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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고후 7:1 2003-04-06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모든 사람은 약속을 가지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속의 종류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면서부터 평생을 약속의 관계로 지속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 평생을 함께 살 것을 약속한 부부의 관계가 그렇고(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마쳐지는 부부의 연(緣)을 약속하면서도 ‘永遠’이라는 시간과 함께 언약을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다.),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이 더 확실하고 영원한 약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에서 부모 자식간이나, 부부의 관계가 아닌 이 생과 내생의 약속을 받고 지켜 가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훈련의 중요성을 말하다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고 환기시키는 것을 듣는다. 주님은 이 언약을 자신의 피로 맺으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막14:24; 눅22:20)

우리가 흔히 하고, 지키려하고, 실현을 기대하는 약속이란 과연 무엇일까? 성경 속에서 약속은 우리 사람 사이에 체결하는 약속보다는 의미가 다르고 강하다. [약속, 헬(epangelia) 선포하다, 허락, 소식(요일1:5)] 이라는 의미로 조금은 일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약속이 모든 사람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 자신이 결정한 것을 선언하는 것이고 요청을 듣고 허락하는 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약속이다. 대표적인 이 의미에 가까운 쓰임새를 보면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 행1:4) 는 선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란 한 사람 한사람에게 물어보고 계약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에서 볼 때는 일방적인 선언이다. 약속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 자가 주체자가 되야 하기 때문에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을 수 없고 그런 우리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 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약속을 맺으신 것이다.

구약의 많은 성도들이 언약을 맺었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맺은 언약은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언약, 헬(diadeke)-히9:16~17 유언, 유서, 계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7:22) 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고 있다.



Ⅰ.이 약속을 가지고 살아야 할 세상.

하나님의 백성들은 놀라운 은혜의 약속, 영광과 승리의 약속을 가지고 살면서도 이 세상은 그 약속을 지속적으로 갖고 소망으로 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8)고 격려하고 있다.

1.죄악이 관영 하는 세상(롬3:10~18)

“(10)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단적인 예를 들면 오늘날은 참으로 만연된 죄의 심각성을 실감하게된다.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 같은데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부부의 관계를 방영하고 이 부부의 결혼의 지속 여부를 시청자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의 보이지 않는 투표자들은 언제나 이혼에 투표를 한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다른 문화 환경과 사상 속에서 각각 다르게 성장한 부부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결혼을 깨뜨리는 일이 그만큼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는 단적인 예이다. 어느 결혼에 불편이 없겠는가 만은 좀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을 겪는 것보다는 이혼해버리라는 간접적인 부추김 때문에 가정들은 쉽게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은 더 이상 신성한 것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초의 가정 계약은 인간들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능과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1) 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만연된 죄의 결과인 것은 당연하다.

2.죄는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난제(難題)이다.

우리의 결혼과 가정을 깨뜨리고 인간 관계를 말살시키는 이 무시무시한 죄는 사람들 스스로가 처리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이다. 좀 지저분한 비유가 될 지 모르지만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데 손이 미치지 않은 등골은 남이 밀어 주지 않는 한 도저히 개운하게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여탕은 못 가봐서 모르지만 남탕에는 때 미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스런 포즈로 그 개운치 못한 부분을 해결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등을 들이대는 그 기계도 피부병이나 기타 다른 것에 감염될까봐 개운치가 못하지만 그래도 등을 밀 수 있다는데 만족을 얻는 것 같다.

이 때밀이 기계를 모든 일반 종교 행위에다 비유를 해 보고 싶다. 사람들은 창조 시부터 영적인 교제를 하도록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외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영혼의 공허(空虛)나 갈증을 그런 것들로 매워 보려고 하지만 때로는 보다 심각한 오염을 경험할 경우가 많다.

물론 등골의 때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품앗이로 또는 때 미는 기계로 깨끗이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죄는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그래서 완전무결(完全無缺)의 주님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누릴 수 없는 소외된 존재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영혼의 시원함을 허락하셨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역사에 응답하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1) 할렐루야!

