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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한 복음의 여섯 번째 표적은 이미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3:3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선언 하셨듯이 태어나면서부터 땅에만 눈을 두고, 진정으로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육신의 눈은 떴으되 영혼의 시각장애자들이 된 인류를 향한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육신의 빛은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지만 영혼의 세계는 칠흑같이 어두워 한치의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신 귀중한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나중에 주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고 말씀 하셨다.
이 표적에서는 처음부터 목적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 시각장애자는 애당초 어두움에 익숙해져서 빛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 어두움의 사람으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상태이다. 그들은 날 때부터 소경들이다. 오늘 이 사건에 언급된 소경이 예수를 볼 수 없었듯이 날 때부터 영적으로 소경인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복음의 빛을 비추이지 않는 한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어두움의 상황을 통해 어두움에 도전해 오시는 주님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Ⅰ.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당하며 산 인생이었다.(1~2)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이나 대한민국이나 지체 부자유자는 다 죄 때문이라고 쉽게 말해 버린다. 이 사람은 불행하게도 나면서부터 이 광명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빛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가련한가?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많은 편견들조차도 이 불편한 인생을 계속 슬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실은 주님 없는 모든 인생이 영혼의 장애자라는 사실은 사람들은 모르고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소경 되었다는 것은 죄를 지을 경험조차 없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말이 궁한 나머지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제자들조차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라고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런 일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맹점은 신앙을 진실히 해도 가난하거나 어려운 일이 겹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죄 값을 치르는 것으로 오해하고, 반대로 경건하지 못해도 세상일들이 잘되고 자식이 잘되면 자신이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교만하기도 한다. 물론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의 형통은 반드시 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욥은 일찍이 이에 대하여 깨달은 사람이었다. “(7)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8)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11)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욥21:7~13)”
특히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상들이 강한 것을 보는데 경계되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인은 무엇을 보든지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 나면서 소경 된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죄 속에 사는 사람은 너나 없이 어느 것 하나 바로 보지 못한다. 그것은 서로가 다 눈뜬 소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이 소경을 찾으시는 주님을 보면서 “냉대와 거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바라고자는(계3:20) 것이고 오직 은혜와 사랑과 긍휼로 우리를 찾으시는 사랑을 외면치 말자는 것이다. 소경으로서 그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동정은 동전 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이 줄 수 없는 다른 무엇을 주고 계신다. 그것은 ”하찮은 것“ 있어도 되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1.불구를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3)
이 말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면 오해가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잘되고 형통할 때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어려워도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하면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그 사람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미래를 벌써 보고 계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2.주님의 눈에는 어떤 영혼도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죄인으로 났다고 멸시하고 죄인으로 취급당하던 이 사람을 찾으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주님의 관심이 되지 못하는 인생은 한사람도 없다. 주님은 오히려 지위와 부귀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는 자들보다 차라리 스스로의 삶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고침 받으려고 하는 인생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8)
주님의 눈에는 이 천하의 어떤 값진 것보다도 상처 입은 한 영혼을 귀하게 보시고 찾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마21:31b~32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3.그러나 복음의 빛이 있을 때만이 이 은혜는 받아 누릴 수 있다.(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요12:35~3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Ⅱ.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불구를 고치시는 분이시다.(6~7f)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또한 이 소경이 원해서 눈을 뜬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사악한 인간들의 반응과 관계없이 주님의 일하심이 나타나야 했으며 이것은 절대적 은혜인 것이다.
주님의 치료는 획일적이지 않으셨다. 그 수많은 기적의 치유 속에서 같은 방법은 거의 없으시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역사 하셨다. 주님은 인간의 경험 속에 깨달아지고 체득된 방법을 데이터로 가지실 필요가 없으셨다. 왜인가?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시는 창조의 방법을 쓰셔서 오늘도 또 다른 사람을 고치실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시는 방법을 우리 자신의 방법이 아니며 믿지 못하는 선입견을 버려야만 이 시각장애자에게 일어난 은혜의 역사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 자들에게 오늘도 은혜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이다.
Ⅲ.여기서도 어렵지만 순종이 빛을 보게 했다.(7b)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시각 장애의 설움, 그 고달프고 서러운 운명이 주님의 은혜의 역사에 의해서 한나절에 바뀌긴 했지만 거기에는 분명 장애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이 사람을 본다.
은혜란 우리편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 가치가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순종이 요구되고 있다. 장님의 형편에서 2Km나 되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 소경은 순종을 했고 그 결과 빛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순종이 있고서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나타났다.”
바리새인들에게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방법이지만 [10~11“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5“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26“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주님의 명령이 순종되고 거기에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복이 임했다.
특히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지기만 한다면 거기에는 영혼과 마음의 어두움이 사라져버리는 광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각자의 “실로암”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Ⅳ.진리의 증인이 되었다.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의 은총을 입으면 하나님의 사랑 받음을 증거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처음에 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주신 주님을 알지 못했지만 믿고 따르고자하는 간절함을 뒤에서 보게된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36~38)
바리새인들은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도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34)고 억지를 부린다. 사람이 변화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구원받은 사람의 고백이 여기 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25)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감격이야말로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기쁨이고 고백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회복된 시각장애자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절들에게 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1~33)
Ⅴ.결론.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흑암에 살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빛으로 나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 나오면 빛을 얻을 수 있어 어두움에 다니지 않을 것이며(요8:12) 그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마5:14-16) 나면서부터 상실된 시력을 인간은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인, 더듬거리며 땅의 것에 안주하려는 당달봉사인 소경들에게 참 빛인 밝은 소망 천국을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만이 가능한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장님이 되는 그런 사건이 필요한 것이다. 소경 된 자의 눈을 밝게 한 표적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진 어느 표적보다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이외 어떤 사람도 행하지 못하는 표적이었으며 이로써 우리 주님의 하나님 되심의 권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들의 세계의 빛이 되실 것이다.
오늘도 우리 각자는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야 한다. “실로암” 그곳에 우리의 어둠을 온전히 거둬버리는 은혜의 약속이 있다. 그곳에서 어두운 이 역사가운데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각자의 마음에 비취심을 얻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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