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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요 6:16-21 2002-12-01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요한 복음에서 유일하게 이적이 연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곳은 이 부분뿐이다. 기적의 떡을 먹고 배부른 군중들의 반응을 요한 사도는 기록하기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4~15)고 군중들의 표정을 적고 있다. 나중에 다시 좇아온 군중들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 라고 말씀하심에서 진리보다는 육신의 안일에 관심이 있는 군중을 경계하셨다.

이 부분을 마태는 좀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2~23)

예수께서 이 세상의 명예나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셨다면 이러한 좋은 기회를 이렇게 버리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선생인 예수를 임금 삼으려는 군중의 유혹에 제자들이 흔들릴까봐 그곳에서 전혀 다른 건너편으로 가도록 재촉하시고 자신은 어두운 산중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 계셨던 것이다.

요한이 소개하는 다섯 번째 예수께서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이적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시는 이 자연 만물의 창조주요 운행 자이신 주님을 소개하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풍랑이 이는 것을 성경의 배경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하여튼 어떤 장비도 없이 사람이 물위를 걸었다고 하는 사실은 성경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고 특히 풍랑 이는 물결 위를 유유히 걸으시는 주님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 예사로운 풍랑 속에서 역시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자연조차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삼라만상의 주인으로서의 우리의 구세주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Ⅰ.우리 인생에 풍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일어날 수 있다.(16~17)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오늘 내용과 비슷한 갈릴리의 경험을 마8:23~27; 막4:35~41; 눅8:22~25에서 읽게 되는데 거기에서 다른 내용은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4:36~38) 라는 내용을 보면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이 요한복음의 마지막 이적에서 보겠지만 단순히 주님과 함께 있는 정도가 아닌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풍랑은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요11:5) 함에도 나사로는 병들었고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게 된다.

2.우리의 인생 항로는 늘 바다 위와 같기 때문에 풍랑을 각오해야만 한다.

언제나 인생은 바다의 항해에 비유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苦海)요 우리 모두는 항해 자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풍랑을 각오하듯 인생이 힘겹게 노를 저어야 하는 경우는 언제나는 각오가 필요하다.(돛단배가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야 한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마14:24)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6:48) 때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풍랑 만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시고도 그냥 지나치시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괴롭게 노를 젓는 제자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주님께서는 그 속성상 절대로 자신의 사람들을 그렇게 버려 두시지 못하는 분이시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마14:25b에 “제자들에게 오시니” 하였고 막8:48에도 “저희에게 오사”라는 주님의 목적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괴로운 제자들에게는 “지나가려고 하시”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Ⅱ.풍랑 중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자칫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18~19)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1.우리의 인생의 항로에는 큰바람과 풍랑은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대부분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이르게 되면 나오는 스튜어디스의 음성이 “방금 좌석벨트 사인이 꺼졌지만 예기치 않은 이상기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의자에 착석하신 상태에서는 언제나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 인생에 풍랑이 일어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인생의 풍파를 잠재우시는 주님을 찾는 것이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5)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두려워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는 속담보다도 우리는 더 확실한 약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위기와 절망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있다면 결단코 죽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확신이다.

2.구원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당시의 제자들은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막6:50)

3.예수를 오히려 유령으로 봤다. 특히 마가복음의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막6:49) 라는 자세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봤다는 무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평상시에도 정신을 차려야 하겠지만 어느 때 보다도 풍랑의 때 믿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바라 봐야한다. 이럴 때일수록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고난 당함을 보게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런 시련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시편기자처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67, 71) 라는 고백을 듣기도 한다.



Ⅲ.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평안과 위로를 아끼지 않으신다.(20~21)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1.주님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 자신들의 기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낮에 5천명을 먹인 기적을 보면서 그의 능력의 무한성을 몸소 체험한 제자들이면서도 잠시 예수께서 떠나있는 동안 풍랑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불신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을 찾지는 않고 자신들의 경험으로 해결해 보려는 행위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제자들, 믿음이 부족한 나를 주님은 물위를 걸으시든 불 속을 거쳐오시든지 긍휼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부족한 나를 위해서도 찾아오시는 주님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2.이런 아픈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마음이 무뎌져서 발생한다.

마가복음 6:51~52에서는 마가는 이 사건 뒤에 나름대로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이렇게 되는 원인을 누가가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①방탕함과 ②술 취함과 ③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3.주님을 모셨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 항해는 형통케 되는 것이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우리는 근본적으로 주님으로부터 보호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b)라든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이런 약속은 언제나 우리가 주님과 밀착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관념 속에만 모시고 있는 예수는 우리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마음의 작은 위로를 얻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 때 먼저 주님을 생각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이유도 그랬을 것이다.

주님께서 나의 인생의 모든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도록, 늘 함께 하심을 의뢰하고 모실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은 풍랑 속에서도 구체적으로 역사 하시는 은혜의 주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주님께서 안타까워서 우리를 향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시는 주님조차도 못 알아보고 유령이라고 소리지르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Ⅳ.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왕에 당할 수밖에 없는 풍랑이 인생이라면 그것을 당당하게 맞을 필요가 있다. [503: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4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아멘] 주님을 우리 인생에 좀더 가까이 모시기 위해서 당하는 풍랑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견고케 하시는 은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 만나 고통 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물결 위를 걸어 오셨듯이, 주님을 믿기 때문에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불 속에 던지겠다는 위협에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신앙을 사수하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하여 풀무 불 속에 친히 찾아오셨던 주님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신, 불신간에 반드시 인생의 항로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풍랑을 겪는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오늘도 변함없이 찾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그 폭풍의 위기가 어떤 것이든 주님께서 오시지 못할 고난은 없을 것이다. 자연을 명령하시고 움직이는 그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갖 인생의 고난의 폭풍을 만난 그의 백성들의 삶의 현장 속에 찾아 오셔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위로하실 것이며 아직 이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누리지 못하는 불신의 사람들까지도 초청하시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힘겨운 짐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끙끙대고 있으니 주님 보실 대는 안타까우실 것이다.

우리가 나의 인생이 힘겨워 신음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때문에 만나는 풍랑이라면 주님은 다가오셔서 위로할 것이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격려하실 것이다.



Ⅴ.결론.

우리 인생에 풍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일어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며 때문에 우리의 인생 항로는 늘 바다 위와 같기 때문에 풍랑을 각오해야만 한다.

풍랑 중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자칫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더욱 큰 비극이다. 고통과 슬픔의 눈물 때문이든지 상처의 아픔 때문이든지 간에 구원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유령으로 보는 비극을 보이고 만다. 우리의 믿음과 마음이 무뎌져서 발생한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이 신앙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다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보면서 과연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고 항상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돌아보시고 임재해 계시는 주님이심을 실감할 수 있는 이적이다.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마음까지도 다스리고 잠재우시는 그의 말씀이 있을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기와 어려움의 폭풍 가운데 있는가? 주님께서 절대로 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음성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