3.죄가 해결 된 곳에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약속으로 존재한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계속적으로 절망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2)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그러나 이제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2:12) 하였고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고 약속되고 있고, 우리가 이 주님의 은혜의 사랑과 역사를 계속 지켜 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회복된 약속, 피로 세운 약속은 우리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Ⅱ.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경외, 헬(phobeo) 놀라다,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1.위엄과 존귀에 대한 공포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2.행하신 일에 대한 감격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의 역사에 흐느낌과 격정이다. 큰사랑을 입은 사람은 그 사랑의 그늘에서 도저히 도망칠 수 없고, 부족한 나를 신뢰해 주심에 대한 믿음에 진실 할 수밖에 없는 결과적 행동이다. 사랑 앞에 약하고 믿어줌에 대한 진실은 같고자 하는 진실로 응답하게 되어 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이루신 희생의 은혜 앞에 항상 감동하고 흥분하는 것이 경외이다. 바울 사도의 흥분된 고백이 그것이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3~16)

3.주님에 대한 경외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찬송하게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교회만이 성장하게 되어 있음을 성령은 증거 한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9:31)

요한 사도는 영광 나라의 회복의 모습을 보면서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계19:5)는 격려를 듣는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Ⅲ.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거룩한 약속을 가지고 가는 우리들의 세상 속에서 삶의 영순위 즉, 삶의 가장 우선 순위를 말씀하고 있다. 모두가 가진 약속도 아니오, 가장 확실한 약속을 가진 우리는 그 약속을 받은 자 다운 삶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베드로 사도는“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권면 한다.

1.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적어도 이것은 거룩한 분의 약속을 잃지 않기 위한 당부이다. 죄와 저주의 상황에 사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 이 시궁창 같은 세상에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희생의 피를 흘리셨고 그렇게 해서 약속이 성사되었으므로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에게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4~45; 벧전1:16) 라고 명령하신 말씀을 오늘 보다 귀하고 확실한 약속을 가진 우리에게 당연한 요구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가볍게 여기고 거룩케 하신 은혜와 사랑을 저버린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배신하는 행위가 될것이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권면은 같은 경계로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죄악의 시궁창에서 생명을 바쳐 건져 주셨는데 다시 더러운 곳에 돌아간다면 “…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 응하는 것이다”(벧후2:22)

2.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었던 유혹은 영혼만 깨끗하면 된다는 영지주의였다. 오늘날도 이러한 이중적인 신앙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가 성결치 못하면 거룩한 영혼이 보전될 수 없고 주님의 성령은 죄의 종노릇하는 육체에 사실 수 없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는 경계를 주고 있고 마지막 주님의 오시기까지 우리의 삶이 정결하게 보존되어야만 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은 “ …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심”(엡5:26)을 입은 자들이고 육적인 세상의 유혹과 영적인 이단의 미혹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님의 허락하신 도구를 힘입을 필요가 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5)



Ⅳ.나는 약속을 가진 자답게 사는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귀한 약속은 사랑하는 자와만 한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 라고 확인하고 있다.

1.확실한 약속을 가진 자는 기다릴 줄 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4~15) 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상태는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롬4:19)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5)고 권면 한다. 옛날 어려운 시절에 명절을 기다리는 경험으로 ‘이제 조금만 지나면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10:37)

2.귀한 약속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안는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불변의 약속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약속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약속은 미래에 약속되고 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거나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라고 말씀한다.

3.신령한 것 하늘의 것을 사모한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14:12)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갈4:18)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3:12)

Ⅴ.결론.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당부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이 갖지 못한 귀한 약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약속을 받고 삶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 약속과는 너무나 다른 죄악으로 관영하고 죄를 해결 받은 자만이 이 약속은 확실하며 하나님의 하신 일에 감격하며 황송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게 된다. 이 약속이 너무나 귀하여 “…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벧전2:11) 육체와 영혼의 양면에서 자신을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맞추기 위해서 거룩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경주하게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로부터 약속을 가진 자답게 세상의 변화와 유행에 흔들림이 없이 인내하며 계속 신령한 것을 영육(靈肉)간에 사모하는 삶으로 최고의 낙을 삶고 삶으로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영광의 순간에 허물없이 주님의 약속에 들어가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