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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을 받고 하나님께 온 자들이다. 그러나 좀 지나는 동안 우리의 짐을 져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시련과 고통을 안고 고민하게 되는 무감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약속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유효한 약속이요, 주님을 의지하고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음 중에 복음이다.
Ⅰ.주님의 사랑의 초청이시다.(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으로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쉼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이권에 의해서 타협하는 간교한 세상의 권세자의 부름이 아니다.
왕 중의 왕, 즉 세상의 권세를 친히 잡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청이다.
모든 문제는 다만 주님께로 가져가야 한다.
세상(사람, 돈, 권력)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안으로 초청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고백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십자에 달린 예수 그 모습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재적인 모습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그러나 이 초청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호11:2)
Ⅱ.어떤 사람을 초청하시는가?(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보다 낳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문제를 갖지 않은 사람들만 초청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나와서 문제를 일으킬까봐 조심한다. "그 사람은 오라고 하지 말자!" 그러나 우리를 초청하시는 주님은 오히려 문제를 가진 자들만 초청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막2: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왔노라 하시니라"(마9:13; 눅5:32)
우리 모습이 어떠해도 상관없다. 어떤 문제이든지 괘념치 않으신다. 다만 무슨 문제이든지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기만 하면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용서하시고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Ⅲ.그러나 조건이 있는 초청이다.(29)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우리는 주님의 이 초청이 세상의 것을 벗고 하나님의 것을 입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를 벗고 하나를 벗으면 같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믿음으로 응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짐은 참으로 지기 편안한 짐이다.(멜빵이 좁은 지게와 넓은 지게도 같은 짐을 지는데 커다란 차이가 있다.) 팔레스탄인의 멍에는 겨리해서 함께 찌는 멍에로 주님께서 나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친히 함께 wu 주신다는 의미다.
또 짐을 지는데 훈련된 사람은 짐을 더 잘 질 수 있다. 주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약속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30) 주님께서는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8)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이 조건은 사실 조건도 아니다. 참으로 '거저먹기'요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온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나와 여러분들에게다.
Ⅳ.어린 아이 같은 단순한 사람들이 응할 수 있다.(25)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도 어린아이들을 칭찬하셨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하기야 요즈음에는 이 비유조차도 적절치 못한 때가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오라 하시면 앞 뒤 헤아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단순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제는 주님께 나아가도 소용없을 거야!" 지래 머리를 굴리고 따져보고 저리 계산해 보고 괜찮겠다. 싶어야 비로소 "주님 제가 이것을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데 역시 합당치 않다.
우리는 질병이 들었을 때도 히스기야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자신 없이 기도하게 된다. 사38:2~3"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왕하20:2~3)
아무리 생각해 봐도 히스기야 처럼 잘 했던 것이 기억에 없어서 죄송스러워 한다. 그러나 새로운 언약 속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초청하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제부터 주님의 가벼운 짐을 잘 감당하면 주님은 기뻐하신다.
주님께서 "그래 여태껏 나에게 잘한 것이 있는 사람은 내게로 오라!" 했다면 모르지만 단순히 영혼과 마음에 짐이 있는 자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던지 불문에 붙이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6) 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잔머리 잘 굴리고 잘 처신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단순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최고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라는 말씀이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318:1]
받아드리는 데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것이 최고이지만 물론 이 약속을 누리는 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장성한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Ⅴ.이 초청은 지속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으로 주님을 믿게된 처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도할 때 쓰고 마는 관용구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고난이 없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29b) 어떤 경우이든지 우리 마음이 쉼을 누리고 있는가? 이것은 분명히 세상의 흐름이나 변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절대적인 평안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강물같이 흐르는 내적인 평안, 가슴에서부터 흘러 넘치는 평화의 약속을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39)
그 은혜의 능력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단언하기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오늘도 남모르는 고통과 육신과 영혼의 짐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계속 짊어지고 있는 필요가 없다. 우리의 죄의 짐을 해결하시고 고통을 처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이 밤 같은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를 지셨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분명한 빛을 주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9~30)
이것은 분명한 신앙인의 삶의 비결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절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산다면 어떤 경우에도 나의 고난이나 손해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된다. 이것이 빛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의 확신이다. 이러한 약속의 빛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근심과 걱정의 어두움은 감히 틈타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의 영광에 흠 잡힐 일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 말씀이 이 아침에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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