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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요 8:31~37 2003-02-23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는 자유라는 말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유를 자기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든가 방종 하는 정도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과는 반대로 스스로 많은 것들의 종이 되어 얽매인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니 자유인인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자유인인가? 육체적으로 어떤 것에 매이거나 속박(束縛)되지 않은 것만으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확신해도 되는가?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어떤 것에 인가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부자유한 것으로 느끼지 않는데 자신은 불편을 느끼는 부자유가 있다. “나는 우리 아버님(어머님) 대문에 무엇도 하지 못한다”라든가 “저 놈의 자식 때문에 내 일생을 다 잃고 흰머리가 다 나버렸다”는 푸념과 같은 것들이다.(양상용)

분명히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병이 되어버린 복두쟁이(신라민화-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의 이야기는 자유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고, 공산치하에서 당의 노예로 서로를 감시하며 사는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질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 돈을 쓰는 것으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욕구를 그런 방향으로 분출시키려는 낭비벽에 잡혀 있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막연한 박탈 감이나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서 가진 자들을 증오하는 불편에 잡혀 있다. 그러므로 가졌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막힘 없이 편리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자유인은 아니며 궁핍함으로 물질에 매여 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마음은 또 다른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을 본다.

지식을 가진 자들은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고 문명을 편하게 누리는 것 같으나 짐짓 교만에 사로잡히고 지식을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들은 또 다른 불편을 겪으면서 배우지 못한 한을 가지고 살므로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나 무슨 이념들의 노예가 되어서 청춘을 다 살라 버리고 이념의 희생물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도 이 발달된 지식 사회 속에서 더러 보이는 현상들이다. 이렇게 볼 때 과연 보이는 것이든지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삶 속에서 어떤 것에도 붙잡히지 않는 자유인은 없다고 보인다. 여기 자유에 관해서 나누고 있는 이 자리의 여러분들은 어떤가?

성경은 아담이후의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유를 잃어버린 존재들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우리가 분명히 세상 속에서 상대적으로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영혼의 자유까지를 가진 존재는 아님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다.

Ⅰ.사람들은 모두 종노릇하고 있다.(31~33)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종교 생활을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최고의 종교를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조차도 결코 자유하지 못했음을 본문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1~32) 이 말씀 자체가 자유를 잃어버린 것을 전제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 되어 사는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귀중함을 모르고 종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오히려 자신의 잃어버린 자유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역성을 내는 모습을 본문에서도 본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33)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유 하는 사람에게 났다는 것 자체가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니다. 분명 아브라함은 자유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를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고 계시지만 저들은 애써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사실 가장 치명적이고 맹목적인 종노릇은 잘못된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가 현실을 극복하고 영원을 약속 받는 것이긴 하지만 맹목적인 종교는 현실과 내세를 모두 빼앗아 버리고 만들어진 계율에만 복종시키는 가장 무서운 자유 도둑이다. 우리가 신앙하는 것이 바르지 못하면 더욱 힘겹고 고역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앙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를 바라는 것임에도 사람이 만든 종교는 사람을 그렇게 무능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자유하지 못 하는가? 왜 종노릇하는가? 왜 자유가 제한되는가?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2:19)

로마서 6:16에서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죽음의 종이 되어 있다.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으로 부자유한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종노릇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죽음에 종노릇에서 자유 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5) 본래적으로는 삶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은 지어졌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죽음의 통로를 말하고 있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나 모든 생물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것이지만 본래부터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또 사람이 이 자연 가운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힘겨워 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면해 보려고 다른 사람들을 함께 이 죽으로 대리고 가고자 한다. 그러나 영원에 대한 약속을 가진 자들에게 이 죽음은 부자유하게 만날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단순한 통로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한다. 그러므로 생명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오늘 나는 어떤가?

2.명예의 종이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허세를 부리고 헛기침을 하며 맞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다 자유스럽지 못하다.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명예는 자식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한다. 그것이 자녀들을 혹독한 과외로만 몰아 세운다. (너는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명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순간의 명예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을 본다.

