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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계 2:1~7 2002-12-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교회의 역사는 약 2천년이 다 되어가고 이 역사 속에서 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으며 어떤 교회들은 다만 유적으로만 존재하는 교회(대개 유럽의 웅장한 성당들이나 성서의 땅의 교회들)가 있는가 하면 그럼에도 처음의 교회 속에서 증거 되었던 말씀은 오늘도 능력으로 역사 되고 있다. 요한 계시록은 오늘의 현실 교회의 진단이 되는 동시에 미래의 영원 세계의 교회를 미리 본다고 하는 데서 귀중한 시금석이다.

한 개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살다간 자리는 유난히도 넓어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의 흔적은 참으로 초라하기까지 하다. 공통점이 있다면 교회이건 사람이건 그 영역과 영향력은 보이는 외형적 모습보다는 언제나 가진 생각의 차이이고 더 중심적인 힘은 분명히 신앙에서 기인하는 것을 보게된다.

우리는 또 한해를 접고 새해를 기대하면서, 50년의 역사를 넘어 이제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지천명(知天命)의 때를 지내면서 우리 교회와 우리 각자의 믿음을 비교 점검하고 미래에 이 에베소 교회처럼 폐허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가장 정확한 시금석은 이 모든 역사와 그 속의 모든 교회의 대표 격인 소아시아의 7교회보다 확실할 기준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1세기말부터 2천년의 세월 속에서 언제나 분명하게 우리의 상황과 거기에 따르는 미래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계시록을 환난 가운데서 요한 사도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다고 확신해도 그르지 않을 것이다.

이 7교회가 모두 우리 교회의 모습일 수도 있고 또 이 7교회 가운데 우리 교회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바로 찾아내는 데 있다. 이 부분의 말씀이 어떤 경우에는 이 에베소 교회의 내면적인 모습에 비유되듯이 진리와 거짓을 구분함에 있어 아프고 수치스러울 수도 있고 듣기에 고역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잃지 않기 위한 도전이므로 성령과 더불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계시록의 7교회의 말씀들은 더러 들었을 것이다.[외우기 ①에②서③버④두⑤사⑥빌⑦라 - ②서,⑥빌→칭찬; ⑤사,⑦라→책망; ①에,③버,④두→칭책]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를 거쳐서 에베소에 이르렀고 특히 3차 전도여행 때(AD 54~59)에 삼 년간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가르쳤고(행19장) 나중에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청하는 것을 보면(행20:17~38) 이미 교회가 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연이어 디모데, 아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이 곳에서 교회를 섬겼고 말년에 이 계시록을 쓰고 있는 요한이 1세기말까지 있었던 것으로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은 전하고 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아데미 신전의 은장색이 선동한 소동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대단히 웅장한 아데미 신전(대리석 기둥이 120개)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황제 숭배의 중심지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육신적(肉身的)으로는 힘겨웠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이교도들 사이에서 수고와 연단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유지해 왔고 거짓 신앙의 지도자를 분별하면서 이단적 요소들을 구분해 내는 신앙적인 면에서 건전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었다.

Ⅰ.모든 것을 정확하게 아시는 주님이시다.(1~3)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1.생(生)과 사(死)의 주권(主權)을 가지신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다.(1)

에베소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교회의 생명의 원인이 되는 주권자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1b)

교회의 생명력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 곧 촛대이다. 그 빛 아래서 믿음을 은혜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희생의 십자가의 제사로 절망의 인생들에게 구원의 빛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 교회의 이유이고 근원이시며 머리이다.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인 생명의 원인인 분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권능의 오른 손에 들고 나타나신다.

2.알고 아노라!(2~3)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내가 네 ①행위와 ②수고와 네 ③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④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⑤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우리 주님은 우리 교회의 형편을 아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시다. 주님께서는 먼저 칭찬하시는 주님이시다.

