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종배 전도자
계 2:8~11 2002-12-29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소아시아의 빛나는 도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풍요하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유명한 외향적인 위치에 있었던 메트로폴리스라는 칭호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신앙하는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힘겹고 어려운 삶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 1~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났고 가난하고 굶주리며 투옥되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이고 사납고 굶주린 짐승들 앞에 던져지거나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믿음의 담대함을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오늘 우리 자신들의 안일함에 견주어 보면 참으로 부끄럽기까지 하다. 과연 오늘의 시대에 같은 운명에 놓인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믿음을 지킬 사람이 얼마나 될지 염려가 된다. 혹은 “그때하고 오늘은 시대가 다르지 않느냐?”고 질문할 지 모르지만 분명히 같은 주님이고 같은 믿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이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의 신앙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로 전달되어져 오고 있다. 이 곳에 언제 교회가 세워졌는가는 정확하게 기록에는 없지만 역시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 머문 시기라고 추정되는데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10)는 기록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 시기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라델피아 교회와 더불어 칭찬만을 들은 교회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 교회들의 귀감이 되는 교회이고 우리의 믿음도 이러한 신앙을 본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Ⅰ.주님께는 목숨을 바쳐도 결코 손해가 아닌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다.(8, 11)

(8)“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17b~18에서 “ …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라고 요한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

1.주님께는 시간을 셀 필요가 없다.

“처음이요 나중”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과 ‘알파와 오매가’라고도 불리우는 주님의 별칭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선언과 함께 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시작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하신 이 우주와 시간과 자연과 만물의 시작이시면서 또 시간과 역사를 닫으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각 사람을 향하여 “나는 너의 시작과 지금 형편과 너의 마지막을 이미 현재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는 과거도 시간도 늙음도 젊음도 없이 오직 지금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2.죽음을 맛보신 자다.

그러나 죄 아래 나서 시간의 구속을 받고 늙어 죽을 인생의 비극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역사 속에 우리와 꼭 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의 죄와 사망의 고통을 친히 맛보신 분이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그래서 우리의 가련한 운명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아시는 분이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5:6)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

3.영원히 왕으로 살아 계신 분이시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10:6)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11:15)

바로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아버지이시다.



Ⅱ.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우리와 다름을 깨닫는다.(9~10f)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1.신앙의 기준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말씀하신 것과 정 반대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서머나 교회의 형편은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행복이 아니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살고, 신앙에 훼방을 받고, 장차 받을 고난이 기다리고 있고, 옥에 던져 시험을 받고, 환난을 받을 운명에 있는 것이 어찌 복인가?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복이라는 말씀이다.

(1)사람의 생명이 소유에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16~20)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

(2)연보도 재산이 많아야 많이 하는 것이 아님을 바울 사도는 증거 했다.

물론 가진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8:1~4)

2.신앙은 언제나 좁은 길임을 가르친다. 칭찬 받고 있는 이 교회는 과거에서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에까지도 환난과 궁핍과 시험과 고난이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표준 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평안한 것이 복이고 우리는 그렇게 평가한다. 평안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7:5) 고 고백한 바 있다.

(1)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부요를 위해서 살 수 있어야 비로소 하늘의 사람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 보실 때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안될 것이다.

(2)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했는데 같은 칭찬을 받은 필라델피아 교회에서도 이들의 거짓된 역할은 나타나고 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두 군데 공통적안 것은 “자칭(自稱)” “유대인”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사단의 회”라는 것이고 그들은 한결 같이 칭찬 듣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훼방하고 거짓말하고 괴롭히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날도 그리고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바르게 신앙을 하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짓된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거짓 백성들에게 기죽고 서러움을 당하고 협박을 당할 수 있음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3.믿음 생활은 계속되는 싸움(도전)이다. 시험은 어느 시대에나 의롭게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따라 다닌다. 환난과 궁핍 중에서도 하나님께는 물질과 충성을 풍성히 드리고 거짓과 싸우는 전쟁은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에는 분명한 보증이 주어지고 있다. 383:1.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아멘-



Ⅲ.참된 충성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10, 11)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충성이 어디에서부터 해야 하는 가를 말씀하신다.

우리는 대개 이 말씀의 끝 부분만을 인용함으로서 의미를 약화시키고 마는 경우가 많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나 진정한 충성(忠誠)은 환란 가운데서 드리는 충성이다.

주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은 순간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동안 에녹처럼 충성하는 것이고 죽도록 힘을 다해서 하는 충성이고 죽을 때까지 하는 충성이다.

1.진정한 신앙의 사람들에게 고난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김의 대상이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주님께 충성으로 인한 고난은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반드시 감당하려고만 하면 이기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2:18)

2.이 땅에서 짧은 고난은 영원 속에서 고난을 대신 한다.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이 땅에서의 교회는 불의와 거짓과 타협치 않고 진리를 지켜가려고만 하면 반드시 고난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난은 주님께서 함께 감당하시므로 짧게 느껴지고 영원한 영광이 약속되어지고 있다.

3.환난 가운데서 충성이 참된 충성이다.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평안하고 넉넉할 때는 누구나 충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환난 당할 때도 어려울 때도 힘겨울 때도 충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편안할 때 충성치 못한다면 어떻게 환난 중에 충성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편안하게 신앙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충성을 훈련해야 한다.

4.참된 충성에는 영광의 약속이 보장되고 있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은 결코 사망의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신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20:6)

이긴다는 표현은 싸움에서나 경기에서만 쓰이는 표현이다. 신앙은 언제나 조용한 고요가 아니라 경기이고 싸움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고 시들지 않는 영광이 약속되고 있다.



Ⅳ.결론.

우리 자신들의 안일을 회개해야 할 것이다. 서머나 교회는 순교의 교회, 아벨 형식의 교회이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나 세상의 평가에 민감한 대신 늘 주님의 평가를 염두 해 두고 믿음생활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가난한 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주님을 위해 쓰고 썩지 않을 영원을 받는 하늘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많은 거짓된 자신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마음에 품고 편안한 가운데서부터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연습(세상과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하늘을 위해서 쓰는)하는 하늘을 향해 가는 천로역정의 삶을 우리 모두 감당하는 하늘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