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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들이 물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기본이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고 할렐루야, 아멘 이지만 그 다음 정도가 은혜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신앙을 잘 하는 사람들일수록 “은혜” 라는 말을 자주 말하는 것을 듣는다. 여러분들은 과연 이 은혜라는 은혜로운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삶 자체가 은혜이고 웃는 것도 은혜고 우는 것도 은혜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은혜일 뿐이다. 여기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여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가만 따지고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다. 그 은혜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히 부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로마서 5:5에서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시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은혜라는 말이 때로는 입술에서 그치고 삶에서는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은혜 되지 못한다. 우리 믿음에 사는 사람들이 은혜 안에 거할 때 세상 사람들이 그 소망스러운 삶에 의문을 가지고 접근해 와서 묻고 함께 은혜를 누리는 구원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은혜 받은 사람은 분명 은혜 받은 삶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변에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 되지 못한다.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은혜를 헛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고후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의 시대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은혜 받을 때라는 말씀이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넘치도록 누리고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빈다.
Ⅰ.은혜란 무엇인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5b);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7m);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8f)”
은혜는 희랍어로 [헬 charis; loveliness, graciousness, grace, 은혜, 호의, 선물, 매력, 너그러움, 기쁨, 감사함] 등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가장 아름다운 뜻을 가지는 낱말이면서 [헬 chara; 유쾌함, 기쁨]이나 [헬 charisma; 선물, 은사] 말들과 어근을 같이 하는 단어이다.
1.자격 없는 받는 것이다.(4~5f)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본래 로마의 군대에서 전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졸병(卒兵)에게 높은 계급의 장군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선물을 준 것에서 유래하여 스스로의 힘이나 능력으로 전혀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죄의 수렁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일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는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11:6)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은혜 받은 대로가 분명하다. 구약의 은혜의 모형은 모세다. 나일강에 악어 밥이 되어야 마땅한 모세를 하나님은 궁중에서 왕자로 자라게 하셨다. 그래서 모세는 나중에 이 은혜를 깨닫고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고 적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바울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핍박하던 사울을(원수를) 주님은 자신의 가장 귀중한 일꾼으로 써 주신 것이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바울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한 은혜의 받은 자였다.
2.받은 자의 삶이 있다.(7, 10)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7)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
본래 거칠고 반항적이며 야만적이고 불만 투성이의 사람이 은혜를 얻으면 너그럽고, 감사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은혜의 특색이다. 이것이 회개한 삶이요 180° 뒤바뀐 삶이다. 은혜는 사람을 부드럽게 만든다. 사람의 감정대로 대하려다가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만 죽을 수밖에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도 겸손한 자가 더 받는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주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하셨는데 하나님은 헤아리지 않고 은혜를 부어 주셨는데 나는 하나하나 따져가며 갚으려고 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적하시는 것이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은혜 받은 자 다운 삶을 감당하는 은혜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빈다.
우리는 좀더 구체적으로 오늘 우리 각자가 받은 은혜들을 헤아리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렸으면 한다.
Ⅱ.베들레헴에 베풀어진 은혜.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으시는 육체나 형상을 갖지 않으시는 하나님, 교통 수단이나 기간을 계산하실 필요가 없으신 무한한 자유의 주님께서 친히 자신을 제어하는 짐승의 우리간에 짐승 같은 우리 인간의 먹이가 되시기 위하여 구유에 나신 것 자체가 무한한 자비요 긍휼과 사랑이다.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빌2:6~8)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것은 작은 질병에 걸려서 얼마동안 병실에 입원하고 있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난리다. 그러나 주님은 33년이 넘는 기간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나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스스로를 죄와 사망의 굴레 속으로 친히 들어오셔서 육체에 묶이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자유를 얻어 이렇게 유쾌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이 사실이 실감이 나는가?
