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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요 8:12~20 2003-04-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이 귀한 교훈은 유대인들의 삼대절기 중의 하나인 장막절 마지막 날에 있었던 등 놀이 행사를 보시면서 주님께서 자연스럽게 말씀하신 교훈이다. 물론 앞의 7장에서도 실로암 못의 물을 성전에 길어오는 행사 앞에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하신 주님의 간접적이 자기 선언과 함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불기둥의 보호와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로 어려운 광야생활을 감당케 하신 은혜의 감격을 회고하고 감사하는 절기 속에서 현실적으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시는 것이다.

요한 사도께서는 요한 일서 에서도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라고 말씀하셨고 육신으로 계실 때도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5)고 선언 하셨다. 이 세상에 빛이 없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어제 이 말씀을 준비하다 말고 예배당에 내려오려다가 계단에 불이 꺼져버려서 참으로 답답한 경험을 하면서 빛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보이는 불빛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의 빛이다. 역사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이 세상은 참으로 칠흑 같은 어두움의 시대가 되어서 도덕의 빛도, 윤리의 빛도 종교의 빛조차도 온통 꺼져가고 있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더듬는 인생과 같이 두려움과 어두움의 공포에 질려 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사21:11) 라고 묻고 있는 그 시대가 바로 오늘의 시대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1~12)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어두움에 가장 약한 것이 동물보다 사람이다. 네발로 걷는 짐승보다 두 발로 걷는 사람은 그 만큼 어두움에 불리한 존재들이다.

빛을 잃어버린 인류를 위해서 주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오셨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1:20)



Ⅰ.생명의 근원이심을 선언하심이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3~4)



1.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에너지이다.

빛이 없이 살아가는 것들은 거의 없다. 동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기계를 움직이는 것조차 이 예배당의 앰프조차도 빛이라는 에너지에 의존해서 작동된다.

2.생명을 자라게 한다. 자연을 빛을 향하여 자라간다. 모든 식물들은 빛을 향해서 가지를 뻗는다. 집안에 두는 화분도 그렇고 이 자연계의 모든 이치가 다 그렇다.

3.빛은 심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멸망은 어두움으로 구원은 빛으로[지옥과 천국의 묘사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30)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계22:5)

그럼에도 죄악의 사람들은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9~21)



Ⅱ.자유를 주심을 말씀하심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과연 빛에 행한다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가?

1.현실의 상황을 바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어려서 낙지 잡이 배를 타고 안개가 가들 낀 상황에서 집 찾아오기-안개가 너무 짓게 끼이면 낙지도 잡히지 않고-(작은 목선들 앞뒤에 호롱불을 달고 뒤에는 긴 밧줄을 띄워두고 열심히 노를 졌지만 어떤 배들은 바위를 들이받기도 한다.)]

우리의 상황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두우면 분간할 수가 없다. 죄의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이 역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자들이다. 이 마지막 어두움의 역사에서 광명 한 빛을 가진 자들만이 상황을 바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을 빗대어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고 책망하신 적이 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모든 것들을 다 비추어 알 수 있다는 말씀이다. 바울은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고 말한다.

빛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빛이 있어야 나타나는데 특히 색깔이나 모양이 다 그러하다.

2.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도 밝을수록 가시(可視) 거리가 먼 것처럼 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일수록 멀리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 같이 현실을 바로 보면서 미래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미래를 목표하고 살았다. 이것을 비전의 사람이라 하고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3.어두움을 밝히는 사람이다. 빛이 있는 한은 어두움 속에서의 일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3)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으로 사는 자는 결코 넘어짐이 없다. 모든 것을 행함에 혼란하지 않을 것이다. 빛이신 주님께서 비치시기 때문이다.



Ⅲ.어떻게 빛을 얻을 것인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따르다”[헬,akoloutheo(아콜류데오)=결합 접두어인 ‘a(알파)’ + ‘길’을 의미하는 keleuthos(켈류도스)]는 본래적 의미로는 ‘함께 같은 길에 있다’, 즉 동행하다(특히 제자로서), 좇다, 모방하다(눅5:11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는 의미로 영어로는 to follow, imitate 로 번역되고 있는 희랍어이다.

1.주님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세례 요한이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하자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요1:37~39)

마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

이런 자세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약속하시는 것이다.

2.주님을 본 받는 자를 말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본 받기 쉽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당부하였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고 적극적으로 당부한다.

무엇 보다도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야 할 것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자들이 주님의 빛을 받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14) 라는 주님의 약속처럼 빛의 백성으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은 주님처럼 승리하는 비결이고 이를 위하여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신 것이다. “…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b)

3.주님을 섬기는 자를 뜻한다.

따른다는 의미는 같은 길에 걷는 동행자이면서도 함께 하는 대상을 섬기는 제자의 의미로 종의 의미로 나타나기 때문에 ‘따르는 자는’ 곧 섬기는 자이다. 교회는 지위와 권세를 과신하는는 곳이 아니라 위로 주님을 섬기고 아래로 그의 사람들을 섬기는 곳이다. 이것이 잘 못되면 교회의 빛을 나타내는 기관이 되지 못한다. 사울은 자기 권력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는 어두움의 역할을 하다가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빛을 섬기는 자로 바꾸어 주신다.

주님께서는 다메섹에서 눈이 멀어 버린 사울을 향하여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26:18)고 선언 하셨고 남은 생애를 겸손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로 역할 했다.

이러한 섬김의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Ⅳ.주님께서 주신 빛이 오늘 나에게 있는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거나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5) 라고 선언하신다. 과연 오늘 나는 변함없이 이 빛을 누리고 사는가를 점검하면서 이 말씀이 다른 사람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나의 말씀이 되도록 하자.

마25:1~13에서 등불을 가진 열 처녀의 비유를 듣는다. 불은 다 가졌으나 기름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마지막에 가서는 간격이 벌어진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요12:35~36)