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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시는 주님의 모습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가지고 나타나신다.(히4:12) 그것은 썩어서 곪고 있는 부분을 해부하시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다 썩은 것이 아니었고 아주 적은 부분만이 상아여 있었다. 믿는 것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능한 행동이다. 이미 천상에 생명을 담보해 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이다.
이러한 순교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일면에는 자신의 안일과 무사를 위하여 신앙을 이용하는 사악한 무리들도 있었던 교회였다. 생명보다는 물질이 가치 있게 여겨지고 종교를 빙자해서 육신의 평안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믿음생활이라면 버가모 교회가 그 원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21일세기 안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발람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는 현실에 주님께서 오신다면 같은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Ⅰ.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를 칭찬하고 계시다.(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사탄의 중심지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위, 헬 thronos] '국가의 권좌(보좌), 함축적으로 권세, 군주, 보좌, 권세의 자리' 라는 의미를 가진다. 당시의 버가모에는 ‘뱀’의 신인 Aesculapius 신과 Zeus 주신, Athene 라는 승리의 신, Dionysos 신을 수호신으로 믿고 황제 숭배와 더불어 가히 미신의 본거지라고 불릴 만큼 강압적인 우상 숭배가 강요되는 사탄의 권세 가운데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 날 우리 대한민국 교회는 아무도 이와 같은 형편에 있는 교회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인 신앙을 게을리 하는 것에 핑계치 못할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고(내 이름을 굳게 잡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칭찬 받고 있다.
2.충성된 증거자가 순교를 당하는 형편에서도 믿음을 지켰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위와 같은 미신적 요소가 많은 곳에서는 신앙의 경건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육신적인 형통이 그 사람의 신앙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저토록 열심인데 왜 저렇게 고통을 당할까?” 라는 미신적인 성향이 교회를 지배할 수도 있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깊은 믿음만이 가능할 것이다.
①충성된 증인이 있었다. ②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③그러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Ⅱ.두어가지 책망 받을 이유.(14~15)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몇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결코 다 잘못하지 않은 두어가지 책망이 버가모 교회에는 패배의 원인으로 경계되어지고 있다.
믿음의 생활에는 완벽하기 어렵고 어떤 일은 선한 의도로 하려고 하는 것들도 일의 주변에는 어려움과 실수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①능히 대적하고 ②모든 일을 행한 후에 ③서기 위함이라”(엡6:13)는 당부의 말씀을 주고 있다. 늘 모든 일을 행한 후②에도 자신이 경건하게 서기 위해③서는 하나님의 의를 입고 있을 필요가 있다. 어떤 일들이 인간적인 수완과 방법을 동원하기까지 이르면 책망 받을 수 있는 모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의 경계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가지고 일해야할 경계를 가지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계속 되는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 더 큰 위로를 필요로 하고 위로되는 말씀을 찾다보면 이단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2.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는 것이 책망의 이유였다.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언제나 신앙의 문제는 외부의 대항해 오는 어려움보다는 안에서 생긴다. 여기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 당의 교훈은 성경 속에서, 혹은 교회역사에서 생겨난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버가모 교회가 책망 받는 문제도 외적과는 싸워서 이기고 있지만 문제는 안에서 가르쳐진 잘못된 교훈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어도 온전치 못하다.
여기 “교훈(didache)”은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디다케라고 하는 가르침은 성경과 더불어 후대에 교훈집이라는 책으로 쓰여질 정도로 있어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도들의 교훈집이 아닌 발람과 니골라의 가르침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신앙적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야 하지만 구원의 가르침인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교훈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를 벗어나게 하는 경계를 이 말씀은 주고 있는 것이다.
3.발람과 리골라당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1)발람의 교훈. 발람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탐욕의 상징”이라고 이해된다. 즉 자신의 이득만을 위하여 수완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잘못된 신앙의 형태를 경계하는 것이다. ①누가 시키든지 관계없이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 아닐지라도 괘념치 않고 감행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실 지라도 나 개인의 안녕과 무사를 위해서 어떤 것을 하는 것이다.(신구간에 마무가지)
②무엇을 시키든 하는 것이다. 의롭고 복 받은 사람일지라도 나의 행복을 위하여는 저주를 서슴지 않는, 누구를 저주하는 일까지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이득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巫俗的인 생각이다. 꼭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잘못된 기복적 신앙이요 무속적 신앙이 바로 니골라 당의 교훈이다.(running machine-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삼 년 고개의 노인)
③반드시 형벌 받을 교훈이다.자신의 풍요와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주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히려 축복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고용하려 했던 발락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민24:10~11) 그리고 비참한 죽임을 당한다.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31:8)
(2)니골라당의 교훈. “니골라 (헬 Nikolaies, 또는 Nikolaos) = (헬 nikos, 이김, 정복)+(헬 laos, 백성)” '백성에게 승리는 거두는'
결국 두 교훈을 하나님께서는 같이 취급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일세기의 니골라 당의 가르침이 전승되어 오는 기록들을 보면 ①영지주의와 비슷한 내용으로 육신은 악이지만 영만은 선하므로 육신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②율법의 시기는 지났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 ③그리스도인은 보호를 입고 있으므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해 받음이 없다. 는 등등이었다.
결국 그 뜻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잘못된 교훈으로 정복하고 지배하는 하나님 앞에 무서운 형벌 받을 교훈들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백성처럼 지배하고 군림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가르침으로 대치하는 잘못된 지도자와 그 수하에서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니골라당이다.
Ⅲ.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대적이 되시겠다고 하신다.(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주님의 진리에 순종하고 구원을 감격하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익과 권위로 사람들을 탈취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대적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이 같은 선언을 하셨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삼상28:16)
하나님께서 나의 보호자라는 사실은 큰 안전과 감격이지만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이유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렘50:31)
행여라도 대적의 편에 가담될 가능성이 있다면 속히 회개하는 것만이 영원한 형벌을 벗을 수 있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회개를 기다리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죄가 있어서 대적이 되는 것 못지 않게 회개치 않으므로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Ⅳ.이기는 자의 보상은 세상의 가치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①이기는 자에게만 영광과 승리의 약속이 주어진다. 세상을 이기는 자, 하나님의 능력으로이기는 자.
②감추었던 만나를 주겠다.
③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
흰 것은 승리의 상징이며 천국 백성의 옷으로 나타난다. 흰 옷, 흰 말, 흰 보좌 등등이다.
새 것 역시 천국의 별명이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노래, 새 예루살렘 등등.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신앙은 하나님과 나 자신 속에서 체험되어지는 감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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