3.돈(경재)의 종으로 일생을 산다. 가장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고 일그러지게 만든다. 돈은 우리 생활에나 하나님의 사업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은 재산이라도 내 자신이 돈을 부려야지 돈에 부림을 당해서는 안 된다. 많이 가졌어도 그것을 자신이 사용하고 부릴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고 당당하다. 무엇보다도 그 재물을 주신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4.관계의 종이 되어 있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힘들어한다. 부부관계, 부자관계, 친구관계, 노사관계, 군주관계, 관계를 잘 해 보려고 애쓰긴 하지만 많은 것들이 관계를 깨뜨리고 힘겹게 만든다. 올바르고 좋은 관계는 우리를 유쾌하게 하고 편하게 하지만 불편한 관계는 인생을 힘겹게 만든다. 사실적인 관계만 남고 관계의 의미를 잃어버린 힘겨운 관계들이 우리시대에 너무 많다. 그래서 카네기 같은 사람은 “인간 처세술” 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이 한 때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때도 있었다. 우리는 관계의 종에서 자유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힘겨워 하는 인생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관계 회복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종노릇은 무엇 때문인가?

Ⅱ.자유를 잃은 것은 죄와 관련되어 있다.(34~35, 3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34~35)

죄는 어두움과 거짓과 연결되고 이것에 종노릇하는 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자유를 잃어버린 삶을 살게 되어 있다. 이런 입장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자유를 잃어버린 모든 인류를 향한 안타까운 탄식이다. 바울이 말하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는 죄에게 종노릇하는 모든 인류를 판단하는 귀중하고 단순한 기준이다. 오늘 본문 조금 뒤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44)고 지적을 하시는데, 사탄은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자유를 약속했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창조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네가 창조주와 같아져야 한다.” 그렇게 거짓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게 만든다. 오늘도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마귀의 거짓말은 “네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귀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참된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진리의 주님을 거역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37)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 강요에 의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의 절정이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8)

그러므로 자유 하는 자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는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6~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Ⅲ.참된 자유는 사람 스스로가 찾을 수 없는 것이다.(32, 36)

모든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죄로 인하여 당연한 자유를 잃어버리고 죄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얽매여 있고, 좋아야 될 모든 관계들조차도 부자유스런 관계가 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자연도 더 이상 인간과 조화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서로를 마음대로 표현하고 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때로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창조주와의 관계도 일그러져서 언제나 마음대로 기쁘게 자유스럽게 만나는 관계가 더 이상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유를 부자유로 바꿔버린 죄의 사슬을 끊지 않고서는 자유는 이름뿐이고 제한적인 자유가 될 뿐이고 이러한 근본적인 죄의 문제는 죄인 스스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자유를 찾아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피를 흘리신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어떤 대상에게도 이길 수 없다. 사망과 저주를 친히 자신의 생명으로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을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자유는 진리(진실)와 관련되고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2) 진리를 아는 것은 인간이 자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자유)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하나뿐인 통로이고 바로 인간을 죄로부터 끌러 놓을 수 있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2.자유는 희생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36) 모든 포로 된 자들은 스스로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없다. 어떤 능력에 의해서 감옥 문을 열어줘야만 비로소 자유 할 수 있다. 모든 인류는 죄와 절망과 죽음의 감옥 속에 갇혀있고 자신의 피 흘리심으로 죄와 음부의 영원한 저주의 지옥문을 여신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참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3.우리는 자유(진리)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우리는 이 세상과 영원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은혜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다시 옛 관습과 죄의 습관에 다시 얽매이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고 당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Ⅳ.신앙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36)는 주님의 약속은 적어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많은 것들에 묶여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한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1.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려고 불편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의 눈길로부터도 … 유행으로부터도 … 관습으로부터도 … 관계에 있어서도 …

믿음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11:38)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치 못하면 세상을 감당치 못하고 넘어진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2.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각은 죄와 미움의 습성으로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에 좌우되는 사람 역시 자유인이라고 할 수 없다. 누가 무어라 하든 진리의 말씀에 바로 서서 하나님보시기에 옳으면 OK하는 삶이어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3.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사실 자신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걸러버리는 부자유(不自由)로 진리를 놓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신앙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잘 처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자신이 장애가 되어서는 올바르지 못한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 앞에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의 사람이다.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는; 자유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지하여 사는 믿음의 사람들만이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살 수 있다. 자유는 생명과 관련되고 사랑과 관련된다. 자유 하는 사람만이 산 사람이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요, 천국의 사람이요 영원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다. 진정한 자유의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또 그런 사람만이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주님을 불러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면, 찬양하는 것이 부끄럽다면, 교회 오는 것이 짐스럽다면 다른 교우들과의 교제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교회가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잘못된 신앙 때문이고 이것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부자유의 모습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왕에 허락한 것이요 십자가를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두가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진정한 자유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