신앙의 기본적인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신다.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신약 성경에서 상당히 익숙한 신앙의 모습들이다.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이해할 수 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산전1:3)

(1)행위를 아신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시139:2) 나의 모든 과거를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시69:5)

(2)수고를 아신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롬16:12)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8:3)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주님은 게으르지 아니 한 것도 아신다. 즉 주님을 위해 품은 열심을 아신다.

(3)인내와 참음과 견딤을 아신다. 신앙의 정절로 성숙한 신앙의 사람에게 가능한 덕목이다. 많은 위협과 핍박에서도 에베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켰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4)눈물과 곤란을 아신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시31:7)

(5)생각과 뜻을 아신다.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2:25)

(6)나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님이시다. “…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44:21)

(7)나의 미래를 아신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그러나 잘한 것들만 아시고 칭찬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를 책망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너희들이 죽을 자리에 머무는 것을 결코 나는 원치 않는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실 죄진 인생을 그대로 버려 두면 죽고 말 것이지만 회개시키시기를 바라셔서 책망하시고 일깨우신다.

Ⅱ.회개를 요청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뵙는다.(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진리를 지켜오면서 역사를 가진 교회들이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점이다. 많은 칭찬의 이유에서도 잘못은 있다. 그러므로 교만 할 수 없고 경성 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 말세를 말씀하시면서 경계하시기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0~12)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바 있다.

에베소 교회는 주변의 이교도적 핍박과 유대인들의 간계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결속했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들을 사도행전 19~20장에서 더러 보인다. 그러나 신앙의 거짓된 부분들을 도려내고 순교적 정절을 지키는 곳에서 형제애 적인 부분들이 소멸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1.가장 귀중한 하나를 잃은 것이 모든 것을 다 잃게 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 무엇보다도 교회의 생명력은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역시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즉,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이다. 지금 요한 사도를 통해서 지적하고 있는 처음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기보다는 형제 사랑으로 이해함이 오를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는 이유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3)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명백한 것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은 인간 사랑의 결여라고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사랑의 영적인 바탕 위에 사람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신앙적인 순결이 중요한 것같이 형제와 죄인까지도 사랑하는 윤리적인 면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참 모습을 가졌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2.회개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Ⅲ.형벌을 미리 알려 주신다.(5b~7)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교회의 근본적인 본질을 잃어버리면 형벌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미리 알려 주심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하시는 것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겔18:31~32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책망 중에서도 칭찬을 잊지 않으시는 사랑을 확인한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함께 싫어하는 것은 주님과 가까운 마음이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

Ⅳ.결론.(7)

에베소 교회의 설립이 AD 54~59경이고 요한 사도가 이 계시록을 쓰고 있는 시기를 1세기말로 볼 때 에베소 교회는 거의 반세기의 역사를 가졌다고 보고 오늘 우리 교회와 비슷한 연조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김관평 전도자와 개척이 되어 못 먹으면서도 서로의 고통과 가난을 나눠지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우리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을 바꾸려는 시도도 어쨌거나 잘 견뎌왔고 기라성 같은 기성 교회들 틈에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가 신앙이 바뀌었지만 신앙의 지조를 지켜 온 것도 사실이고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두 번의 교회의 큰 시련은 형제간의 신뢰가 많이 소멸되고 흩어지고 나눠지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1세대의 신앙인들은 점점 이 세상을 떠나고 삶의 처소를 옮겨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나 신앙적 기반은 바르게 가지면서도 처음 교회의 아기자기한 형제애라든가 죄인을 불상히 여기고 사랑하는 윤리적인 면에서 책망 받을 만한 위치에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사람의 책망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두려운 경계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지조만큼 이제는 실천적인 면에서 회복 시켜가야 하나님 앞에 은혜를 계속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회개에는 엄청난 영광을 양속 하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람 사랑을 점검하고 새롭게 서서 영육간에 구원의 감격과 형제애로 느끼는 사랑의 끈끈함과 열심을 회복해 가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