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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딤후 2:1~7 2002-10-28
네가 …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이런 모양으로 말씀을 시작한 적은 없지만 오늘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의 이념

[ 교훈 ]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 설립이념 ]

그리스도신학대학교는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 바탕 위에 성경에 기초한 영성․학문․실천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교육을 통하여 인류구원․복리증진․문화창달을 교육이념으로 한다.

[ 교육목표 ]

그리스도신학대학교는 대한민국과 본 대학의 교육이념에 따라 사회와 인류발전에 필요한 학술이론의 연구와 교수, 전인적 인격교육을 통한 복음전도․인류구원․교회일치․사회봉사에 헌신할 그리스도의 교회 지도자를 양성함을 교육목표로 한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는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을 바탕으로 성경에 기초하고 분명한 이념과 목표가 있다. 그러므로 학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하여 세워지고 교회와 더불어 복음증거의 도구인 일꾼들을 키워서 교회에 공급하고 교회는 미국의 교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영적인 기도의 부분과 필요한 물질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배출되는 일꾼들에게 일터를 제공함으로서 공존하고 협력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의존하며 나아가야 할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기관이다.

미국의 대학들이 그래도 신앙적 이념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학교가 정책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재정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 교회와 의논하고 교회는 기도와 물질을 주는 대신에 반드시 신앙적 부분을 분명히 할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 민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교파들의 아성들 가운데 신앙의 많은 부분이 본질에서의 이탈됐고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는 연약함 속에서 지도자를 키우는 학교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학교의 가르침도 지도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시대적인 흐름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학교보다는 신학대학을 대학보다는 대학교를 욕심 내다가 불신의 기관인 상위 감독단체의 간섭을 받게되고 소신 있는 영적 지도자 훈련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외형적인 부분에서는 확대 발전되었지만 처음 중심이 되었던 신앙의 지도자 양성의 신학과 보다 주변 학과가 증과 증원됨으로 신앙적 이념을 지키는 데나 영적 지도자 양성에는 후퇴한 상황에서 교회의 합당한 신앙을 가르치는 지도자보다는 모든 사회적 분야의 일꾼을 키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다.

분명히 신앙적 이념을 기반으로 세웠고 유지되어야 하는 이념과 목표가 지금도 분명하지만 목회자나 목회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문제까지도 주변 학부 학생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지금의 학교와 교회의 괴리(乖離)는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기 전에는 회복이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학과조차도 초대교회를 지향하는 성경을 바탕 한 신앙지도 훈련보다는 많은 타 교단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 정체성 자체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졸업생들을 배출함으로 신앙의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교회들에서는 세우는데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했던 분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속했던 교단의 명예와 지위를 버리면서까지 신앙의 순수성을 받고 지키는데 희생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작금(昨今)의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치 또 다른 교파교단의 탄생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까지 하다.

교회의 신앙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사실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 진보 된 지도자들조차 스스로 비교파주의(非敎派主意)의 환원정신(還元精神)을 상실(喪失)한 체 하나의 교파로 생각하고 또 말하며 교단총회(敎團總會)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리스도신학대학교가 교회와 호흡을 같이 하며 그리스도의 교회의 합당한 일꾼들을 키우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운영기관인 학교법인 한국그리스도의교회 학원이 어떤 특정인의 정치적(政治的)이거나 이권(利權)에 법인이 이용되어서는 안되고 처음 신앙의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바탕으로 세워졌던 신학과의 교수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의로운 희생을 각오하면서 바른 신앙을 회복하고 지키려는 자세로 거듭날 때 가능하게 될 것이며 교회는 보다 많은 관심과 기도와 물질을 학교에 끼침으로서 학교의 주체가 분명히 교회임을 주변 학과의 학생들이나 교수들에게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Ⅰ.들은 것을 부탁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 사도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증인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의 장로들이거나(딤전4:14) 바울을 비롯한 주변의 동역자들, 또는 디모데의 사역을 지켜보며 함께 신앙하는 성도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진리를 들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히 증인들은 있을 것이다. 성령과 말씀과 함께 신앙해온 우리교회의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들음은 오늘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진리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하였고 역시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행8:35)했다고 누가는 기록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 들은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듣는 사람들이 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듣고 부탁 받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충성된 자”라야 가능하다고 증거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복음을 듣는 우리들은 먼저 그것을 전하고 부탁하기 위해서는 받은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①확신하고 ②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또 ③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충성됨에까지 가야 한다. 나 자신이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또 다른 충성된 자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증거나 부탁에 응하고 동조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질 수 없음을 일찌감치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삶 속에서 많이 전해야 거기에 반응하는 충성된 사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동일한 원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적게 전하는 것은 충성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확률도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Ⅱ.그리스도의 일군들은 군사로 소집되었다.(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전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군사로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다.(엡6:10~17; 고후10:3~5; 딤전1:18)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딤전6:12) 다만 군인에 역할이 계급의 차이에 있다면 신앙에 있어서는 섬김의 자리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인에도 역시 충성된 군인과 말썽만 부리는 군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군인으로서의 신앙에 대한 귀중한 자세를 지적해 주고 있다.

1.신앙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3f)

2.훈련을 받고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분명히 고난이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3b)

3.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자기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4f)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고전7:32~34)

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4b)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우리가 다 온전치 못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 군사로 선택해 주신 사실에 바울 처럼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충성을 기대하시면서 충성 되이 여기셔서 뽑아 주신 것이다.

Ⅲ.믿음의 사람들은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성경에서는 신앙의 삶은 많은 곳에서 경기자로 비유하고 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전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히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이모든 운동 경기에서 경계되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것과 끈기와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Ⅳ.신앙은 농부와 같은 수고를 꾸준히 감당해야만 한다.(6~7)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성경에서 믿음의 삶은 역시 농사와 관련지어서 비유되고 있고 여기에서 강조되는 중심 사상은 더위와 수고를 견디며 땀을 흐리면서 추수 때를 기다리는 인내에 핵심이 있다.

◎마3:12 “타작 마당의 알곡과 쭉정이에 대한” ◎마13:3~40 “알곡과 가라지” ◎마20:1~17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 ◎마21:33~41 “포도농장 주인과 종들” ◎요4:35~38 “추수할 곡식과 추수 꾼” ◎고전9:7~11 “심고, 기르고, 떠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며, 뿌렸다면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이치를 말한다.” ◎고후9:6 ”적게 심는 자와 많이 심은 자의 추수 량,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주실 것이다“ ◎약5:7 “농부가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는 것처럼 주의 강림을 기다리라!”

Ⅴ.은혜 속에서 강해야 한다.(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위의 말한 모든 것들과 함께 이 말씀은 우리 자신들의 자의 적인 노력이나 의지보다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해 주시는 은혜에 의한 자세를 당부하는 말씀이다.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성령의 역사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경계이다.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강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도한대로 행동하는 믿음의 모습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앞지르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믿음 속에 비전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이지 나 자신의 계획과 결심과 각오가 아닌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역사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말씀은 게으름이나 핑계를 허용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순종적인 충성을 포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