

우리 모두 이 약속에 부끄러움이 없는 피로 씻음 받은 백성들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