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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요즘은 화해의 손짓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본다.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이스라엘과 PLO 등등. 그러나 이러한 화해의 모션은 표면적일 뿐이고 언제나 그 이면에는 각자의 이권이 걸려있다. 또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오랜 기간 시도되지만 실패하는 것들을 본다.
결국 인간의 집단적 이기주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는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되고 궁극적인 해결을 주지 못함을 보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전선들을 완벽하게 이어 놓아도 전기의 원선에 연결되어지지 못하면 전기 불은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부분적인 화해의 시도는 본래적인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Ⅰ.화목이나 화평이란 무슨 의미인가?
히브리어로 '화목'이란 말인 "사칸(sakan)"은'친숙하게 되다' 습관이 되다, (함축적으로) '수종들다, 편리한, 소중히 하다'이다. 그러므로 구약적 화목의 의미는 '하나님과 친숙하게 된 상태' 라고 이해하면 옳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한 벗이라고 하신 것에서 볼 수 있다.(창18:17; 대하20:7; 사41:8)
헬라어의 '화목'의 뜻은 "카탈라쏘(katallasso)"(상이점을) 혼합하다, 화목케 하다<롬5:10;고후5:18> 교환하다. 이 말은 본래 "카타"(kata) ~에 의해, ~에 대하여, ~의 방향에서 + "알라쏘(allasso)" 다르게 만들다, 변화하다, 바꾸다, 고치다에서 유래하여 '상대에 의해(대하여) 나를 바꾼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화목이나 화평은 사랑이 그렇듯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마치 일방적이 되면 '짝사랑'처럼 '짝화목' 이라는 이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Ⅱ.누구와 화목할 것인가?
누구와 잘 지내려고 애쓰는가?
누구와 가까운가는 곧 그 사람의 삶을 말한다. 세속적인 친구들과 사귀면 세상에 익숙해 질 것이고 신앙을 한다고 할지라도 '건전치 못한 신앙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 당연히 그러한 것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의 이권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로비(lobby)를 한다.
이 세상에는 만남을 주선하는 로비스트(lobbist)들이 허다하고 이들은 다 자신들의 이권을 위하여 로비활동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참으로 훌륭한 로비스트이시다. 죄의 벽을 헐기 위하여 친히 피를 흘리셨다.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신10:20)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7~8)
Ⅲ.화평의 도구는 무엇인가?
우리 인류는 유사 이래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하여 수많은 종교 행위가 있어져왔다. 그러나 죄진 인간의 모든 기대와 노력은 헛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의의 제사가 드려졌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4~15) 십자가의 희생의 제사는 드려졌다. 화평을 위한 제사는 이미 드려 졌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화목케 하기 위한 도구도 희생의 십자가였고 현실 적으로도 화해의 도구는 희생이다.
고후5:20"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엡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이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화평을 우리는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사실 화평는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이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전도'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화목의 손짓이다.
희생으로 이루어진 화평을 지켜 가는 대도 역시 희생만이 방법이다. 사도 요한은 권면하기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화평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도 여전히 "죄와 욕심"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1)
Ⅳ.하나님과의 화목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애당초부터 모든 삼라만상을 조화롭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이 모든 것들의 부조화를 가져왔다. 모든 자연과 이웃과 부조화는 하나님과의 불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중동의 화약고는 폭팔 직전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만 화목을 이뤄(지켜)간다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향해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서 권면하기를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 "밭에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욥5:23)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과도 화친하게 하룻밤을 지냈다.(단6:22) 다른 사람들은 죽은 모피(毛皮) 코트를 입기를 소원하지만 다니엘은 산 호피(虎皮)를 입고 하루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야고보는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하나님과의 화목을 지켜 가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다 잃은 것이다. 하나님과 화해된 신앙의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모든 자들과도 당연히 화해를 누릴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하나님과 화해가 깨어진 사람은 집을 나간 탕자처럼 기진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만족이 없으며 불안할 것이다.[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440: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숨은 최초의 사람 아담도 마찬 가지였다.
인생의 성공 자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요 인생의 실패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자이다.
오늘 나는 누구와 화평 하려고 애쓰는가? "전도자, 권세자, 돈을 가진 자, 인기를 누리는 자(가수, 탤런트, 운동 선수, 배우)" 인가? 아무리 이런 사람들과 화친해 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근본적인 만족은 얻을 수 없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지속되는 화해만이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
신앙의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과의 관계는 긴장관계에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평화의 관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앙이 온전치 못하면 정 반대의 모습이 된다. 항상 누가 보는 가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사람은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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