Ⅲ.골고다에 쏟아주신 넘치는 은혜.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b)
1.나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 자체가 죽기 위해서 그것도 제물로 피 흘리시기 위해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잔치에 쓰기 위해서 돼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잘먹고, 잘 크고, 살이 많이 찌기를 바라면서도 죽이기 위해서 키우는 돼지가 동물이라도 어째 안됐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주님은 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이시고 천사들과 삼라 만상들로부터 영원히,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나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온 갓 수치와 모멸을 다 당하셨다. 내가 영원히 당해야 마땅한 형벌을 친히 지시고 피를 흘리셨다. 이것이야말로 은혜 가운데 은혜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2.짐승이 된 우리의 먹이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주님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이 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마치 유월절 저녁에 이스라엘이 환난과 역경의 땅을 빠져 나오기 전에 양을 잡아먹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고 살다가 죽을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혀서 생명을 주시려고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신 것이다. 주님께서 육신에 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3~57)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생명의 양식을 주의 만찬을 기념하고 말씀을 먹으면서 하늘을 향한 생명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Ⅳ.믿음을 선물로 주신 은혜.(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예정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에 불러들이시는 신비를 말씀하고 있다.
1.구원을 받을 수 있는 도구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가 죄인 된 인간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믿음이라는 도구로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도구가 우리 사람들에게는 없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부으시는 은혜를 나의 것으로 누리게 되는데 죄인 된 인간은 에덴이후 마귀에게 속고 나서부터는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없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약속에도 죄진 사람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조차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서 구원에 관한 한은 인간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전적인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9) 오늘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다. 믿는가?
2.그러므로 은혜의 절정은 구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다. 하나님은 어느 민족이건 이 은혜의 잔치에 초청하셨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11)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 오는 자들을 받으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5)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오늘 우리가 이 놀라운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미루시는 의도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인 구원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하시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 흘리심으로 마련하신 은혜의 잔치에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인 믿음을 받아 누리는 엄청난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시기를 바란다.
Ⅴ.믿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은혜.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셨음에도 우리 인간의 의지로는 그 구원을 주님의 날까지 지켜갈 힘이 없다. 이것이 알량한 우리네 믿음이다. 그래서 주님은 장치로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 받는 것에 대해서 혼란 하는 것 같다. 주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이보다 분명한 약속은 없다. 죄인 된 우리가 십자가에 나를 위하려 피 흘리신 주님과 그리고 삼일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주님과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성령을 거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사탄을 향하여서는 ‘이 사람은 내 것이다’ 라는 표시로 성령으로 도장을 찍으시고,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2, 5:5) 백성 된 각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의지보다는 옆에서 가르치시고 위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혜사로 주시고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고 약속하신 것이다. 모든 인종, 열방의 족속들이 꼭 같이 하나가 되는 방법이 바로 물 속의 세례이고 이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주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성령의 충만은 기도로 순종으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역시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인 침의 표로 성령이 내재해 계신다. 믿는가?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들을 때 재미있고 듣기 좋은 말씀을 듣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은혜 받았다!”고 말한다. 물론 말씀의 은혜는 그런 결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①은혜는 깨닫는 것이다. 죄인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나의 영원한 저주의 죽음을 해결하시고 믿음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셔서 오늘도 하늘의 소망을 바라고 이 죄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여 승리하며 살게 하시고 오늘도 예배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주의 만찬으로 기념하게 하시며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부족 한 입술로 기도하고 찬양하게 하시며 세상 속에서의 수고에 열매를 주셔서 연보 드리게 하는 모든 것이 은혜임을 감사할 수 있다. ②은혜는 섬기는 것이다. 우리 입술에서 고백되어 지는 은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말에서 그치고 은혜 받은 자의 삶이 되지 못하면 주님을 만홀이 여기는 것이 된다. 은혜 받은 자는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죄 투성이인 나를 절망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당연히 나를 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감격으로 섬기고 그의 사람들을 섬기며 아직도 은혜 아래 있지 못한 사람들을 복음으로 섬기는 교회와 세상에서 하나된 삶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우리 모두가 모자람이 없는 주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누리고 그 받은바 은혜로 은혜에 합당한 삶을 감당하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바울 사도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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